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아침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서울 변두리 어디에 산다는 이들 부부는 새벽이면 싱싱한 채소를 한 수레 싣고 골목을 누비며 파는 평범한 상인 들이다. 그런데 내가 유독 이 부부에게 정이 가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서른을 넘어 보이는 남자는 그저 쑬쑬하게 생겼는데 여인은 그렇지 못하다. 오른쪽 볼은 갸름하고 눈이 맑은 것이 삽상하나 왼쪽은 벌거죽죽하고 번쩍번쩍 하며 아래 입술은 일그러져 있는 것이 꽤 중증인 화상을 입었던 듯 싶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부부의 금실이 유별나게 좋은 점이다.
오늘 아침에 어떤 할머니가 그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다. “부인이 그렇게도 이쁘우?” 남자는 계면쩍은 듯 씨익 웃더니만 “반쪽은 밉지만 한쪽은 미인 축에 듭니다요. 저래 뵈도 마음은 비단이지요.”
열무랑 오이를 골라 놓고 셈을 치르던 나는 오랜만에 가슴 찡하게 차 오르는 기쁨을 느꼈다. 벌거벗고도 서로 부끄러운 줄 몰랐던 원죄 이전의 아담과 이브를 보듯 그렇게 큰 신선한 감격이었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끼리도 얼마나 많은 애증이 소요하며, 이웃과 사회 도처에서 불신과 원망이 범람하는가. 사실 미움 옆에는 예쁨도 반듯이 있거늘 우리 마음의 눈은 이기(利己)로 멀어 있어 예쁨은 보지 못하고 미움만 보기 때문에 불행은 커지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추한 것까지도 사랑으로 덮어주는 행위야 말로 숭고한 부부애가 아닐는지. 누구에게나 있는 선의 의지는 망각하고 눈에 보이는 물질의 양으로 행, 불행을 판가름하는 요즘 세태에 그들이 나누는 신뢰는 실로 아름답기까지 했다.
한사코 마다하는 나에게 덤으로 파 몇 뿌리를 떠 한기고 끌고, 밀며 골목길로 사라지는 평범한 부부에게서 가장 평범한 삶의 지혜를 발견한 이 아침이 눈부시게 환하다.
저 튼튼한 두 바퀴의 수레에 탄 아이들과 가정은 아무리 어려운 역경과 시련에도 삶이란 가파른 고갯길을 끄떡없이 오를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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