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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한 적 있나요? 이민 온 것 말이에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1-14 10:34

책 <이민자의 에세이, 잃어버린 여름날의 사모> 펴낸 장성순씨
이민자라면, 범위를 조금 더 좁혀 오래된 이민자라면, 누군가로부터 한번쯤은 듣게 되는 질문이 반드시 있다.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태어난 곳을 떠나 이곳까지 와서 살게 된 것 말이에요.”

같은 질문을, 40여년 전 이민자의 삶을 선택한 그에게 던졌다. 이미 오래 전에 귀밑머리 하애진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이내 답했다.

“죽도록 일만 했으니까, 내 인생 어느 한 부분에도 정작 나 자신은 없었으니까…,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당연히 있었겠지.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것들 다 겪고 또 견뎌내고 보니 내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이 듭디다. 이민… 나는 정말 잘 왔다고 생각해요.”

그가 밴쿠버 땅을 처음 밟은 건, 불혹을 넘긴 지 얼마 안 됐을 지난 1976년의 어느 겨울이었다. 아내와 다섯 명의 딸들, 이들과 함께 내딛은 이민생활의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40여 년 전의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의 마음에 새겨졌던 일상의 쓰린 혹은 달콤했던 경험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이민자의 에세이, 잃어버린 여름날의 사모(思慕)>(시한울)가 바로 그것. 그는 한인사회에서는 재향군인회장으로 알려진 장성순씨(사진)다. 책과 그의 육성을 통해 한 개인의 이민사(史) 40년을 다시 구성해 보았다.




                                                                                                          사진=문용준 기자


악착같이 일했던 어느 날
아내는 수술대에 오르고

한국에 있을 때 그는 군인으로 살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잠시 교편을 잡았던 시기를 빼면 그는 군인, 해병대 장교였다. 월남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뼛속부터 군인”의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아이들을 길러내고 싶었고, 결국 이민을 택했다. 군에서 전역한 바로 다음해의 일이었다.

낯선 땅 밴쿠버, 퇴역한 군인에게 주어진 선택은 많지 않았다. 그와 그의 아내인 김영환씨는 문자 그대로 밤낮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일하고 버텨야 했다. 두 사람의 셋째 딸인 미미씨, 현재 의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우리 일곱 식구는 침실이 두 개밖에 없는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이 다 매일같이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맡은 바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엄마가 구어 놓은 쿠키나 맛좋은 초코밀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295쪽)”

일곱 식구가 살기에는 비좁기만 했던 아파트.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던 건, 두 사람의 쉼없는 노동 덕분이었다. 마당 딸린 집으로의 이사, 그 꿈이 실현됐을 때 가슴 벅차게 기뻤을 테지만, 또 다른 희생이 필요했다. 책에서 나타난 장성순씨의 독백이다.

“고국에서는 아이들과 집안일만 하던 가정주부(아내 김영환씨)가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하면서 건강에 이상이 생겨 수술까지 받았다. (중략) 별 문제 없이 살던 고국을 등지고 더욱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아이들 교육을 뜻대로 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던 아내와 나였다. (중략) 빈손으로 이민 와서 값진 삶의 터전을 만들겠다고 서로 달래며 악착같이 밤낮으로 일해 왔던 건강한 아내가 수술해야만 한다니 현실이 캄캄하기만 해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49쪽)”

아내의 수술 날, 그는 그 옆을 지켜줄 수 없었다.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시집 온 여자를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그는 마음 아팠다. 너무 죄스러웠다. 몇 년을 시간제로 일했던 직장에서 처음으로 정식 직원 발령을 받았을 때, 두 사람은 너무 기뻤다.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집을 구할 수 있었으며, 아이들이 그토록 원했던 공부방을 마련해 줄 수 있었다. 그 기쁨의 순간 아내는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퇴근 후, 그는 수술실에서 아내를 만났다. 그녀는 미안해 하고 있는 남편에게 “집에 가고 싶은데 언제나 퇴원한대?”라고 물었다. 자신의 몸보다 집에 있을 어린 다섯 딸들에 대한 걱정이 먼저 앞섰던 까닭이다. 



