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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단 한번 만나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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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9-12 09:01

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인생의 시계가 황혼을 향해 움직일 때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또 누군가를 토닥거리며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날이
내겐 정말 얼마나 남았을까? /김재진(시인)

오래전부터 허리가 부실해 쉬는 날이면 자주 산책하러 나간다. 침도 맞고 여러가지 한방치료도 해봤지만 좋아지는 듯하다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고는 한다. 전문가들 말로는 많이 걸어서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산책하며 이런저런 사람과 마주친다. 백인들은 ‘하이’, ‘굿모닝’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맞은편에서 동양인 부부가 걸어온다. 예전에는 옷차림 등으로 중국인과 한국인 구별이 뚜렷했지만, 요즘은 구분이 잘 안된다. 이때가 좀 난감하다. 영어를 써야 할지, 한국식 인사를 해야 할지…… 또한 동양인들은 일반적으로 인사에 인색하다. 처음에는 마주치면 무조건 ‘하이’ 하고 인사를 했으나 요즘은 상대방 반응을 살피며 인사를 하는 편이다.
이민 와서 비즈니스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한국에서 평생을 서비스업인 금융기관에 근무해 인사가 몸에 배어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대략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람,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아는 체를 하는 사람, 아예 외면하고 항상 처음 보는 듯이 하는 사람 등이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매일 근무하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안 할까?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중에는 인사를 안 하는 사람과는 같이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에 단 한 번 만나는 인연이란 뜻이다. 불가에서는 전생에 한 겁의 인연이 있어야 다음 생에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한 겁이란 얼마만의 시간일까? 깃털로 바위를 쓰다듬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의 시간을 한 겁이라고 한다. 범인들로서는 감도 잡기 어려운 장구한 세월이다.
법정 스님은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귀중한 인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없다면 포기하는 것이 좋다. 평생을 해로한 부부 사이도, 내 속으로 나은 자식도 내뜻대로 안 되는 세상이다. 나 싫다고 떠나는 사람, 애써 잡을 것도 없고 힘들게 밀어낼 필요도 없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인연이 다하면 떠나는 것이고 가고 나면 또 새로운 인연이 다가온다고 한다. 오는 인연, 가는 인연 다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물 흐르듯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야 편해진다. 모든 사람에게 좋게 보이고, 좋게 지내려 하는 것은 욕심이고 교만이다.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고 한다. 고희를 넘긴 지금 1년을 더 살지 10년을 더 살지 모른다. 젊을 때 생각한 생존 희망 연령은 80세였다. 그때까지 산다고 해도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아끼고 사랑하고 교감하며 지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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