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등록금이 부른 양극화
서울 사립대 다니는 김모씨, 과외·행사장 보조·주차요원… 쉴 새 없이 일해도 등록금 빠듯
밤새워 공부해 학점 4.2… 10% 못 들어 장학금 못 받아
가난해도 꿈 이룰 수 있도록 장학금 제도 개선해야
대학 등록금 부담이 커지면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 사정이 나쁜 학생들은 공부보다 '등록금 마련'이 주업이 돼버렸다. 성적이 나빠 장학금도 못 받고 취업에도 실패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미국의 경우 소득수준을 감안하는 장학금 제도가 발달해 있지만 우리나라는 주로 성적 우수자들에게 장학금이 주어지는 쏠림현상이 심한 상태다. 학비 마련 때문에 성적이 뒤떨어지는 '가난한 학생'도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전장치가 비어 있는 것이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서울의 사립대에 다니는 김모(24)씨는 지난 4년간 등록금(학기당 450만원)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사업에 실패한 부모가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외(월 30만원)를 꾸준히 하면서 백화점 주차요원, 포장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한 번은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아보자'는 생각에 잠을 안 자고 공부에 매달려 4.2점의 우수한 학점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같은 과 학생 중 상위 10% 내에 들지 못해 장학금은 받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은 턱없이 모자랐다. 세 학기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올 초에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휴학을 했다. 돈에 허덕이는 생활에 지쳤을 뿐 아니라 취업 준비를 하려면 학원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요즘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해 150만원을 벌지만, 원룸 월세(50만원)와 대출 이자(8만원), 생활비, 휴대폰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김씨는 "학교에서 저소득층에 주는 장학금을 신청하려고 해봤지만 그것 역시 학점 기준이 까다로워 신청하지 못했다"며 "집안 형편이 더 안 좋아져 한 학기 더 휴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공모(25)씨는 사정이 다르다. 부모님의 연간 소득이 1억원이 넘는 고소득층인 공씨는 등록금(학기당 350만원)뿐 아니라 매달 용돈 30만원도 받는다. 평소엔 학과 수업에 집중하면서 토론 동아리 등 학교 활동도 활발히 한다. 공씨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등록금 대출을 받은 다른 학생들보다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성적우수장학금을 몇 차례 받았다. 부모님이 2000만원을 지원해줘 미국·필리핀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현재는 노무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찌감치 시험 준비 중이다.
◆취업까지 연결되는 교내 양극화
김씨와 공씨가 다니는 H대학은 2009년 전체 장학금 425억원 중 16.4%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지급했다. 나머지는 성적 우수 장학금·학생회 간부 장학금 등이다. 김씨 같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힘든 이유다. 이런 현상은 전국 대학들에서 공통되게 나타나고 있다. 대학들이 2009년 지급한 전체 장학금 중 18.2%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서울의 한 사립대 졸업반인 이모(24)씨는 "요즘은 진짜 어려운 학생들은 장학금도 못 받고 대출로 연명한다"며 "이런 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닌 대학은 미래를 보장해주기는커녕 빚이라는 걱정만 남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같은 학교 내 양극화 현상은 취업문제와 연결된다. 가정 형편이 안 좋은 학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휴학을 반복하고 각종 스펙(영어 성적·학력·경력 등 각종 조건)을 쌓지 못해 취업에도 불리한 데 비해, 경제력이 있는 가정의 학생들은 학점 관리와 취업 준비를 충분히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한 사립대 교수는 "어린 시절 사교육의 차이가 대학 진학에 영향을 끼쳤다면, 대학 내 양극화 현상은 취업과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변수가 되고 있다"며 "가난하되 꿈을 이룰 의지와 가능성이 큰 학생들을 지원해 양극화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