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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협은행 새 수장 석광익 전무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6-07 13:16

“신협의 평생 성장판은 바로 한인사회”
신협은행(Sharons Credit Union 이하 신협)의 새 수장으로 석광익 전무가 선임됐다. 25년 신협 역사 중 두번째 CEO다. 석 전무는 전임 차동철 행장과 신협의 유아기를 함께 지켜본 장본이기도 하다.
 
신협은 1989년 태어났다. 첫해 자산은 100만달러대.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몸집은 2012년 기준 2억4000만달러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처럼 자산을 키우는 동안 한인사회 내에서 신협의 존재감 역시 두터워졌다. 공익에 부합된다면 언제든지 후원자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반듯한 청년으로 자라난 신협. 석 전무와 함께 신협 양육의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열려 있을 성장판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신협의 첫 시작 차 행장이 내게 건네준 말은…
밴쿠버 킹스웨이 선상. 이민사 초기와 함께한 이들은 이곳을 여전히 한인타운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한글 간판들은 그 기억이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계를 25년 전으로 돌리면 하나의 공간에 갇히지 않고 길가를 따라 형성된 한인타운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길 한 구석,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2층짜리 건물 1층에 ‘밴쿠버 한인 신용조합’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1989년, 신협이 태어난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다. 신협의 새 CEO 석광익 전무가 자신의 평생 직장과 첫 인연을 맺는 순간이다.

“시작은 참 소박했던 것으로 생각되요. 은행 전산망이란 게 아예 없던 시절이라, 고객이 맡기거나 빌린 돈을 일일이 손으로 기록해야 했죠.”

아날로그 시대, 젊은 시절의 그를 신협으로 이끈 것은 차동철 행장이었다. 

“차 행장님이 제게 그러더군요. 당신의 직장을 스스로 만들어 본다는 생각으로 일해 보자고.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내 일터를 키워 나가는 것. 차 행장의 말은 하나의 좌우명처럼 그에게 각인됐다. 신협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다른 시중은행으로부터 수 차례 스카웃 제의를 받았지만, 석 전무는 단 한 차례도 흔들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내 일터, 내가 만든 일터니까요."


내 성장의 밑거름이 바로 신협
석 전무의 이민사(史)를 듣고 있으면, 그가 키운 직장이 오히려 그를 성장시켰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의 이민생활은 1979년에 시작됐다. 스물을 갓 넘겼을 때다. 언어부터 모든 것이 낯설었던 시기, 주머니 사정도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역시 고학 끝에 대학을 마치게 된다. 졸업만 하면 취직은 100% 보장된다는 학교였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이젠 고생 끝이야”라고 말해주는 안락한 직장이 아닌 대불황이었다.

“1985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아마 오래 전 이민오신 분들은 당시의 경제상황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실겁니다. 이자율이 치솟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동차나 집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았지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지만, 식료품점부터 식당의 바(Bar) 매니저까지 그는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후에는 편의점을 운영하게 됐는데, 그때는 아직 어려서 그랬는지 어느 순간 회의감 같은 게 느껴지더군요. 편의점을 하기 위해 어려운 대학과정을 마친 것은 아닌데….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한 거죠. 지금 돌이켜보면 확실히 철 없는 모습이었지만, 당시에는 꽤 많이 답답했어요.”

신협에 입사하면서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직원 두세명이 전부였던 그 공간은, 잊고 있었던 도전의식을 흔들어 깨워주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당시 보수로는 아파트 렌트비를 내기도 버거웠지만, 그는 말 그대로 ‘신협맨’이 되기로 작심했다.


필요할 때마다 대학 강의 수강, 공부엔 끝이 없더라
기계공학도는 경제와 관련된 숫자와는 그리 친숙하지 않았다. 딱딱한 재무용어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인들도 상식으로 알고 있는 대차 같은 말도 그에겐 낯설었다.

“이때부터 공부가 시작됐어요. 업무에 필요한 대학의 재무강좌를 그때그때마다 하나둘씩 수강했지요. 금융과 관련해서 뭘 몰라도 한참 몰랐으니까 공부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신협의 첫 시작은 은행 일을 몰라도 한참 몰랐던 그와 꽤 많이 닮은 듯하다. 초기 자산은 고작 38만달러. 밴쿠버 웨스트 지역의 그럴듯한 집 한 채 가격이었다. 이런 초라한 외형 탓에 한인들은 이용 자체를 꺼렸다. 알음알음으로 돈을 맡기러 왔다가 “여기도 은행이에요?”라고 되묻는 고객이 한둘이 아니었다. 맘 놓고 거래를 하기에는 신협이 믿음직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뢰의 씨앗은 소액 대출 상품을 선보이면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이것이 신협의 첫 성장엔진이었던 것이다.

“당시 신협의 몸집이 작아서 큰돈은 대출이 거의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소액 대출 시장을 뚫었던 거죠. 급전이 필요한 한인들에게 최대 5000달러까지 빌려줬는데, 이게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신협이 믿음직한 존재로 비춰진 계기가 된 거죠.”


신협의 존재 이유는 바로 한인사회
1989년 38만달러로 시작된 신협의 자산은 그해 마지막 날 96만달러까지 늘었다. 차 행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100만달러 고지를 밟고 싶었다. 

“100만달러를 채우는 것,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죠. 직원들 모두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오후 2시쯤 전화 한 통이 울리더군요.”

전화 속 목소리는 매각자금을 예치하고 싶은데 몇시까지 문을 여냐고 물었다. 밤을 새서라도 기다리겠다고 답했지만, 장난전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시간이 다가오면서 그런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의 시선은 좀처럼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반쯤 포기하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은행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그 고객이 당일 40만달러를 예금해 주었지요. 극적으로 자산 100만달러를 돌파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흥분은 좀처럼 잊을 수가 없네요.”

이후 신협은 고속 성장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인 인구가 급작스레 늘어난 것이 키가 부쩍 커진 배경이다. 달리 말해 신협은 한인사회의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했다. 이것은 신협이 한인사회의 각 행사에 후원을 아끼지 않고, 2세들의 사회진출을 돕기 위해 인터사원 제도를 도입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신협은 한인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한인 한사람 한사람이 신협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취임식에서 석 전무는 직원들에게 애사심과 한인사회에 대한 폭넓은 서비스 정신을 강조했다. 석 전무의 취임사는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그 말 속에서 신협은행의 성장판을 찾아볼 수 있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신협 직원으로 일하는 동안 다른 시중은행으로부터 수 차례 스카웃 제의를 받았지만, 석광익 전무는 단 한차례도
흔들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 하나 "내 일터, 내가 만든 일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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