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공포의 엘리베이터

심현섭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8-21 08:56

심현섭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여느날 처럼 나는 일산 탄현에서 내 차로 서초동 사무실까지 갔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엘리베이터를 타러갔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있었다. 잠시 줄을 섰다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빽빽하게 들어섰다. 서로 몸을 비빌 정도로 콩나물시루가 되어 문이 서서히 닫혔다. 막 움직이려 하다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어, 이거 뭐야’하는 표정들로 서로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곧 다시 엘리베이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층부터 시작해서 탄 사람들이 지정한 층을 하나도 서지 않고 그대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보통 때의 속도대로 마치 맨 윗층에서 누가 부르기라도 하는 듯이 조용히 계속 올라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게 분명했다. 출입문 옆에 서있던 사람은 패널 판에 있는 비상호출 단추를 눌러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대답이 없다. 아마 아직 직원이 출근 전인 모양이다.
   25층 맨 위로 올라간 엘리베이터는 다시 한 번 쿵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더니 멈춰 섰다. 고장이 난 게 확실하고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공포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밀려왔다. 문 앞에 있던 사람들은 문틈으로 힘을 주어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아아 그러면 안돼요. 어디 와서 서 있는지도 모르면서 억지로 문을 여는 것은 위험해요.” 뒤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아우성을 쳤다. 패널 앞에 선 사람은 손가락이 아프도록 계속 비상호출 단추를 눌러댔다. 
   “여보세요. 대답 좀 해봐요. 우리 여기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어요.” 
   여전히 반응이 없다.
   이때 갑자기 불이 나갔다. 
   “아! 큰일 났다. 엘리베이터가 떨어질지도 모른다.” 
   누군가 목쉰 소리로 질러댄 비명은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들고 말았다. 비상 추락하는 것과 전기불이 관계가 있든 없든 그건 상관없다. 나쁜 상황 속에서는 계속 나쁘게 상상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나쁘게 악화시키고 공포를 극대화한다. 
   “관리실에 연락 좀 해봐요. 가만 있지 말고.” 
   “가만있긴. 지금까지 계속 눌러대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요.” 
   “이 쌍놈에 새끼들 도대체 뭐하는 거야.”
   “나가면 다 죽여 버리고 말테야!”
   깜깜한 엘리베이터 속, 여기저기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거의 다 넥타이를 맨 사무실 직원들인데 체면을 잃어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밑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불안은 환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공포가 되어 온몸을 휘감고 목석처럼 서 있었다. 
   “어어 이게 뭐야?” 한 사람이 외치니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닥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줌 냄새가 났다.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줌을 흘리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공포의 엘리베이터는 ‘덜커덩’하는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다. 다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향해 괴물처럼 숨소리를 죽이고 내려갔다. 천천히 내려가는 모양이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지진 않은 모양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무슨 일 있습니까?”
   관리실 직원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야- 이 개쌔끼야 무슨 일이라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단 말이야. 빨리 정지시키고 문 열란 말이야.”
   “우리가 나가면 너희들은 다 죽을 줄 알아.”
   목소리 큰 사람들은 모두 한 마디씩 힘주어 말했다.
   
   주차장 바닥까지 내려갔던 엘리베이터는 다시 또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공포에 질려서 무서워하고 있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올라가던 엘리베이터는 어느 층에선가 멈췄다. 직원이 밖에 와서 강제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엘리베이터가 문의 중앙에서 멈추었던 것이다. 내릴 수가 없다. 어른 가슴팍 만큼 위로 떠있기 때문이다. 직원은 문을 단단히 잡고 있으라고 하면서 뭔가 딛고 내릴 만한 것을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문이 열려 있는 한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꼭 잡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문 앞에 서있던 키 작은 남자가 기다릴 사이 없다는 듯이 엉덩이를 문 가장자리에 대고 미끄러지듯이 아래로 내려갔다. 순간 ‘악’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아래 바닥에 떨어지며 ‘퍽’하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야 - 이 새끼들아 사람이 떨어져 죽었어! 빨리 와 봐!‘
  
