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나의 글은 나의 힘

민완기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1-22 16:57

민완기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새로운 글을 구상하며 진통과 산통을 거듭하는 순간은 버겁기만하다. 적잖은 세월 글을 읽고, 왔다고는 해도 언제나 시간 앞에서는 잃은 양이 되고, 잔고 없는 통장을 들고 출금기 앞에 서 있는 듯한 초라함이 느껴지고지도와 네비게이션 없이 초행길을 몰고 나선 심정이 되곤 한다. 손에 나와라 뚝딱, 나와라 뚝딱하는 도깨비 펜이라도 하나 들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속이 쓰려 때까지 커피를 내려 마시고, 공연히 서가에서 책을  꺼내서 읽지도 않고는 도로 자리에 끼워 놓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 사이트, 사이트 써핑을 하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느라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과연 내가 쓰는 글에 있기는 할까? 자문해본다. 바라기는 글이 등산길 배낭에서 꺼내 먹는 사과 반쪽처럼 달거나,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누군가 새벽에 물을 마시고 입술이라도 적셔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지만, 산통의 절정의 순간에는 꿈이 아득히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진정 힘이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거기서 나아가 실제 고양된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끔하는 글이야말로 명실상부한 힘이 있는 글이라 것이다. 굳이 영웅들의 서사시나, ‘나의 투쟁 같은 왜곡된 인간관의 자서전까지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잔잔한 가운데   있는 글의 예는 우리 일상 가운데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광장. 나이 든 장님이 종이박스에 자신의 처지를 알린 구걸을 하고 있다. “I’m blind. Please help.”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관심 두는 사람은 없었다. 노신사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다가 되돌아와 그가 들고 있는 종이를 뒤집어 뭐라 뭐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 열의 아홉이 장님에게 돈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동전뿐만 아니라 지폐들이 쌓여, 어느새 그가 들고 있던 박스는 가득해졌다. 장님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던 노신사에게 물었다.  “What did you do to my sign?”  노신사는 대답하였다. “I wrote the same but in different   words.”  그가 내용을 없는 장님은 노신사에게 종이박스에 쓰여진 글귀를 읽어달라고 하였다.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문장이면 족히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주머니를 열어서 아름다운 하늘을 없는 이에게 하늘을 혼자서 미안함의 대가를 지불하게끔 있는 것이다. 글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964년에 태어나    서른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젊은 가수 김광석은 일찍이 이러한 고민을 했던 같다. 그의 수많은 절창 가운데에서도 지금의 나의 고민과 한계 앞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노래를 남겨주었으니 노래를 소개하며 조용히 읊조려본다.

 

아무것도 가진 없는 이에게 /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나의 노래는 나의 / 나의 노래는 나의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 속에서 /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듯이

자그만 아이의 울음 속에서 / 마음의 열매가 맺혔으면

나의 노래는 나의 / 나의 노래는 나의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1.23세. 대학을 마치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들어간 나의 첫 직장은 강북구 미아동 소재 S여중이었다. 첫 출근 날 아직 군대도 미필인 시절, 솜털이 뽀얀 홍안의 청년이 여중생의 수업을 들어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교감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세워 다짐을 하신다.“민 선생, 오늘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민 선생은 딸이 하나 있는 애 아빠라고 자기 소개를 하시고, 학생들이 딸 이름을 혹시 묻거든 ‘들레’라고 하세요.”라며...
민완기
삼겹살 2024.04.08 (월)
아들이 군대 간다고 둥지를 떠나고문 선생은 중첩된 설움을 곰 삭이며외롭다는 말 대신삼겹살 한 절음 불판에 그슬렸다사방에 튀는 기름 파편을 손등이 접수하며그렇게, 모르는 듯 타들어가고 있다 나무젓가락 사이 낑긴 고기가숨이 붙어 더 살아갈 날을 깨우고 있다참기름장에 발라 입에 넣고떠난 가족을 씹어 그렇게 삼켜 버렸다외로움은 콧날에 상큼하다는 말겨자 한입 넣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혼미한 푸념을 담배 연기처럼 뱉어버리고앉았던...
김경래
팔자를 생각하다 2024.04.08 (월)
 가져가야 할 짐들을 거실 가득히 늘어놓은 채, 남편은 가방에짐을 챙겨 넣고 있다. 그가 짐 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다시 떠난다는 게 실감 난다. 가방의 지퍼가 고장 났는지 닫히지 않는다고 남편이 말한다. 그를 붙잡고 싶은 내 마음이 염력을부린 듯하다.남편은 파도 치는 바다로 고생하러 가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본다. 뭘 사다 주면 좋겠느냐고 자꾸 묻는다.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드는데 눈물이 또 주책을 부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정성화
봄밤 2024.04.08 (월)
부활절 날 밤겸손히 무릎을 꿇고사람의 발보다개미의 발을 씻긴다연탄재가 버려진달빛 아래저 골목길개미가 걸어간 길이사람이 걸어간 길보다더 아름답다
정호승
가로등 2024.04.02 (화)
어둡고 긴긴 밤을그대 왜 서 있는가 길고 긴 세월 동안지칠 법도 하건만은 가신 님 오시려나행여 떨며 기다리나 어두워 못 오실까 눈 밝혀 길 비추나 이 밤도 아니 오면이제 그만 쉬소서
늘샘 임윤빈
떠도는 섬 2024.04.02 (화)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우리는 섬이라 말한다. 어느 곳은 썰물이면 육지와 맞닿아 있다가 밀물 때면 수면위에 떠 있는 섬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고고히 떠 있는 섬을 외로움과 고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고를 견디는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섬처럼 떠 있고 고립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금방 외롭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사과밭 한가운데...
자명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싫지 않은 냄새, 내 앞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흔적일 것 같다.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렬한 향은 더욱 그렇다. 화장품도 향이 짙은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것을 선호한다. 사실 냄새란 무엇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기 마련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대로, 짙은 것은 짙은 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치기만...
최원현
사순절의 약속 2024.04.02 (화)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 언약의 증거이니라만물이 소생 하는 봄의 문턱에서텅 빈 가지마다 약속이나 한 듯꽃망울이 송알 송알 맺히게 하는 일그 또한 언약의 증거일 터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 무렵사순절을 맞이하여 고난을 당하신주님을 잠시 생각해봅니다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시며십자가를 짊어지고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담장 너머 새 한 마리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머물다가봄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는...
유우영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