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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이 내게 말을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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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07-04 15:02

김보배아이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여보, 뭐 해?” 
차에서 짐을 내리고 대문을 열면서, 남편한테 감정을 실어 내지르는 말이다. 지금 뭐 하는지 물어보는 말이 아니다. 지금 뭘하든지 멈추고, 빨리 내려와서 나를 도우라는 뜻이다. 나 혼자 장 보느라고 힘들었으니 알아 달라는 하소연이다. 사람 많은 장소를 싫어하는 남편을 생각해서 여섯 식구의 장을 늘 나 혼자 다녀온다. 남편이 아내 말의 숨은 뜻을 이해한다면, 지금 뭘하는 지 대답하는 대신에 아내를 도우러 갈 것이다. 

언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바를 상대에게 전달하고, 상대가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이해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다. 말 못하는 갓난아기도 엄마에게 신호를 보낸다. 울음소리가 아기의 언어다. 필요에 따라 울음소리가 다 다르다. 기저귀가 젖어서 우는 울음소리는 짜증이 섞여 있다. 배가 고파서 우는 울음소리는 멀리에서도 들리도록 쩌렁쩌렁하다. 잠이 와서 졸릴 때는 칭얼대는 울음소리다. 엄마가 아기의 필요를 잘 읽어내면 아기는 행복하다. 나는 아이를 넷을 낳아 키웠기 때문에 넷째를 키울 때는 트림을 못해 거북해서 우는 울음도 구분하게 됐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안아주면 어김없이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 아파서 우는데 배고픈 줄 알고 계속해서 젖을 주거나, 젖은 기저귀 때문에 우는데 잠을 재우려고 한다면, 그 아기는 차별화하여 다르게 울던 울음소리를 포기하고, 그냥 자기가 잘 우는 울음소리 하나로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엄마가 아기의 언어를 잘 이해하면 그 아기는 행복하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터득한 언어인데 유독 남편에게만은 그게 잘 안 통한다는 것이 탈이다. 감정은 좀 삭히고 “나 왔어. 장 본 물건들 좀 옮겨줘.”라고 말하면 좋을텐데, 그랬다면 남편은 나를 돕기 위해 후다닥 내려왔을 것이고, 나는 힘들지 않게 물건을 옮길 수 있는데 말이다. 

캐나다에 이민한 지 16년이 되었다. 이민자의 가장 큰 장벽은 영어일 것이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 이민을 시작할 때, 어떻게든 새 땅에 뿌리를 내려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커피 한잔을 사먹으려 해도 용기를 내야 했다.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주문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내 주문과는 다른 것이 나오기 일쑤였다. 영어 한마디라도 써 보겠다고 한인 교회 대신에 캐나다인들이 다니는 로컬 교회에 가서 앉아있을 때, 목사님이 다가와 설교가 잘 들리느냐 물으셨다. 나는 다섯 손가락을 펴서 대답을 대신했다. 목사님은 “50%는 들려요?”라고 다시 물으셨고, 나는 “5%만 들려요.”라고 다시 대답했다. 그랬다. 영어는 소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 단어 정도, 한 문장 정도가 들릴 나름이었다. 하루는 백화점에 갔다가 한 캐네디언 할머니를 위해 무거운 문을 잡아주었다. 할머니는 "Thank you."라고 흔한 감사 인사를 해주셨다. 그런데 내가 내뱉은 영어가 "No thank you."였다. 순간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 입에서 나온 영어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에 사양한다 라고 했으니… 이후로 말문을 열기가 더 두려웠다. 지인 한 분이 겪은 일도 웃기지만 슬프다고 할 만하다. 이민 초기에 식당에서 일하시면서 있었던 일이란다. 주문 전화를 받으면서 “Hello?”라고 했는데, 반대편에서 하는 말이 다짜고짜로 영어 잘하는 사람을 찾더란다. 자신의 한국식 억양, “헬로우” 단 한마디에 영어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늘지 않는 영어 실력 때문에 좌절이 끝이 없었다. 여기 말이 잘 통하지 않는데 여기 사람이 된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영어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나는 이민 1세대니까 영어를 못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 주눅이 든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도 건넸다. 이곳에서의 편한 삶은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아이들만이라도 잘 자라준다면 좋겠다고 소원하였다. 내 인생을 펼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들이나 잘 키우자 하는 마음이 대다수 이민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 아닐는지...