  이때 일단의 사람들이 머리에 랜턴을 켜고 후래쉬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비치면서 말했다. “저희는 119 긴급구조대입니다. 지금부터는 안심하십시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고마움이 솟아났다. 누군가 한 사람이 구조대에게 말했다. 
   “방금 밑으로 사람이 떨어졌어요.” 
   “네 저희 대원이 확인 중인데 그 분은 사망하신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책상을 놓고 양 손을 잡고 한 사람씩 차례차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복도에는 기자들과 함께 놀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간신히 사무실에 들어와서 소파에 앉았는데 기자들이 따라와 자초지종을 묻는데 전연 혀가 돌지 않아 말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망한 사람은 은퇴하고 회사 차 기사로 취직해서 오늘 첫 출근을 하던 날이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가족들이 눈앞에 어렸다. 조금만 침착하게 더 기다렸더라면 하는 풀 길 없는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검푸른 바다 위로 내리 꽂히는Plunging over the dark blue sea이른 아침 태양의 광선Rays of the early morning sun총총한 윤슬이 별 무리되어Sparkling ripples become a group of stars고즈넉이 흐르고Quietly flows따라붙는 그 후광의 빛 줄기안에 Within the light of the halo that follows노 젓는 또 다른 나Another me rowing또렷한 내 그림자의 호젓한 동행The quiet companion of my clear shadow때를 만난 달덩이 물해파리 떼A swarm of Moon jellyfish met at the right moment내 발 밑에서 보란 듯이 몽실몽실...
김혜진
가난한 부자 2023.08.21 (월)
 지난 여름. 마치 홍역을 치르고 난 아이처럼 휘청거리는 다리로 과수원을 한 바퀴 돌았다. 아침 이슬이 파랗게 내린 풀 섶은 영롱한 구슬이 구을고 엊그제 씨를 넣은 열무 밭엔 씨를 물린 열무 잎이 속속 솟아나고 있다. 내가 아팠던 며칠, 상치는 냉큼 커서 꽃망울을 줄줄이 달고 섰고 땅을 기던 호박 넝쿨은 어느새 기어 올라 아카시아 나무 기둥을 칭칭 감았다.  가슴을 활짝 편다. 기지개를 켠다. 푸성귀 냄새 같은 바람이다. 달그므레한 젖 내...
반숙자
능소화 마을 2023.08.21 (월)
문익점 18대 손 문경호가 500년 전이곳 인흥 마을에 터를 잡았다그 뒤 같은 집안 대소 아홉 가구가이 마을에 자리를 잡고 산다붉은 흙 벽돌 흙 담들이골목 이쪽저쪽에 예스럽게 서 있다한옥의 기와 지붕과 어우러진 골목길언제나 변함없이 고풍스러운 멋을 보여준다그 흙담 위로 6월이면 능소화 곱게 핀다붉게 피어나는 꽃붉은 빛이 붉은 담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환하다양반 집 앞마당에 심는다는 양반 꽃붉은 빛이 여염 집 여인네처럼 보이지...
조순배
2023.08.21 (월)
또다시 나는 문밖에 갇혔다소용없는 줄 알면서 문고리를 흔든다열쇠가 오려면 한참,내 앞에서 열리지 않는 문 안의 모든 것들이가질 수 없으니 더없이 간절하다냉수 한 잔의 청량감과 낡은 소파의 아늑함목이 마르고 허리가 아파올수록간절한 것들이 때로 얼마나 하찮은 것들인지'가끔 문밖에 갇히는 것도 괜찮겠네'눈을 감고 콧바람 한숨을 웃는다 호두 알맹이처럼 쪼글거려야 할 나의 뇌 주름은날마다 밀려오는 파도에 바위가 깍이듯아침저녁 내...
윤미숙
   여느날 처럼 나는 일산 탄현에서 내 차로 서초동 사무실까지 갔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엘리베이터를 타러갔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있었다. 잠시 줄을 섰다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빽빽하게 들어섰다. 서로 몸을 비빌 정도로 콩나물시루가 되어 문이 서서히 닫혔다. 막 움직이려 하다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어, 이거 뭐야’하는 표정들로 서로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곧 다시...
심현섭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 아니, 급해졌다. 그리고 이런 내 성격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급한 성격은 사회생활을 통해 변해버린 것으로, 원래의 나는 아주 느긋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마저도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의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때는 지금과 같은 고통스러운 마음이 한참 덜했던 것도 같다.어린 시절 부모님이 너무 느긋한 내 성격 때문에 ‘속 터진다’는 이야기를 곧잘 하셨다....
윤의정
할머니 꿈 2023.08.21 (월)
빨랫줄에 걸린 이불 홑청을 볼 때 마다할머니 생각난다풀 물에 담가서 마른 잎사귀처럼 바스락 거리던 홑청할머님의 신발과 지팡이를 치우던 날하얀 홑청이 눈물이 되어 한 장의 젖은 손수건이었다항상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시며고향으로 가실 꿈을 꾼 할머니손 마디 굵은 주름 구부러진 손가락삐뚤 빼뚤 오라버니 전 상서는어릴 적 하얀 이불 홑청 속숨바꼭질 생각난다는 할머니갈 낙엽으로 메말라진 몸매에도어릴 적 상상의 꿈을 간직한 소녀...
강애나
꿈의 서막 2023.08.14 (월)
새벽엔 꿈을 꾼다꿈이 사라진이 나이에 찾아오는 꿈이 아심찮아은빛 포대기로 얼싸안고 어른다짜릿한 비상도 없고현란한 색채 마술쇼도 멈추어 버린밋밋한 흑백의 영상이지만감내못할 욕망의 질주가 아니어서 좋다사구(沙丘)처럼 허물어지지 않고고스란히기억의 풀섶에 남아풋풋이 적셔주는 투명함이 좋다그가 던져주고 간 화두-영원 속에 나는 어떤 존재일까 -에 잠겨하루종일 철학을 한다다른 얼굴로다른 배경을 두르고다른 운명을 연기하는 내...
김해영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광고문의
ad@vanchosun.com
Tel.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