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팔루스(Palouse)에서의 도전과 응전

박광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3-25 11:48

박광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팔루스는 사진 모임에서 매년 세 네 차례 출사를 가는 곳이다. 팔루스는 미국 아이다호 주 서부 맞닿은 워싱턴주 동부에 위치한 밀밭 곡창지대이다. 구릉과 평원으로 끝없이 펼쳐진 이 곳의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새싹이 돋는 봄은 출렁이는 물결처럼 갓 태어난 푸른 밀들이 춤을 추고, 여름이 다가오면 노란 유채꽃들과 푸른 밀들이 축제를 벌이고, 가을엔 밀들이 베어진 대지가 마치 전라의 여인처럼 본래 대지의 아름다운 뽐내고, 겨울엔 눈으로 하얗게 덮인 대지는 단순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평온을 전한다. 같은 계절 그리고 같은 시각이라도 습기에 따라 구름 형성이 다르고, 바람에 따라 흐르는 구름 사이를 뚫고 비추는 햇살에 따라 그 모습은 같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기에 늘 새롭고, 늘 가고 싶은 곳이다.
지난 12월 30일에 3박 4일 일정으로 팔루스를 찾았다. 평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스텝토 뷰트(Steptoe Butte)에 삼각대를 세우고, 일출을 기다린다. 새벽 빛이 대지로 스며드는 그 순간, 장소는 변함없지만, 예년과 같은 계절 그리고 같은 시간임에도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겨울임에도 싹이 돋아나 마치 봄처럼 보이지만, 겨울의 바람은 매섭기 그지 없다. 손가락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발은 마치 얼음 위에 서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광경을 또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찬 공기를 들여 마신다. 기쁨이 충만한 아침이다. 추위는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에피소드 1
12월 31일 오후에 스텝토 뷰트에 올라오다가 동행한 선생님이 바퀴에 바람이 빠진 것 같다고 해서 보니 바퀴에 바람이 3분의 1밖에 남아있지 않다. 펑크가 난 것 같다. 아름다운 일몰 촬영을 포기하고 수리점을 가기로 했다. 아뿔싸 오늘이 12월 31일 오후 3시 30분이 아니던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근처 타이어 수리점들이 벌써 영업을 종료했다고 나온다. 그래도 전화를 여러 군데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은 곳은 없었다. 내일은 1월 1일이라 거의 모든 수리점 뿐만 아니라 상점도 문을 닫는다. 마음이 불안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단 숙소 근처의 주유소에서 바퀴에 공기를 주입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코스코가 5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나온다. 현재 시간은 3시 50분.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약 85km)의 코스트코에 전화했다. 바로 출발하고 구글의 예상대로 가면 10분 전에 도착할 수 있다. 그렇지만 5시는 모든 업무를 종료하는 시간이다. 타이어 센터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슈퍼바이저에게 물어본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다행히 와도 좋다고 한다. 휴 ~~. 이렇게 감사한 일이.
펑크를 수리하는데 30분 가량 시간이 걸렸다. 코스트코에서 타이어를 장착했기 때문에 수리비를 받지 않았다. 숙소를 구글맵으로 누르고 출발했다. 그런데 칠흑 같은 어둠에 안개까지 심해서 시야가 30미터 정도 밖에 확보가 안된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운전을 한다. 고속도로임에도 속도를 5~60km 정도로 낮추고 천천히 주행한다. 그런데 오다가 구글 맵이 좌회전을 하란다. 다른 차들은 가지 않지만, 구글 맵의 지시대로 갔더니, 길도 좁고 포장이 안 된 산길로 안내한다. 금방 큰길과 연결될 줄 알았다. 2~30분 정도를 시속 20km 정도로 살살 달릴 수 밖에 없다. 돌아갈 걸 그랬다. 식은땀이 나는 운전이었다. 왜 구글 맵이 좋은 길을 놔두고 엉뚱하게 안내할까?
