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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슈] 캐나다의 정의는 무엇인가?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5-16 13:29

테러조직의 간첩 또는 무고한 난민, 모하메드 할캣씨 사건
만약 무슨 잘못인지도 모른 채 갑자기 체포돼, '당신은 테러리스트이니 생계와 가족은 두고 이 나라를 떠나라'라고 한다면? 왜 테러리스트인지 알려주지 않고 기소도 안 된 상태에서 몇 년 째 신변에 관한 재판만 이어진다면 '누명'을 벗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의일 것이다.

반대로 테러를 일으켜 국내 안보에 위협이 될만한 인물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국내에 계속 머문다면. 국가 기관은 이 사람을 공공과 격리해,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제거하려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의일 것이다.

두 가지 정의가 충돌하면서 캐나다 국내 여론에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은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고 있다.

캐나다에 살 자격이 없다고 국가가 판단했지만, 그럼에도 거주하고 있는 모하메드 할캣(Harkat ·45세)씨가 이번 주 캐나다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는 캐나다 정부가 지정한 추방 대상이지만 추방되지 않고 있고, 그렇다고 해서 난민이나 이민자의 신분을 받을 수도 없는 상태다.

알제리인 할캣씨는 알카에다 '슬리퍼 에이전트(sleeper agent)'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슬리퍼 에이전트란 적국에 위장 신분으로 들어가 장기간 아무런 적대 활동을 하지 않다가 지령을 받으면 돌변해 테러나 간첩 행위를 하는 이를 말한다.

캐나다 정부는'안보인증 (security certificate)'조항을 적용해 오타와에서 피자 배달부로 일하던 할캣씨를 2002년 12월 체포해, 장기간 구속했다. 이어 2006년 6월 조건부 가석방 하고, 그 해 7월 추방 대상으로 분류했다.

앞서 할캣씨는 1995년 위조 사우디아라비아 여권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캐나다에 입국해 1997년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이어 2001년에는 캐나다인 소피 라마쉬(Lamarche)씨와 오타와에서 결혼해, 2002년 배우자 이민 신청 중 체포됐다.

할캣씨에게 적용된 안보인증 조항이란 캐나다 정보부(CSIS)가 특정 이민자나 난민이 캐나다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지명하면, 정부가 해당 용의자를 형사기소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체포, 구속, 추방할 수 있게 한 조항이다.

이 조항 원안은 용의자를 포함해 일반에 증거를 공개하지 않고 비밀에 부친 상태에서도, 캐나다 국내 외국 국적자에 대한 구속과 추방 등 인신에 대한 강제조치가 가능해 위헌 시비가 끊이지 않아 왔다.

할캣씨는 2006년 7월 추방 대상으로 분류되자 안보인증 조항에 대한 위헌 심의를 신청했다. 이 결과 2007년 2월 연방대법은 해당 조항 적용을 1년간 유예하고 연방하원에 개정을 권고했다. 증거를 판사에게만 비밀리 공개하고, 변호사와 피고에게는 비밀에 부치는 조항과 심사 없는 구속은 캐나다 헌법인 권리와 자유헌장에 위배된다고 법원은 지적했다.

보수당(Conservative) 정부는 2008년 법무장관의 승인 조건을 달아 변호사가 혐의와 증거에 대한 요약본을 볼 수 있게 법을 개정했다. 보수당은 변호사에게 고스란히 모든 내용을 공개하면 정부의 대테러 정부수집 능력과 수단이 그대로 들어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요약본 공개로 제한했다. 또한 구속 여부를 CSIS로부터 제한된 자료를 검토한 법관이 결정할 수 있게 했다.


<▲2012년 10월 10일, 체포 10주년을 맞이해 할캣씨(우측 끝)가 오타와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justiceforharkat.com/Matthew Usherwood  >


이 결과 할캣씨는 2008년에 개정된 안보인증 조항에 따라, 또 다시 추방 대상자로 분류돼 경찰의 24시간 감시 아래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 개정 조항에 대해서도 할캣씨는 항소했으나 2010년 12월 연방 법원은 정부의 적용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불복하고 연방항소법원을 찾아간 결과, 항소법원은 개정 조항 위헌 여부를 최종 심의하라며 대법으로 보냈다. 대법은 지난 14일 개정 조항 적용에 대해 만장일치로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법 판결 후 할캣씨는 “법원이 실추된 나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없애버렸다”며 현재의 삶에 대해 “희망은 잃은... 철저히 파괴된 삶을 살고 있다”고 15일 공영방송 CBC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재까지 CSIS가 공개한 할캣씨의 혐의는 알제리 거주 당시 이슬람 무장조직에 현재와 다른 이름으로 가담했다는 내용과 1990년대 초반 파키스탄에서 캐나다 NGO 휴먼컨선인터네셔널이란 단체에서 일하던 중,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참전하려는 외국인 무자헤딘을 위한 숙박시설을 운영했다는 내용이다.

이 혐의에 대해 할캣씨는 무장 조직에 가담한 적도 없고, 파키스탄에서 숙박시설을 운영한 적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번 대법 판결에 따라 할캣씨는 앞으로 할캣씨는 추방 전 절차로 위험평가를 받게 된다. 캐나다에 위험인물인지, 또는 추방되면 본국에서 고문당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이민 및 난민 위원회가 가늠하게 된다. 이 추방 심의 과정은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해 10월 10일 오타와 소재 대법에서 할캣씨의 입장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배너를 펼치고 있다. 사진=justiceforharkat.com/Murray Lumley >


이 가운데 할캣씨 지인을 중심으로 안보인증 폐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가 하면, 추방 집행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할캣씨는 이 가운데 캐나다에 체류할 어떤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캐나다 국내 집에서 가택 연금 및 감시 상태에 있다. 캐나다 언론에서는 할캣씨가 캐나다 이민제도의 림보(limbo)에 걸려있는 상태라고 표현하고 있다. 림보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를 칭하면서 동시에 구금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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