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만일 필자가 어느 누구에게 평생 게으름을 피면서 살라고 하면 뺨을 맞을 것이다.
10년, 1년 또는 한 달 만이라도 그렇게 살라고 해도 욕을 배가 부르도록 얻어먹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하루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까짓 거 하루 정도야! 새털
같이 많은 나날인데 오늘 하루쯤 게으름을 피면서 빈둥거리면 어때? 그게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하던데.
그러나 하루가 이틀, 금방 일주일, 일주일이 한달, 한달이 1년...... 그러다 사람의
일생이 휙 지나가 버린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생업을 위해, 부모와 처
자식을 위해 게으름 필 겨를도 없이 열심히 살아왔으며 그러니 나는 게으름 피우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말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열심히 했다고 해서 시간
낭비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신중히 하겠다고 결정을 계속 미루는 것도 하나의
시간낭비로 볼 수 있다.
그뿐이랴. 모두 합의를 해야 한다고 계속 회의만 하는 경우, 대부분 문제가 발생 할
경우에 대비한 면피성 회의로 대표적인 시간낭비의 한 유형이다.
술 마시고, 놀음하고, 잡담 하며 지내는 것만 시간 낭비가 아니란 말씀이다.
사소한 일로 부부 싸움하고 며칠간 냉전 상태로 지나는 것도 시간 낭비요, 형편이
안되어 유행에 뒤떨어진 옷을 입고 나가며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데만 신경 쓰고
있다면 그것 또한 시간 낭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 또한 시간 낭비가 아닐까?
이런 우리 일상에 비해 도스토옙스키의 시간은 어떤 시간 이었을까?
1849년. 28살의 나이에 사형 선고를 받은 젊은 사형수. 사형집행일 형장에 도착한
그에게 마지막 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는 첫 2분은 자기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과의 작별 기도로 쓰고 나머지 2분은 동료 사형수들을 위한 기도로 그리고 나머지
1분은 지금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신을 최후의 순간까지 서 있게 해준
땅을 위하여 기도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가 첫 2분의 작별기도와 두번째 2분의 동료
사형수를 위한 기도가 끝났을 때 기적적으로 황제의 감형서가 내려와 총살형을
면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그가 바로 “ 죄와 벌 “, “ 백치 “, "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 등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발표한 러시아의 세계적인 문호 도스토옙스키 였다. 그는 제정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1세를 강력 비판하던 젊은 사상가, 작가들과 함께 당국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렇게 총살 직전 황제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된다. 그는 그 때 그 5분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 들었을까? 짐작컨데 그는
죽을 때까지 절대로 1분 1초 라도 헛되이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이 똑 같이 주어지니 공기나 물처럼 차고
넘치는 흔하디 흔한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 들 수도 있다. 시간의 소중함을 잊게 하는
단초다. 고대 로마시대의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 ( Seneca ) 는 이렇게 말했다. “
사람들은 시간의 소중함을 간과한다. 설혹 그것을 알았다 해도 그들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
자기계발 관련, 서적과 방송, 인터넷을 통한 강의 등등이 봇물을 이루고 여기에
시간관리 방법과 요령 등이 필수 코스로 들어간다. 얼핏 봐도 “ 성공 하는 사람들의
시간관리, 작은 습관들로 상위 1 프로가 되는 법, 승리 하는 사람들의 습관, 5초 내로
행동 하라. “ 등등 넘치고 넘친다. 필자의 눈에는 모두 그렇고 그런, 독자 ( 청중 ) 의
관심을 끌만 한 그럴듯한 제목들 이지만 얄팍한 도토리 키 재기 식 내용들이 아닌가
한다.
그 중에 하나 눈에 뜨이는 재미있는 발상이 있어 여기 소개한다. 우리 대부분은
신년 초에 그 해의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간관리를 내세워 신년계획을
세운다. 이와 관련된 " 왜? 우리의 신년계획은 작심삼일로 끝나는가? “ 인데 그러나
한편 해답은 너무 심플해서 다른 분들은 모두 웃을 것이다.
요약 하자면 우리의 신년계획 대부분이 너무 거창하고 더구나 그 귀한 시간을
오래동안 쏟아 부어야 달성 가능한 것들이기때문에 그렇단다. 예를 들면 “ 금년은
체중 20킬로 감량 “, “ 금년에는 반드시 영어 ( 또는 다른 외국어 ) 마스터 “ 등등이
그런거란다. 그 칼럼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 그런 계획은 이렇게 단기간 ( 1년 )
이 아닌 평생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차라리 신년계획을 (1) 의문 나면 부끄러워 하지 않고 바로 묻는다 < ask >
(2) 해야 할 일은 미루지 않고 즉시 행한다 < just do > (3) 이웃과 나눈다 < share >
등등, 이 정도라면 실패 할 확률도 적고 더구나 이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놓고
하루 한번만이라도 읽게 된다면 좋은 습관이 저절로 몸에 배이게 되니 일석이조
란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의 수험생들이 자신의 작심삼일을 막기위해 수포대포 ( 수학을
포기하면 대학을 포기한 것이다 ), 또는 영포취포 ( 영어를 포기하면 취직을 포기 한
것이다) 라는 글귀를 크게 써서 자기 책상 앞에 붙이곤 하는 것은 애교 스럽다.
일반인들을 위해 필자는 독포인포 ( 독서를 포기하면 인간이기를 포기 한 것이다 )
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나 또한 평생을 시간에 매여 살았다. 매인 것을 풀고 싶기만 했지 그 소중함은
몰랐다. 학교 다닐 때는 물론이고 회사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이곳 캐나다로 이민
와서는 생업에 매여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취침 하곤 했으니 시간의
소중함을 따지고 어쩌고 할 틈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 사는게 아닌데 하며 날마다 헛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은퇴하면 절대로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이미 은퇴한 지금은 어떤가? 과연 이 소중한
시간을 철저히, 효과적으로 시간 관리를 하며 살고 있는가? 그건 아니다.
역사 이래로 동서양의 수많은 철인과 학자들의 경구를 보면, 그들 역시 시간의
소중함과 아울러 그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년은 빠르게 늙어가는데 학문의 길은 멀고 멀다. 그러니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연못가에 핀 봄 꽃이 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섬돌
앞 오동나무는 가을을 알리는구나. < 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未覺池塘
春草夢, 階前梧枼 已秋聲 > 명심보감.
Life is short and Art is long. Opportunity is fleeting, Experience is
treacherous, Judgement is difficult. 인생은 짧은데 의술의 길은 멀고 멀다. 수련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배운 것은 믿을 것이 못되나니, 진단은 너무 어렵구나. (
히포크라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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