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골목안의 풍경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7-26 12:45

김춘희 / (한국문협밴쿠버 지부 회원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다. cul-de-sac(컬드싹), 한번 들어가면 나갈 길이 없다는 골목길나는 이 길을 주머니 길이라 명명(明明)한다주머니길얼마나 정 다운 이름인가.

  작년 펜데믹이 시작되던 즈음에골목 어귀 한 쪽의 숲을 갈아 없애고 자그마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 생겼다이 골목길의 아이나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공원에서 공도 차고 나 같은 노인들은 산책도 한다공원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어떤 이웃들은 이런 저런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막상 아담하게 단장한 공원이 들어서자 그런 우려는 싹 사라졌다더욱이  펜데믹이 시작되면서 이 공원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야외 공간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거리 두기 마스크 걱정 없이 활개 치고 공원 주변을 돌며 산책할 수 있어서 좋고애기들이 모래밭에서 삽질하고 좀 큰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그네를 타며... 공원은 이 동네 사람들에게 펜데믹의 스트레스를 해소 해 주는 사랑 받는 공간이 되었다.

  큰 손녀가 다섯 살 때 쯤 이었다옆집에 살았던 미아네가 이사를 갔다미아는 열 두 살이었는데 여섯 살 난 우리 큰 손녀와 잘 놀아 주었다미아는 동생이 없고 우리 손녀는 언니가 없어서 둘 이는 친 자매처럼 잘 지냈다착한 미아네가 이사를 가 버린 후 며느리는 못 내 아쉬워하며 어떤 이웃이 그 집에 이사 들어 와 살지 궁금하던 차였다어느 날이삿짐 트럭이 들어오고 뒤로 승용차가 잇달아 들어왔다며느리와 나는 문 앞에서 호기심과 약간은 설렘으로 새 이웃이 누굴까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들의 시선은 트럭을 따라 온 승용차에 고정했다이윽고 차에서 젊은 여자와 예쁜 여자 아이 둘 이 내렸다나는 작은 소리로 며느리에게 “됐다또래 여자 아이들이야!” 하고 나직이 며느리에게 말했다며느리는 좀 수줍고 약간 내성적인 성격인데도“어머니저 애들 너무 예뻐요 우리 애들 나이 같아요.” 하더니 곧바로 새로 온 가족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하며 새로 이사 온 것을 환영한다고 인사를 했다나는 속으로 또래 아이들이 있는 새 이웃을 두게 된 것에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일었다.

  새로 들어 온 옆집과는 아들 며느리와 또래 아이들 부모그리고 아이들의 나이가 고만 고만 들 해서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 좋은 친구가 되었다아이들은 우리 집과 옆집을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고 주말이면 이번 주는 우리 집다음 주는 그 쪽 집에서 간단한 주말 식사를 함께 한다.

  오른 쪽 옆집 독신 녀 인 헤일리는 여름이 되면 아이들을 불러 모아 팝시클 하나 씩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곤 했다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자기 앞에 불러 모을 수 있으니 팝시클을 준비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어린 아이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그리도 행복 해 했다우리 집 앞에는 든든한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어서 거기에 햄목 그네(그물 침대)를 매달아 놓았다아이들은 햄목을 타거나 바닥에 그림도 그리고 논다주머니길 땅바닥에는 늘 아이들이 그려 놓은 색색의 분필 자국이 여기 저기 흩어져 아이들의 꿈이 그려져 있다.

  아들은 매년 7월 초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는 스트리트 바베큐 파티를 연다해마다 테마를 갖고 음식도 그 테마에 맞게 준비한다집 앞에 파티를 준비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들 몫이다그야말로 멍석만 깔아 준다텐트를 치고 긴 테이블을 놓고 음악을 틀어 파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동네 사람들은 각자가 만든 색색의 음식을 갖고 나와 테이블에 진열한다테마에 맞는 음식들이다올해의 테마는 하와이언이다하와이언 꽃 목걸이밀집으로 만든 치마일회용 접시 냅킨,모두 하와이 일색이다나는 짙은 빨강노랑초록 색의 잠옷 드레스에 흰 가디간을 걸쳐 입고 목에 하와이언 꽃 목걸이를 하고 나갔다젊은이들 파티에 인사만 하면 그 뿐이니 시작 할 때와 식사 전눈치 것 들락거리며 아이들 체면을 세워준다.

  저녁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동네 할아범 들이 인사를 건넨다자기 할아버지가 옛날에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목화 농장을 했었다는 폴과 크로아치아 태생인 니키는 폴과 말 동무가 잘 되어 매일 저녁 집 앞 의자에 앉아 담소하다가 내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를 잊지 않는다사람 사는 동네에서 인사 한마디가 대수로운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대수롭지도 않은 짧은 인사에서 기분이 좋아진다사람들은 내 산책을 동반하는 강아지에게도 인사를 한다.

 

  나는 이 막다른 골목길 동네를 사랑한다이 골목에 들어오면 따듯한 주머니 안에 들어 간 내 찬 손이 따듯하게 덥혀지듯 내 마음도 훈훈해 진다아마도 평화가 이 주머니 길 안에 들어 앉아 함께 살기 때문일 것이다땅 바닥에 무지개를 그리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 평화스럽고 사랑스럽다아이들의 그림 안에도 골목 안의 평화가 살고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김춘희
  용인 가는 고속도로에서 수원가는 표지판이 눈에 띄고서야 문득 수원 양로원에 있는 요안나가 생각났다. 아! 수원이구나! 요안나가 있는 수원이구나!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우리 일행은 용인에서 다른 가족팀과 합세하여 다음 날 전주로 떠나기로 하고 용인 라마다호텔에 묵었다. 한국을 떠나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아온 세월 때문에 용인과 수원이 인접해 있다는 사실을 전연 모르고 있었다. 나는 한국어를 하는 이방인이다....
김춘희
   지난해 추수 감사절 다음 주, 제주도 앞 바다에서 들개처럼 방황하던 캠퍼를 구해 준  이효리씨와 그의 친구 인숙 씨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녀들은 우리 집에서 1박을 부탁했고 터키 디너도 가능한지를 문의해 왔다. 전 주에 우리는 이미 추수 감사절 터키를 먹었지만, 그들을 위해서 아들 내외와 가까이 사는 딸이 기꺼이 준비했다. 그때 나는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편도선을 앓고 있었기에  정중한 인사와함께  아이들과...
김춘희
  마지막 한 장 달랑 남은 2022년 달력은  더 이상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2023년 새 달력에 자리를 내 주어야만 한다. 월말이면 어김없이 한 장씩 넘기다가 오늘은 12번째 막장을 내린다. 새 달력을 걸어 놓고 이제 막 내려놓은 낡은 한해를 한 장씩 훑어 본다. 크고 작은 일들이 어제 일처럼 펼쳐진다.  내 산책 견이 강원도 강릉에서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여 마중 나갔던  일, 형제들의 방문, 아이들과 여기저기 여행했던...
김춘희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김춘희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김춘희
대구떼의 수난 2022.06.20 (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김춘희
대구떼의 수난 2022.06.15 (수)
유네스코가 지정한 관광지 가스페 반도(Gaspé)는 우리가 1980-90년 사이에 여름마다 찾아갔던 여름 휴가지이다. 몬트리올에서 생 로랑(St-Laurent) 강을 왼쪽으로 끼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한나절 드라이브 길에 벌써 바다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대서양 어귀에 리무스키(Rimouski)라는 큰 도시가 나온다. 여태껏 보아 왔던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새우나 조개 같은 어패류의 롤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판매소가 여기저기 눈에...
김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