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극단 하누리를 위해 밴쿠버에 모였다, 연출자 권호성씨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0-19 11:02

“공연 갈증, 10월 25일부터 3일간 ‘오동리 소방서’에서 풀자”

인터뷰 장소로 사내 다섯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이들은 한국에서 건너온 지 길어야 2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신선한, 정확히 말하면 생소한 얼굴들이었다.

명함을 주고 받은 후에도 ‘도대체, 정확히 뭐 하는 양반들이지?’하는 궁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명함 위에는 각각 ‘쇼앤라이프’ ‘감성교육 디자인 연구소’라고 적혀 있었다. 명함을 들여다 보며 시쳇말로 멍 때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 기자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을 닮은 듯한 남자가 먼저 입을 연다.

“안녕하세요, 연극 연출하는 권호성이라고 합니다”


‘오래 묵힌 작품’ 밴쿠버에서 첫 관객을 만나다

기억 속에서 ‘권호성’이라는 이름을 흐릿하게나마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신문 문화면을 탐독했거나 서울 대학로 인근을 들락거렸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TV에서 틀어주는 ‘주말의 명화’ 감상이 문화생활의 전부인 사람에겐 권호성, 그는 그저 낯선 존재이기만 하다.

하지만 연극계로 한정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연출가로서의 그의 이력이 꽤 화려해 보인다. 연극하는 사람을 화려하다는 수식어로 설명한다는 게 좀 어색하지만 말이다.

권호성씨는 지난 97년 뮤지컬 ‘블루 사이공’으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윤동주 달을 쏘다’ ‘친정엄마’ ‘화려한 휴가’를 연달아 내놓았다. 그의 공식 직함은 공연기회사 ‘쇼앤라이프’ 대표, 그리고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상임 연출자다.

바쁘디 바쁜 그가 밴쿠버에 온 이유는 극단 하누리와의 친분 때문이다. 2006년 하누리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무대에 올렸을 당시 권호성씨는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약 6년만에 하누리와 함께 또 다른 시작을 준비 중이다. 이번 작품은 ‘오동리 소방서’(작 이영기)다. 밴쿠버에서 초연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오동리 소방서는 제가 속해 있는 극단의 히든 카드 같은 작품인데, 하누리 형님들이 다른 작품들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해서 결국 공개하게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작품을 상설 무대에 올릴 계획이에요.”

권호성 연출의 말 그대로 ‘오동리 소방서’는 오래 묵힌 작품이다. 극으로 만들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선뜻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극본이 책상 서랍 한구석에 방치된 것은 아니었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 열번도 더 넘게 고쳤을 걸요. 손이 참 많이 갔고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정도 큽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로 구분짓는 건 의미 없는 놀이
권호성씨의 이번 밴쿠버행에는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도 동행했다. 대학에서 연기를 지도하는 진남수씨와 김정호씨를 비롯, TV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노래 강사로 출연했던 이종박씨의 모습도 보인다. 막내는 김지웅씨로 나이는 서른셋에 불과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의 길만을 생각했던, ‘뼛속부터 배우’다. 





바로 이들이 이번 무대의 주인공인 극단 하누리와 호흡을 맞추게 된다. 볼거리가 풍부해지겠지만, 내심 걱정도 된다. 이들은 프로고 하누리의 배우들은 본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 아닌가. 이에 대해 권호성씨의 답변은 이랬다.

“공동작업이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같이 했기 때문에 하누리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실력 같은 것은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제 고민은 극을 함께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에 있어요.”

권호성씨는 프로나 아마추어로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놀이라고 생각하는 눈치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하죠. 자기가 하는 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다면 프로고 그 반대면 아마추어라고···. 그런데 말이에요. 그 기준으로 보면 연극배우들 대부분이 아마추어인 셈이에요. 연극을 해서 돈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건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거든요. 캐나다에서도,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연극배우들은 상당수가 가난하게 살아요. 그렇다고 이들이 배우가, 프로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프로냐 아마추어냐 하는 논의는 예술의 영역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죠.”

