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훈 / (사)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무작정 상경” 이란 말은 과거 한국이 가난했던 60-70년대에 흔히 쓰이던 표현이다.
농촌 인구가 80%가 넘었을 시절 가난을 벗어나고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서울과 대도시로 일터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이 시절 “쨍하고 해뜰 날”이란 노래를 부르며 온갖 고생 끝에 자리를 잡게 된 사연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시골 마을에서 한명이 서울로 가서 정착하면 주변에 처녀 총각들이 개나리
봇짐을 싸들고 무작정 도시로 상경을 하였다.
오늘날 미국과 카나다 이민이 이와 비슷하다 하겠다. 명분은 아메리카 드림 이라 하지만
언어, 인종 그리고 문화가 낯선 땅에서 생존을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며 민들레 홀씨가 되어
이 땅에서 꽃을 피우듯 지금은 이백만 북미주의 교민들이 자리잡고 살게 된 것은 기적과 깉은 일이다.
이들이 이민을 올 수 있게 된 계기는 미국과 캐나다의 교민들이 고국을 방문하여 친구나 친지를
만나면 이민 바이러스에 감염이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아내가 고국방문 때 친구들을 만났다. 그후 3명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내 생각에는 아무리 코로나가 무섭다 해도 이민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된다 .
왜냐하면 전 재산을 가지고 가족의 장래를 담보로 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곽선희 목사님의 강의나 설교 때마다 외국의 이야기를 듣고 유학을 오게 되었다 .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이민은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었고 넓은 세상을 알게 된 계기라고 본다.
이민은 과거 한국에서 가졌던 화려한 학벌, 인맥, 체면 그리고 자존심 등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가진 것이 많이 있다면 몰라도 주어진 현실 앞에서 책임져야 할 가족을 위해 험한 일을
마다 않고 일해야 살아갈 수 있다.
지난 29 년간의 캐나다 생활은 “무작정 상경”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생존을 위하여 좌충우돌하며 트럭커 기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19 년 동안
나와 함께 했던 낡은 트럭에 몸을 싣고 미국과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밤낮없이 그리고 눈길,
빗길, 산길을 마다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칠순의 노인이 되고 말았다.
트럭커의 삶은 힘들긴 하였어도 나에게 값진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북미주 넓은 대륙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많았다. 뿐만아니라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이러한 사연들을 가슴으로만 간직할 수 없어 글로 쓴 것이 수필이 되어 내 인생의 선물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무작정 상경”이 때로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나의 글과 강연을 통해서 이민자 들에게 생소했던
트럭커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는 보람이 있다. 그동안 목사라는 권위와 체면을 다 내려놓고
열심히 살아온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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