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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연극 백스테이지 이야기 2

배남영 인턴기자 rhimy@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4-26 11:37

*UBC 연극 디자인제작학과에 재학 중인 인턴 기자가 지난 주에 이어 학교 연극 무대 뒤 생생한 모습을 공개합니다.


길고 초조했던 준비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진짜 무대의 막이 올랐다. 일반적으로 관객이 가장 많이 오는 공연은 첫 날과 마지막 날이다. 크루와 배우 모두 가장 긴장하는 날이기도 하다.

배우들이 상기된 얼굴로 드레싱룸에 들어선다. 보통 때보다 일찍 옷을 갈아 입고 몸을 푼다. 무대 위 배우들은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지만, 무대 밖에서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긴장할 수록 말이 많아지는 배우, 조금만 당황하면 얼굴이 새빨개지는 배우, 의상을 걸치는 순간 인격이 변하는 배우 등 마치 ‘배우’라는 또 다른 종족이 존재하는 것 같다.

쇼가 시작하기 전 드레싱 룸에 소품담당 보조 스테이지 매니저(Assistant Stage Manager, 이하 ASM, 보통 소품담당, 의상담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소품 담당 ASM의 경우 백스테이지에서 모든 배경과 소품 관리에 대해 책임이 있다.)가 다급하게 뛰어들어온다. 한 손에는 전화기를 쥐고 울기 직전의 얼굴로 ‘혹시 소품 담당 크루 A양을 못보았냐’고 묻는다.

A양은 전반적인 소품 정리를 책임지는 크루다. 후반부에 있을 술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각 캐릭터가 들고있어야하는 술 종류와 그 배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보통 연극에 술이 등장할 때에는 술 종류에 맞추어 여러가지 주스나 색소를 섞어 비슷한 색을 맞추어낸다. 그런 중요한 사람이 말도 없이 사라진데다가 전화도 받지 않으니 ASM은 울상이 될 수 밖에. 게다가 관객이 가장 많은 오프닝 나잇이 아닌가. 결국 스테이지 매니저는 만약을 대비해 의상팀에서 한 명을 뽑았다.

무대 밖에서는 무슨 일이 있든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극도로 민감한 상태가 되어 있는 배우들에게 이런 사건은 되도록이면 알리지 않는다. 크루들은 긴장과 걱정으로 온 몸이 졸아붙는 기분이 들어도 웃으며 외쳐야한다. ‘다리나 부러져라(Break a leg)!’ 말과 반대로 이루어진다는 오래된 미신에 따라 만들어진 ‘행운을 빈다’는 말을 대신하는 문구다.

첫번째 쇼가 시작하고 15분이 흐른 후 A양은 슬그머니 돌아왔다. 백스테이지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은 이유는 쇼가 모두 끝난 뒤에 묻기로 한 듯 아무도 그녀의 외출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하마터면 ‘너무나도 주스같은 술’들이 소품으로 나갈 뻔했던 그 작품은 또 다른 NG가 있었다. 쇼가 시작하기 전 무대 위에서 치워졌어야 할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무대 위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의자 하나 때문에 쇼는 시작되지 못헀고 무대 뒤에서는 의자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있던 그 찰나 경험이 많던 할아버지 배우가 아주 자연스럽게 의자를 돌려 앉으며 연극은 시작되었다.

배우의 신발이 사라져서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분명히 그 신발을 봤었다는 디자이너의 말과는 달리 의상팀에서는 그 신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신발은 배우의 개인 소지품이었고 정장 구두이니만큼 비싼 구두였다. 디자이너는 다른 것보다도 이 이유로 패닉에 빠져 눈가가 촉촉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오프닝 나잇 이후 쇼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나는 모피 숄을 5번쯤 기워야했고  늘어난 ‘요가 토끼(어떤 작품의 캐릭터 이름)’의 다리밴드를 줄여야 했다. 몸집이 커서 자꾸 등 뒤의 똑딱 단추가 떨어지는 배우를 위해 백스테이지에서 옷핀으로 의상을 고정시켜주는 퀵체인지를 맡았다.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공연날. 객석은 매진되었고, 배우들의 긴장도와 설레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었다. 딱딱하게 굳었던 배우들의 얼굴은 작품이 끝나고 나오면 180도 달라졌다. 연극일정이 모두 끝난 후 있을 파티를 위해 머리를 만지거나 정성껏 화장을 했다. 크루들은 누적된 피로 탓에 ‘파티고 뭐고, 집에 가고싶다’는 마음뿐이었지만 말이다.

페스티벌은 무사히 끝났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정신이 없었더라면 여러가지 이유로 패닉상태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 했을 수도 있다. 모두가 걱정했던 페스티벌이었지만 결국 대외적으로는 안정적으로 멋지게 마무리되었다. 배우들이 파티를 위해 드레싱룸을 나가고 우리는 그 곳을 정리하며 덩실덩실 기쁨의 춤을 추었다.

다음 날부터 다시 시작될 아르바이트와 과제에 대한 압박감은 잠시 미루어두었다. 지금은 그저 또 하나의 작품을 해낸 스스로를 대견해 하기로 했다. 이 성취감이야 말로 힘들고 지겨운 백스테이지 생활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배남영 인턴기자 rhim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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