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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의 수제자, 래암(來庵) 정인홍 그는 과연 역적인가?

정봉석 phnx604@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6-04 13:10

해외에서 쓰는 고향 역사(11)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몰라도 한국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잠재적으로 의식하는  가치중 "의리"(義理)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 친구 의리있다' 든지, '그 친구 의리없다'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자주 끌어다 쓰는  형량의 기준이 된다.

'의리없다'로 한번 낙인이 찍히면 신용없는 사람으로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여자들 세계는 어떨지 모르나, 분명 남자들 사회의 불문율로 통용되는 기준치고 의리만치 중요한 단어가 있을까.

이렇다 보니 도덕성보다 상위개념의  이 '의리'라는 마력을 지닌 단어가 가지는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잘못을 좀 저지르고, 나쁜짓 좀  해도 의리있는 행동 하나만 하면 그 사람의 허물을 전혀 문제삼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고, 사회적으로 용서도 되는 일종의  면죄부로도 통하니 하는 말이다. 막말로, 조폭 사회에서 의리 빼놓으면 뭐가 남을까.

그들은 의리를 바이블(bible)로 삼고 돌아가는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인가, 조폭 사회를 미화한 장동건인가 누가 나오는 "친구"라는 영화는 바로 이놈의 "의리"를 테마로 풀어나갔기에 대박의 관객을 동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사 "친구는 쪽팔리면 안된다."가 의리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 않았나.

예를 들면 한이 없다.유행가 가사에도 "의리에 죽고 사는 바다의 사나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박노식 주연의 마드로스 영화나, '의리의 사나이 돌쇠나 용팔이'라는 TV드라마, '야인시대', '모래시계', 하다 못하면 학창시절, 맛있는 걸 몰래 제 혼자 먹어도 "너 의리 없다"로 서로 장난삼아 매도했으니... 한국 사회는 의리 빼놓으면 시체라 할 수 있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기억하는가. 5공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이 하는말 '누가 뭐래도 장세동이 걸마 의리 하나는 있다'든지, '전두환이가 죽일 놈이긴 하지만 옛 부하들을 살피는 의리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로 서민들이 정치 논평을 했으니 하는 말이다. 그 반대편에 선 노태우는 천하의 의리없는 자로 명암이 엇갈렸고...

나는 지금 잡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명분과 의리를 논하기 위해 화두를 꺼낸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이놈의 '명분이냐 의리냐'를 놓고 갈등하고 고민하다, 죽일 놈이 되기도 하고, 살릴 놈이 되기도  한다. 양자 사이의  절체절명의 선택에 부대껴 희비가 교차되기도 하고 정치적 생명이 결단이 나기도 한다.

김대중은 명분을 지고의 가치로 삼고 끝까지 평생을 투쟁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지 않았나. 그는 누가 뭐래도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정치노선의 최고 가치로 택한 사람이었고, 김영삼은 겉으론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말도 안되는 삼당 통합의 모순된 잡탕 꼼수로  뭉쳐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니 의리로 정치를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 무렵 그가 큰 붓을 잡고  "大道無門"이라 일필휘지하는 사진을 보고 나는 터져 오르는 웃음을 도저이 참을 수 없어 배꼽을 잡고 한참 나혼자 웃은 기억이 아직도 있다.

이웃 일본도 민주주의라는 명분보다는 밀실에서 의리로 정치하는 나라로 정평이 나있다. 우리의 오늘이 있음은 어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명분과 의리의 싸움인 조선왕조 오백년사가 물려준 유산이다.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안되는 난감한 숙제라 할 수 있다. 조선조 유교사회는  바로 명분과 의리를 빼놓고 얘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윤리 개념이며, 조정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알파요 오메가다. 충신이란 명분과 의리사이의 선택을 놓고 최대로 고민한 사람에 다름아니다.


