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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를 말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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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3-22 08:44

김만영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오라버니의 외로움은


혼자 견디기 힘들었을까


급기야 혈전이 되어


뇌졸중으로 폭발해 버렸다



 

물 설고 낯선


상주 어느 산골짜기 폐 농가 흙벽에


검불 같은 육신 의지한 채


병마와 싸우며 경험도 없이 시작한 농사


차가운 별빛과


맑은 햇살로 키운 무공해 채소


고맙게도 김장 거리로 쓸 만큼 커 주었다



 

행복하거라 간절한 소망 함께 담아


형제들에게 보낼 무배추 자루를


꽁꽁 묶는다



 

뇌세포들 하나씩 하나씩


시래기처럼 시들 시들 말라가고


찬 이슬 맞으며 거꾸로 매달린


고독한 영혼 배들 배들 마른다


회한의 눈물과 한숨 푸슬 푸슬 마른다



 

위로받을 곳 없는 쓸쓸함이


말라 비틀어지는데


깊은 산골의 느린 해거름은


독하게 보내 버린 그리움을 고문한다



 

바삭 마르려무나


손놀림은 어눌해도


아직도 펄펄 끓는 그 가슴이


얼마나 섧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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