밴쿠버에 돌아온 후 포트무디를 갈 일이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을 아는데도 구글 맵을 따라갔다. 산길로 구불구불 안내한다. 집에 도착하고 뭔가 이상하다 해서 구글맵 세팅을 열어보았다. 연료 절감으로 세팅이 되어 있다. 아마 그 이유로 팔루스에서도 산길로 구글이 안내했던 것 같다.

에피소드 2
팔루스 일부의 농토 길은 11월부터 3월까지 출입을 제한한다. 대개는 들어갈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 판이 세워져 있다. 밀가루 같은 먼지로 된 흙 길은 물기만 있으면, 미끄럽기 그지없고, 자동차 바퀴가 운전대의 조종을 따르지 않는다. 그런 일들이 겨울철에 일어나면 위험할 뿐만 아니라, 구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곳곳에 경고 판이 붙어있다. 홀로 있는 나무를 찍으러 가는 길은 출입 금지 경고 판이 없어서 들어갔다. 조금 들어가니 바퀴가 운전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다고 거기서 차를 돌릴 공간도 없었다. 그냥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돌리기로 했다. 언덕을 내려갈 때는 바퀴가 비눗물에 미끄러지듯 굴러간다. 여러 생각이 든다. 견인 차를 불러야 하나, 차를 두고 가고 나중에 길이 마를 때 가지러 와야 하나, 어떻게 숙소까지 가야 하나 등 머릿속에선 여러 가지 구상들이 떠돈다. 일단 나무를 촬영하고,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기로 했다. 이 길은 어느 정도 물이 빠진 상태라 별로 미끄럽지 않다. 오호, 이렇게 갈 수 있는데, 괜한 걱정을 했구나. 그런데 5분 정도 달리니, 아뿔싸 길을 막아 놨다. 돌아가야 한다. 오던 언덕 길을 올라가야 한다. 동행한 선생님이 운전하고,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1단 기어를 넣고 언덕을 살살 올라온다. 차가 바퀴가 헛돌며 옆으로 미끄러진다. 왼쪽으로 잘못 가면 언덕에서 떨어진다. 식은땀이 흐른다. 자동차의 엑스 모드를 켠다. 좀 더 마찰력이 생긴다. 물이 흘러간 패인 곳을 피해서 언덕 오른 쪽에 바짝 붙어 조금씩 전진한다. 다행히 바퀴가 헛도는 곳은 없었다. 드디어 가장 미끄러운 구간을 빠져 나왔다. 그나마 사륜구동이고 엑스 모드가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동안 다녔던 길 중에 미세 먼지가 많았던 길들은 경고 판이 없더라도, 이젠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여행 둘째 날은 안개가 너무 많아 대상이 보이지 않아 촬영을 포기해야 했고, 더욱이 바퀴에 못이 박혀 모든 여행 일정을 진행할 수 없을까 봐 초조했고, 구글 맵의 잘못된 안내로 산길을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긴장하며 숙소로 돌아오는 야간 운전을 하고, 흙 길에 들어가서 견인해야 하는가 걱정해야 했던 여행. 그런데 셋째 날은 안개가 어느 정도 거치며 시야가 확보되고, 아침 햇살이 안개를 뚫고 대지를 살포시 비추며, 처음 경험하는 특별한 사진을 찍게 되니, 겪었던 어려움 들은 큰 기쁨을 위한 것이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어떤 눈물 2023.11.20 (월)
   벌써 14년 전이다. 한 방송사가 47주년 특별 기획이라며 보여주던 다큐멘터리는 참 충격적이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렸다가 보게 된 프로였는데 지금도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지구 온난화로 사냥터를 잃어가는 북극곰의 눈물, 빨리 녹아 사라져버리는 작은 유빙流氷에 갇힌 바다 코끼리, 사라지는 툰드라에서 이동하는 순록 떼의 모습은 결코 아름다운 영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는...