<▲ 함양읍에 있는 학사루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이곳 태수로 부임할 당시 건립했다는 누각, 조선의 누각은 각 군현에 객사와 함께 필수로 등장하는 고을의 얼굴마담격이다. 여기서 고을 사또는 손님을 맞고 또 향유들을 불러 시회를 열기도 하는 풍류와 행정을 겸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


명분이란 무엇인가. 그 유래는 유가의 최고 경전인 논어 '안연'편에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잘하는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가 그에게 "君君臣臣父父子子"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단 여덟자의 괴상한 암호같은 구절이 소위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정명론(正名論)이다.

요즘말로 말하면 대통령은 진짜 대통령다워야 하고 그 밑의 장관들은 진짜 장관다워야 하고 , 가장은 진짜 가장다워야 하고 자식들은 진짜 자식다워야 한다가 될 것이니. 각자 맡은 바 '이름값'을 하면 나라가 잘 돌아간다는 말이다.

따라서 명분(名分)이란 '이름값의 자기 몫'이다. 따라서 일단 선언한 정당한 가치는 지켜야한다는 당위성이 성립한다(名正言順:"밍쩡옌쑨"이 말은 중국인들이 가장 잘 인용하는 말). 그래서 '대의명분'(utmost cause)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군자는 모름지기 대의명분이 없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는 명제가 또 성립한다.

나라도 마찬가지, 미국이 명분없는 전쟁에 개입해서  세계의 지탄을 받는다. 하지만 미국은 하고많은 명분없는 전쟁을 의리상 강행하다 보니 국가재정이 거덜이 난 지금이다.

그런데 세상은 명분만 가지고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의"(義)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출전을 보면 중용(中庸) 19장에 "의리란 마땅히 해야하는 것"(義者宜也)이라고 공자가 노나라 애공에게 정치 자문을 해주는 구절에 나온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의리의 본질이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말에서 삼강은 '명분'이고 오륜은 '의리'라 할 수 있다. 조선 사회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관가에 고발하는 행위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 삼강오륜이라는 국기(國基)를 문란하게한 대역죄인으로  취급, 사형으로 다스렸다. 부위자강(父爲子綱)이라는 아버지와 자식간의 삼강의 명분이 있는데,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오륜의  의리, 즉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사랑해야하는 절대적 명제를 무시한 짐승같은 패륜행위이니 살려둘 필요가 없는 인간 쓰레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으로 명문화 되지 않은  불문율의 사회윤리를 떠난 정치 사회는 이 문제가 더욱 복잡한 양상을 지닌다. 그래서 조선 오백년사의 그 모든 임금과 신하의 갈등, 신료들과 신료들 사이의 갈등, 파당, 붕당의 갈등은 한마디로 명분과 의리의 갈등으로 압축될 수 있고, 明나라와 淸나라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외교분쟁도 여기에 속하며, 이퇴계와 이율곡, 기대승이 벌인 형이상학적 리기(理氣)논쟁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니, 조선 사회는 당파싸움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이런  공리 공담의 문약이 흐르는  조선 중기에 등장한 것이 바로 남명 조식이라는 불세출의 학자인 것이다. 그의 실천유학은 쓰잘데없는 명분보다는 의리가 우선해야 한다는  사상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이 사회의 엘리트 지도자 그룹인 사대부는  수양하는 덕목인 경(敬)으로 모름지기 무장하고  실천하는 덕목의 의(義)로 나가야 한다는 남명학파가 출발한 것이다.

이 경상 우도 학파는   글만 읽는 문약한 글방 샌님들이 아니라 유사시 한방 날릴 줄도 아는, 강철같이 굳은 심지를  가진 사람들을 수없이 배출하였다.  그 중에서도 래암 정인홍은 남명을 빼어 나게 닮은 수제자로 일세를  풍미한 불세출의 '의기남아'라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노론의 시조 송시열에 버금가는 우여곡절의 생을 살다가 88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점도 비슷하다. 조식이 남명학의 시조인 일조(一祖)라면 정인홍은 그의 의발(衣鉢)을 전수 받은 이조(二祖)라 할 수 있다. 이제 그의 파란만장한 난세의 일대기를 살펴보기로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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