중요한 것은 연기에 대한 배우들의 태도, 즉 ‘진정성’에 있다. 연극에 대한 갈증이 있고 그것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배우다. 생계 유지를 위해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상관 없다.


돈 주고 연극 보는 사람이 최고 관객
이번 작품에 대한 권호성 연출의 기대는 남다르다. 한국에서보다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연극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하누리가 이익을 남기려고 연극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시 말해 상업적인 이유로 작품이 훼손될 일이 없다는 거죠. 연극 자체에만 푹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울림으로 극장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동리 소방서’에서 주연은 하누리의 윤명주씨가 맡는다. 현실 세계에서 윤씨의 직업은 일식집 요리사.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에 연애를 걸어 온, 충분히 단련된 배우다. 드라마 덕분인지 이번 작품의 최대 흥행 카드(?)로 떠오른 이종박씨는 윤씨의 친구로 무대에 선다. 김정호씨는 최고 권력자인 ‘군수’ 역할을, 김지웅씨는 이들 중에서 실제로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군수 머리위에서 유일하게 놀 수 있는 ‘감사님’이시다.


위의 인물들이 ‘오동리 소방서’의 존폐 여부를 놓고 다툼을 벌인다는 게 이번 연극의 주된 이야기다. 연극 관계자는 “그 싸움과 갈등을 경험하면서 관객들은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의 감성’과 만날 수 있다”고 전한다.

끝으로 연출에게 물었다. 어떤 관객이 이번 연극을 보았으면 하는지.

“음,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제 경험만 놓고 보면 자기 돈 주고 연극 보시는 분들이 제일 편해요. 이런 관객들은 ‘본전 생각’에서라도 하나도 빠짐 없이 연극을 즐기려고 하거든요.”