최원현
추수감사절 2023.11.20 (월)
바람에 출렁이는 이삭이하늘 문에 닿아 노크를 하네이제는 두 손 모아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시간공중에 나는 새도 가만히 내려와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쪼네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재단에잔치를 베푸시는 농부의 손은거룩하기만 하고허수아비도 참새도 즐겁게 춤을 추면서풍년을 노래하는 추수감사절부귀영화도 한낱 바람과 같다고 하나오늘 만은 들꽃처럼 환하게 노래 하려네
유우영
금은달 금은별 2023.11.15 (수)
하아. 은별이는 침대에 털썩 드러누우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 온 집은 말이 좋아서 현대식 한옥이지, 낡은 한옥에 부엌과 화장실만 신식으로 덧지은, 그냥 시골집이었다. 이사를 가지 않으면 밥도 안 먹고 학교도 다니지 않겠다고 강짜를 부리긴 했지만, 이런 깡촌으로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방문 너머로 아빠와 통화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럼, 잘 도착했지. 이삿짐 아저씨들이 다 제자리에 들여놔줘서 정리만...
곽선영
바다/윤동주(사실적) 실어다 뿌리는바람조차 시원타. 솔나무 가지마다 새촘히고개를 돌리어 삐들어지고 밀치고밀치운다 이랑을 넘는 물결은폭포처럼 피어오른다 해변에 아이들이 모인다.찰찰 손을 씻고 구보로. 바다는 자꾸 설워진다.갈매기의 노래에...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돌아가는 오늘의 바다여!  바다9/정지용(감각적) 바다는 뿔뿔이달어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명희
가을에는 2023.11.15 (수)
단풍잎은 붉디붉고하늘은 깊고 푸르다 아롱다롱 단풍 숲에서뛰노는 아이들 얼굴에물드는 가을빛 바람이 한차례 지나가니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이산길 오솔길에 힘없이 내려앉는다 호들갑스러운 낙엽은바람의 꼬리를 잡고 빙빙 돌고비처럼 내리는 가을은내 가슴팍으로 파고든다 슬픈 그의 얼굴을 손바닥에 올려놓고정답게 비벼본다가을은 어찌 쓸쓸한 계절이던가 우리 모두 때가 되면 떠나야 되느니슬퍼하지 말자아름다운 날...
조순배
가을바람 2023.11.06 (월)
살랑살랑 나뭇가지흔들며 노닐다가 점잖은 하늘아래웃음이 헤퍼선지 한기(寒氣)로옷 벋는 나무 곁을실실대며 지나간다  선비 같은 계절에국화는 제쳐두고 농밀(濃密)한 코스모스짓궂게 희롱(戱弄)하니 더불어놀던 잠자리놀란 눈이 멀뚱하다
문현주
행복해? 2023.11.06 (월)
  내 제자 중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발달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수업이 끝나면 “행복해?”라는 질문을 한다. 아직은 한국말이 서툴러서인지 그렇게 물어본다. 그래서 행복하다 것이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지만 그래도 정확한 뜻을 알기위해 사전을 찾아보았다.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 라고 한다.    “난 가르치기 힘든데 뭐가 행복하다고 묻는 걸까?” 그런데 막상 물으면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청 박혜정
지금이 좋을 때 2023.11.06 (월)
  왼쪽 눈에 황반변성이 생겨 주기적으로 동네 안과에 다니고 있다. 어느 날 진료를 마친 원장님이 말했다. 의학 전문지에 올라온 통계를 보니 노년의 건강이 잘 유지되는 시기는 대개 75세까지 라며, 눈에 이상이 있다 해도 지금이 좋을 때라고 했다.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그는 “내 발로 걸어서 내가 가고 싶은 데를 갈 수 있으면 좋을 때지요.”라고 했다.  내 발로 걸어서 어디를 간다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인지 체력이 좋은...
정성화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