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훈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지난 7월 말, 나는 비씨주 내륙 Cranbrook에 있는 Home Depot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다.
그러나 한 여름 무더운 날씨에 이곳저곳에는 산불들이 나무들을 태우고 있는 광경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며 운전을 하였다. NO.3번 도로는 관광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도로이다. 높은 산세에 울창하게 퍼져있는 나무들은 마치 푸르른 자연을 화폭 위에
그려놓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깨끗하고 맑은 강과 호수들이 곳곳에 있고, 그 강이
미국의 오레곤주 포틀랜드까지 흐른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자유로운 방랑 시인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싶다. 특히 Manning Park 근교를 지나는 산길은 위험하고
험하다. 구불구불, 그리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없이 가는 동안 무거운 짐을 실은 내
트럭은 속도를 낼 수 없어 서행으로 운전해야 한다.
이른 아침 나는 이 길을 지나는데 마침 곰 가족이 아기곰 세 마리와 함께 길을 건너고
있었다. 엄마곰은 도로를 건너 도로 막는 장애물을 잘 넘어갔지만, 새끼곰 세 마리는 여러 번
넘기에 실패하고 겨우 넘어가는 모습을 나는 끝까지 지켜 보았다. 어디 그뿐인가? 수많은
다람쥐들이 이리저리 건너기도 하며 한 다람쥐는 길을 건너다 중간에 서서 나와 눈이
마주칠 때 깜짝 놀라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산길 운전은 위험하여도 자연의 모습과 동물들이 잘 지내고 있는 모습들은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보여서 이는 트럭운전자들에게 주는 보너스인 듯 하다.
나는 이렇게 3번 도로를 다 지나 다음 행선지인 에드먼턴으로 향하였다. 알버타주는 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끝없이 농장지대가 펼쳐져있다. 그리고 다시 2번 고속도로를 통해
나의 목적지에 갈 수 있다. 나는 중간에 쉬어가야 하기 때문에 에드먼턴 근처의 주차장에
트럭을 세우고 밤을 나기로 하였다. 그리고 잠시 휴식 중에 작은 승용차가 내 앞에 와서
서더니 그 안에서 한 남자와 여성 한 분 그리고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함께 내리며 짐을 든
청년에게 허그를 하며, Bye Bye하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그 청년에게 “네 아내냐?” 하고 물었더니 그는 “내 친구의 아내” 하더니 내 옆의 트럭
문을열고 그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 청년은 내 옆에 세워둔 트럭 운전자였다. 잘생긴
청년과의 만남은 초면이 아닌 듯 우리 둘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너는 어디서
왔냐?” 하고 물으니, 그는 “나는 위니펙” 이라 하였고, “나는 밴쿠버” 라고 하였다. 그리고
“트럭 힘들지 않니?” 하니, “이제 5개월째” 라고 하여 나는 “20년이 넘었다” 고 하였더니, 그는
“WOW!”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너의 가족은?” 하고 물으니 “나는 아들이 셋이고,
모두 위니팩에 있다. 그리고 큰 아들이 17살이다.” 하여 “그럼 너는 나이가 몇이니?” 하니
“내 나이 서른 다섯” 이라고 하여 나는 놀랐다. 이런 내 모습을 본 그가 설명하였다.
그는 “우리 부부는 독일에서 함께 고등학생 때 만나 사귄 사이였고 곧 사랑에 빠져 17살 때
결혼하고, 18살 때 첫 아이를 낳고, 둘이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 고 하며 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가 비극이 아니라 Happy ending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마칠 무렵 그는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며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어 나는 그에게 운전 조심해서 잘 가라고 하였다.
그의 트럭이 조금 움직이며 앞으로 가더니 그는 트럭을 세우고 차에서 내려와 나에게
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흰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트럭문을 두드려서
문을 열고 트럭에서 내리니 그가 나에게 전해준 작은 종이는 영어 전도지였다. “Prayer
Changes Things” (빌 4:6-7) 나는 그가 준 전도지를 받고 그에게 “I’m retired pastor” 라고 하며 우리 둘은 “God Bless you!” 하며 오랜 친구가 만나 헤어지듯이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무언가 모를 긴 울림이 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은 여전히 보람되고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그 독일 청년과의 만남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였다.
내 나이 35살, 그 시절 뜨겁던 열정으로 신학 공부에 몰두했으며, 그분이 부르시면
서울이든, 시골이든 어디든지 달려갔던 그 풋풋했던 젊은 시절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아마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 이렇게 젊음을 불태웠던 그들이 이었기에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젊어서 그리했던 것처럼 지금은 필리핀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우리 아들 가족을 격려하고 후원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렇게
산 넘고 물 건너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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