연극 ‘오동리 소방서’는 25일 목요일 버나비 쉐보트 아트센터에서 처음으로 그 문을 연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공연 정보
날짜 및 시간 : 10월 25일(목) 오후 7시 30분
                    10월 26일(금), 27일(토) 오후 4시 30분, 오후 7시 30분.
장소: 쉐보트 아트 센터 (버나비 디어레이크 위치. Shadbolt Centre for the Arts)
문의: 604-552-2828, 778-887-1312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8집 내고 북미 무대 진출하는 재즈가수 나윤선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유학을 떠났고 십 년 만에 성공적인 재즈 뮤지션이 됐다. 주 무대인 프랑스에선 문화예술 공연훈장까지 받았다.세계적인 뮤지션은 세계를 다니며 노래를...
한·카 수교 50주년 전통축제 한마당 기획자, 한창현
모국이 아닌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산들은 때론 충분히 낯설다. 코리안이라는 이름을 전면에 걸고 있지만 어떨 때는 국적조차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화의 영역에서...
“신협의 평생 성장판은 바로 한인사회”
신협은행(Sharons Credit Union 이하 신협)의 새 수장으로 석광익 전무가 선임됐다. 25년 신협 역사 중 두번째 CEO다. 석 전무는 전임 차동철 행장과 신협의 유아기를 함께 지켜본 장본이기도 하다....
“평화를 위한 24시간 행군에 한인사회를 초대합니다”
가이 블랙(Black)씨는 우선 ‘헌신’이란 단어로 소개될 수 있다. 적어도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만큼은, 조금은 낯간지러운 이 단어 선택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밴쿠버 신협은행 차동철 행장
밴쿠버신협은행 차동철 행장이 5월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후임은 석광익 전무다. 기자에게 차 행장의 은퇴는 일선에서 물러나는 이민 1세대라는 상징성이 보였다. 은퇴 웨이브의 첫...
“우리는 모자이크 사회 캐나다의 소중한 퍼즐 조각”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캐나다를 선택한다. 하지만 원래 계획했던 열매를 얻기까지에는 대개 적지 않은 수업료가 필요하다. 특히 낯선 문화와 언어를 흡수한다는...
‘빛의 친구들’을 만나다
손톱만한 뷰파인더 건너편에 인격적인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진작가에겐 충분히 설레는 일이다. 설령 피사체가 무표정한 사물일지라도, 풀 한포기 혹은 돌멩이 하나에도 적지 않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조셉이에요. 당신 이름은 뭔가요?”
만약  지금도 살아 있다면, 우리와 같이 지구의 공기를 나누고 그 위를 쿵쾅거리며 걷고 있다면, 낯선 누군가에게 다가가 거리낌없이 손을 내밀 때 마다, 그는 사소한 행복을 챙기며...
석세스 한인 담당 존 송·베로니카 박
새 이민자들이 마주한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두텁다. 언어 때문에 주눅이 들고, 또 그 탓에 꿈꿔왔던 직장에는 이력서조차 내밀지 못할 때는 나이 들어 사서 하는 고생의 이유를 당최...
석세스 재단 매기 입 이사장 인터뷰
“중국계 이민자 사회도 여러 갈등이 있었죠. 사람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해결책도 그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찾았습니다.”1970년대 중국계 신규 이민자들의 자구책(自救策)으로...
밴쿠버올림픽 이어 피겨선수권대회 시상대 디자인한 밴쿠버 한인 제임스 리
그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손톱은 짧고 가지런히 정돈됐다. 나무를 다루느라 손이 거칠 것이라는 예상을 처음부터 비켜갔다.지난주 온타리오주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임연익 신임 밴쿠버노인회장
제38대 밴쿠버 한인노인회 임연익 회장이 9일 취임했다. 1년의 임기를 시작한 간호장교 출신의 임 신임회장은 “강에 배를 띄우는 심정”이라며 주변의 후원과 협력을 부탁했다.-취임을...
아이샤 꾸리’의 작가 장미란
1995년 12월 24일, 서울 무교동 코오롱 빌딩에 자리 잡은 캐나다 대사관 안. 예술가 자격으로 캐나다 이민을 신청한 한 화가와 그의 아내, 그리고 1년 차이로 태어난 이들의 어린 두 딸이...
밴쿠버에서 연기자를 꿈꾸다, 임고운
‘임고운’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소울프러덕션이 지난 해 11월 무대에 올린 연극 ‘라이어’를 통해서다. 이 연극에서 그녀는 남몰래 두집 살림을 하느라 이런저런 거짓말을 늘어...
“낯선 땅 밴쿠버에 식당을 열기까지… 내게 일어난 일들”
통장의 잔고 수위가 어느 높이쯤 돼야 평균적인 인간들은 평범하게 행복하다 말할 수 있게 될까? 최근 리치몬드에 ‘한옥’이란 한식당을 연 이명순씨가 이 질문에 답한다.반듯한 사장님...
“작품 전시회 6월 26일까지 렌프류 커뮤니티 센터”
유형길 화백의 작품 22점이 렌프류(Renfrew) 파크 커뮤니티 센터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림만을 온전히 감상하기에 커뮤니티 센터가 썩 훌륭한 공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유...
지난 22일 캐나다 다문화장관 추천으로 영국여왕 재위 60년 기념메달(다이아몬드 주빌리 메달)을 수상한 김재붕씨는 27년 생이다. 6.25 때 영연방군으로 출전한 캐나다군과 생사고락을...
“이방인에서 주인으로, 내가 사는 법”
얼마 전 만난 한 노신사는 가끔씩 가슴이 먹먹하다고 한다. 밴쿠버에 정착한 지 수십년이 지났건만, 어쩌다 한번씩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다. 이곳에서 태어나 그리고...
“글로벌 리더 되기, 다문화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자녀로 키울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사람의 생김새 만큼이나 다양하다. 숱한 선택들 틈에서 속시원히 정답을 골라내면 좋겠건만, 실은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우리가...
“공연 갈증, 10월 25일부터 3일간 ‘오동리 소방서’에서 풀자”
인터뷰 장소로 사내 다섯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이들은 한국에서 건너온 지 길어야 2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신선한, 정확히 말하면 생소한 얼굴들이었다.명함을 주고 받은 후에도 ‘도대체...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