한국에서 살 때 대학에서 행정일을 했기 때문에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었다. 십여 년간 같은 일을 하다보니 지치기도 하였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도 있어 남편의 이민 제안에 흔쾌히 동의를 했다. 제 2의 인생과도 같은 이민생활이 시작되었다. 캐나다에 온 후, 한국에 계신 친정 엄마와 시댁 어른들께 안부 인사를 전할 때 보시라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사진 찍었다. 사진을 매일매일 찍다 보니 어느 순간엔가 사진 언어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마침 한인 사진동우회에서 기초 강좌를 실시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오려 지갑 안에 넣어두고 강의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이 잠들면 늦은 밤에 사진 앨범을 꾸몄다. '스크랩북킹'이라고 캐나다인들 중에 손재주 있는 사람들이 취미로 삼는 것인데, 나는 신문 전단과 잡지 등에서 필요한 사진과 글귀를 오려 두었다가 주제에 맞게 페이지를 구성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게다가 사진첩을 넘기면서 아이들과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에 휴대폰 사진도 인화해서 앨범속에 집어 넣는다. 사진 강좌가 있는 날에 강사님께 보여드릴 생각으로 두꺼운 가족 사진첩 두 권을 들고 갔다. 그때 나는 셋째를 임신 중이었다. 입덧을 잊을 만큼 몇 주 동안 열심히 강의에 참석하였다. 사진첩을 구경하신 강사님은 사진을 찍은 열정과 정성으로 꾸며진 사진 앨범을 넘기면서 감상평을 해주셨다. "사진들이… 그냥 엄마가 찍는 류의, 내 아이가 예뻐서 찍은 사진이 아니네요! 뭔가 엄마의 사랑을 사진 속에 담아내셨어요. 이야기가 보여요! 사랑의 순간을 잘 포착하셨네요." 기대 이상의 호평뿐만 아니라 내가 사진 찍으며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한 바를 콕 집어 알아 주신 것에 뛸 듯이 기뻤다. 동우회에 가입하고 밤잠을 줄여가면서 사진 공부를 하였다. 인터넷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수많은 유명 사진 사이트 등을 찾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사진 작품들을 감상하고 연구하였다. 출사를 따라다닐 수는 없었지만 집에서 수시로 사진기를 들었다. 아이들이 집안을 어지르고 놀 때, 얼굴에 물감 칠을 하고 연극을 할 때, 목욕할 때, 밥 먹을 때, 졸 때, 하다못해 울 때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나는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사진이라는 언어에서 이제 막 모음과 자음을 떼고, 내가 아는 몇 개의 낱말과 조사만으로도 하고 싶은 말을 해 볼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당시 두 살이었던 아들 승우가 "엄마, 물!" 이라고 말하듯이, 여섯 살이었던 둘째 딸 승주가 할로윈이 빨리 오라고 아직 지나지 않은 9월 달력을 떼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로 캐나다의 사진 공모전마다 문을 두드렸다. 어느 여름 날, 바닷가에 아이들과 놀러갔을 때, 생전 처음으로 나는 불가사리를 발견하였다. 너무 놀래서 한 손으로 집어 들고,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꼭 잡았다. 셔터를 누를 준비를 한 채 두 아이를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 경이로워하는 두 아이의 표정을 사진에 담았다. 이 사진으로 밴쿠버 아일랜드 여행가이드에서 주관한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캐나다 밴쿠버한인사진동우회 사진전에도 출품하였다. 비록 세 장의 사진으로 참가했지만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내 사진 속에 담긴 언어를 캐나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설렜다. 사진 작품들은 밴쿠버 중앙도서관 벽에 한 달 동안 걸렸다. 한 신문사의 발행인이 내 사진에 특별한 칭찬을 전해왔다. 너무나 멋진 사진을 만나 행복했다고 하셨다. 그 사진은 내가 이모할머니 댁을 큰 아이와 방문했을 때 찍은 것으로, 흑백으로 보정한 것이었다. 아이가 할머니 앉아 계신 소파 팔걸이에 올라가 균형을 잡으려고 두 팔을 벌리고 서 있고, 할머니는 증손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을 찍으면서 할머니와 내 딸이 한 사진 안에 담길 시간이 얼마나 더 있을지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 순간을 고이고이 담고 싶었다. 그 마음이 사진에 담겨져 보는 이에게 전달되었을까, 전시회가 끝나고 나는 코리안 뉴스의 객원 사진사로 일할 수 있었다.