어린 이민자들은 누구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민 1.5세나 2세는,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갈등기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사고 방식과 생김새가 서로 충돌할 때, 갈등은 증폭된다. “정체성의 혼란”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의 선택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 어린 이민자들이 풀어야 하는 숙제다.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경우, 부모 자식간 싸움이 불거져 나오기도 한다. 아이를 훈육한다는 이유로 손찌검을 했다가 경찰에 붙들려간 이들도 종종 있었다. 장성순씨는 그 옛날의 부모들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대변했다.

“그 당시 교민 대부분은 언어장벽, 경험 부족 등 수많은 장애 요건을 헤쳐 나갈 시간도 없이 먹고 사는 일에 급급했다. 동서양의 문화적인 차이, 경제적인 어려움, 백인사회의 생활 여건 등등 험난한 가시밭길을 극복하며 산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중략) 아이들에겐 눈앞에 보이는 자유롭기만 한 캐나다 생활에 젖어 부모들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어려움을 이해 못한 것이다. 이런 아픈 삶을 그 누구도 밝혀내 놓은 적은 없었다. (105쪽)”

장성순씨의 다섯 딸들에게도 혼란의 시기는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훌륭하게 극복한 모습이다. “과연, 어떻게?”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맏딸 선미씨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그녀는 열한 살 때 밴쿠버에 정착했고, 이후 스스로를 “어버이 3호”라고 불렀다. 일터에 잡혀있는 엄마, 아빠 대신 동생들을 돌봐야 했으므로.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겠다는 맏딸로서의 의무감, (중략) 한국인으로서의 정서, 동시에 나는 나대로 장래를 바라보며 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으려 하는 심정…, 여러 가지의 과제로 정말 그 부담감은 너무나 무거웠다. 뿐만 아니라 틴에이저 때 흔히 겪는 불안감과 의혹감의 세계는, 나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에게는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들이 있어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이민자 틴에이저로서의 역경, 캐나다 대 한국 아이덴티티 문제를 이겨내며, 무난히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280~281쪽)” 

장성순씨는 스스로 “잘 살았고,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 역시 잘 자라주었고, 그래서 더욱 큰 힘이 된다. UBC약대를 졸업한 첫째 선미씨는 종합병원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다. 둘째 진미씨는 고교 교사, 그 뒤를 이어 미미씨, 지연씨, 지호씨는 각각 의사, 방송인, 물리치료사로 활동 중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자면 모두 반듯한 직업들…. 자녀교육의 비결을 물으니, 아버지는 그것과 관련해서는 언급할 것이 전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해준 것도 없는데, 자녀들 스스로 알아서 잘 커주었다는 애기 뿐이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건, 회복실에서 눈을  뜨자 마자 아이들 걱정부터 한 그의 아내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어찌됐건 이 노년의 이민자, 자녀 자랑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서는 할 말을 남겨놓았다. 

“이 일은 내가 못하지, 저 일도 할 수 없겠어… 이처럼 이것저것 재면서 갈등하는 건, 이민자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기로 한 일이 있다면,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끈기있게 끝까지 밀어붙여야 합니다. 노력한 만큼 반드시 뭔가를 돌려받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아온 캐나다 사회에서는 늘 그랬으니까요.”

한국에서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 인생을 개척하라고 말하는 장성순씨. 그에게서 어떤 뚝심 같은 것이 느껴졌고, 그것이 그를 행복한 이민생활로 안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다섯 딸들 역시 이미 오래 전에 공유했을 “아버지의 속내”였을 것이다. 


<장성순씨의 출판 기념회는 11월 18일(화) 오후 2시 밴쿠버 한인 연합교회에서 있다. 3821 Lister St. Burnaby.>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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