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어릴 적 엄마는 흔들리는 젖니를 실로 묶은 후 갑자기 잡아당기셨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엄마가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지며 주문을 외우실 때, 나는 폴짝폴짝 마당을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
오늘 치과에서 작은 어금니를 뽑았다. 그동안 잇몸 통증으로 음식을 씹을 수 없어 결국 임플란트 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이 흐르는 치료실 분위기와 의사 선생님이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마취 주삿바늘의 날카로움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30여 분이 지난 뒤, 나는 뽑혀 나온 어금니를 볼 수 있었다.
“혹시 딱딱한 것을 드신 일이 있으세요? 이 뿌리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나는 엷은 핏빛을 띤 어금니를 원망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취가 풀리지 않은 입가 근육에 신경을 곤두세운 나는 잠시 후, 생각 없이 병원문을 나섰다.
저녁 무렵, 뽑힌 어금니 자리에 살며시 혀를 갖다 대보았다. 놀랍게도 그 자리엔 깊은 골과 높은 산이 솟아나고 작은 분화구 하나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작은 어금니 하나 뽑힌 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지다니, 오랜 세월 내 몸의 일부였던 두고 온 어금니가 눈앞에 어른댔다.
‘12살 무렵부터 음식을 작게 자르고 씹어 내 몸을 지탱시켜 준 너를 용도 폐기하다니! 마당에 흙을 파고 묻어주어야 너에 대한 도리였는데---. 내일 치과에 전화해볼까.’
노년의 시기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대부분 몸의 장애를 안고 살게 된다. 눈은 침침해지고 귀는 어두워지며 기억력과 기력이 떨어져 쉽게 피곤해진다. 또한 고혈압과 당뇨,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며 백내장과 관절염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몸의 노화는 유한한 삶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해, 자연의 혜택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의지해 살고 있음을 일깨운다. 흙 먼지가 이는 땅 밑에 맑은 물이 흐르듯, 몸의 노화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고요한 즐거움을 찾아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 존재의 무상함(항상 하지 않음)을 깨달아, 신록의 싱그러움과 지는 노을의 황홀함에 두 손을 모으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순간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신불구무병(身不求無病), 신무병즉탐욕이생(身無病則貪欲易生).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붓다의 가르침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노인은 몸의 질병을 갖고도 정신의 탄력을 유지하려 애쓰며,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바램을 갖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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