사진이라는 언어로 무장하게 되자, 영어는 부족해도 나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봉사를 찾아서 도전했다. 가장 큰 규모의 모금 행사인 아동병원 기금 마련 마라톤 대회에 사진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다. 행사는 진풍경의 연속이었다. 가족 단위로, 또는 학교나 회사 이름을 걸고 각자 모금한 후원금을 전달하는 참가자들 기념사진을 찍었다. 각종 스포츠 팀 마스코트들이 춤추고 응원했으며, 시끌벅쩍한 분장과 디즈니 캐릭터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준비한 사람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기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중년 아저씨는 할머니가 타신 휠체어를 밀면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소방차와 소방관들, 경찰차와 경찰관들이 함께하였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얼굴이 하나같이 생기발랄하였다. 승부를 가리지 않는 달리기 대회였지만 완주한 모든 사람들이 기념 메달을 목에 걸고 환호하며 즐거워하였다. 달리기를 완주한 참가자들은 다 같이 무대 앞에 모였고, 축하 인사와 감사 인사, 각종 공연이 이어졌다. 고액 후원금을 모금한 기관 및 단체들은 감사장을 전달받았다. 행사장 주변에는 미리 설치된 각종 간이 미끄럼틀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모두가 함께 춤을 추었다. 풍선 아티스트들이 아이들에게 풍선을 선물하고, 대형 수퍼마켓들은 과일과 음료수를 무료로 나눠주었다. 다양한 커뮤니티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하나되는 날이었다. 불치병, 난치병 어린이 치료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고  화이팅을 외치는 장이었다. 나 역시 재능을 기부해 아픈 어린이들을 후원한 셈이었다. 말이 필요없는 사진으로, 이 사회 일원으로서 뜻깊은 행사에 참여한 것이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의 언어는 이 행사의 아름다운 스케치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었다.

 '고맙다'는 인사에 '사양한다'고 대답했던 나였다. 한없이 높았던 영어의 벽을 넘어설 수 있게 만들어준 사진이라는 언어는 내게 세상과 소통을 가능하게 한 소중한 언어이다. 사진을 배우면서 평범한 장면도 사진으로 담기면, 그림 같은 풍경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아름다운 장면을 찾아 나설 때면, 세상에는 누군가 바라보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다운 존재들이 숨어있음을 발견한다. 새끼 손톱만큼 작은 풀꽃 한 송이도 가문 모래 흙을 뚫고 오롯이 피어나 있는 것을 발견한다. 새초롬한 잎사귀와 노오란 꽃잎을 가진 쬐끄마한 꽃의 충고를 듣는다. 그 작은 풀꽃이 내게 해 준 충고는 사람들이 바라봐 주지 않는다 해도, 세상이 아름답다 칭송해 주지 않는다 하여도, 있는 그대로도 우리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언어를 터득하는 과정에서 나는 풀꽃이 하는 말도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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