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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한힘 심현섭 amt6907@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6-22 17:14

한국민에게 6월은 아픈 전쟁의 역사를 가진 달이다. 근대화의 몸부림 속에서 채 피어나기도 전에 모멸적인 일제의 식민지하에서 거의 반세기를 보내고, 뛸 듯이 기쁜 광복을 맞은 지 다섯 해 만에 동족상잔이라는 참혹한 전쟁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한국민에게 6·25전쟁을 떠올리면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것은 아주 참혹하고 비참한 비극적인 전쟁이었다는 것.

둘째 그래서 다시는 그런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것.

셋째 이 비극적인 전쟁의 원흉은 도대체 누구이며 왜 시작했는가하는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 62주년이 된다. 62년이 지나는 동안에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위에 세 가지 사실이 모두에게 철저하게 각인되었을 뿐이다. 이 세 가지는 겉으로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는 문양으로 한국민의 뼈 속에 새겨져 있다.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을 만큼 깊었다. 60년대만 하여도 현충일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수많은 전몰장병들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동작동 국립묘지에 모여서 세상이 떠나가도록 통곡을 하였다. 지금은 통곡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전쟁의 상처가 아물었기 때문이 아니라 울어야 할 사람들이 거의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전쟁의 아픔은 곧 전쟁을 향한 공포와 불안으로 전환되어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분단 상황의 남한에서는 이 논리가 철석같이 지켜져 왔다. 북한의 갖은 만행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해왔다. 옆구리를 자꾸 찔러대도 더 큰 화를 불러올까봐 꾹 참고 참았다. 그것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지난 전쟁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었다. 돈과 물자로 달래서 악만 남은 북쪽을 어떻게 해서든지 비위를 맞추어주려고 애써 왔다. 북한은 아무 때나 자신들의 성질대로 투정을 부리고 아니면 전쟁도 불사한다고 공갈과 협박을 일삼게 되었다. 마치 왕따를 당하는 어린 학생이 한 구석에 몰려서 수시로 돈을 빼앗기고 폭행을 당하고 있는 꼴과 전연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전쟁을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자유와 평화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가진 자가 누린다고 하였다. 전쟁을 해서라도 자유와 평화를 지키겠다는 단호한 결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이런 말을 하면 누구든지 눈을 바로 뜨고 625를 잊었느냐고 말할 것이다. 마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런 식으로 나가면 결국 북한은 전쟁을 일으키고 말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6·25전쟁은 한국민에게 단단한 족쇄가 되었다.

두 번에 걸쳐서 국가원수가 직접적인 위해 상황에 직면했으며 공비와 간첩들의 침투, 대한항공 폭파, 서해상의 해전과 연평도, 천안함 폭침사건 등 간악한 북한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전쟁의 위협 때문에 주저앉아 있었다. 최근 북한은 방송을 통해서 직접적이고도 극악한 표현을 써서 대남도발을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어느 나라에 그것도 같은 민족끼리 이와 같이 도발적인 언동을 할 수 있는지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어느 나라가 미국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으며 뉴욕에 있는 뉴욕타임스 건물을 폭파시키겠다고 공언한다면 미국 정부는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것인가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것은 말할 여지도 없이 선전포고에 해당하는 도발임에 분명하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전쟁 불안으로 유화적인 정책을 써온 대가임에 분명하다. 최근 한국군은 도발응징이야말로 전쟁을 억제하고 북한의 만행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기꺼이 응전하겠다는 단호한 방위자세를 보임으로써 북한이 감히 도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한다면 한다. 말로만 한다한다 하는 것이 아니다’고 호언을 하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 역시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사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 하에서 전쟁은 북한 전역의 초토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제일 중요한 김씨 독재 정권의 의심할 여지없는 붕괴이다. 그들은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도 자신들의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더 겁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6·25전쟁은 한반도에서 누구도 무력에 의한 일방적인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 되었다.


6·25전쟁을 두고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는 전쟁을 누가 먼저 일으켰느냐하는 것이 요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총을 겨누고 서 있다가 한 쪽에서 먼저 총을 쐈다고 해서 쏜 사람을 탓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성립된 이래 50년대 말까지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기본 정책은 북진통일이었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도 대립되는 남한 정부를 제거하고 공산주의 적화통일을 이루려는 열망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고 양측은 기회만 있으면 기습공격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는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이런 관점을 최초로 피력하였다. 북침이냐 남침이냐는 6·25전쟁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 정책이 미국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안게 하였고 전쟁 발발 1년 전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되어 이것이 도리어 전쟁 발발 요인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1950년 7월 이후 미군은 단 한 번도 한반도를 떠난 적이 없으며 북한의 줄기찬 미군 철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군 주둔은 거의 무기한 지속되고 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6·25전쟁이 준 교훈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철저한 반공정책을 내세워 북한을 전쟁을 일으킨 원흉으로 규탄하고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북한은 다 된 통일을 미국의 개입으로 실패했다고 해서 미제에 대한 원한을 극대화시켜 지금까지 자신들의 체재유지에 이용하고 있다.

6·25전쟁이 한국민에게 주는 역사적인 교훈은 한반도 내에서 무력에 의한 통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해서라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용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옛말에 ‘귀신은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전쟁을 막아내는 최선의 방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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