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선 윙의 로스 카보스행 비행기는 밴쿠버 공항을 이륙하고 있었다. 표지판의 안전 밸트 사인이 꺼지자, 우울한 겨울 날씨로부터 탈출을 시도한 승객들에게 샴페인을 제공하겠다는 기내 방송이 들려왔다. 비행기 안은 곧 따뜻한 남쪽 나라로 향하는 휴가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크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겨울 옷을 벗는 사람들, 다정한 눈빛을 주고받는 연인들---. 정호승의 시집을 펴든 나는 “그대와 운주사에 갔을 때 왜 나란히 와불 곁에 잠들어 별이 되지 못했는지."라는 싯구에서 동행하는 남편에 대한 배려를 다짐하고 있었다.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여행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터득한 바 있기에.
이륙 후 2시간, 온천지가 눈밭인 풍경이 펼쳐질 때 그랜드 캐년 위를 날고 있다는 기내방송이 들렸다. 애리조나 주 북쪽, 443Km 길이의 콜로라도 강이 흐르는 웅장한 그랜드 캐년은 가장 깊은 계곡의 깊이가 1.6Km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계곡 옆으로 펼쳐지는 붉은 황톳빛의 드넓은 분지는, 바다 수면보다 낮고 두꺼운 소금층으로 이루어진 데스 밸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4시간의 비행 중 1시간 30여 분을 남겨놓고 비행기는 1,250Km 길이의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상공을 날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캘리포니아 만과 태평양 사이의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는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의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밴쿠버를 떠난 지 4시간, 작은 로스 카보스 공항에 도착하니 섭씨 26도의 건조한 여름 날씨였다. 공항 안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멕시코 사람들의 적극적인 호객 행위로 이들을 뿌리치며 밖으로 나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태평양에서 흑 등 고래 보기, 카보 산 루카스 바다에서 엘 아르코와 바다사자 보기, 해안 사구에서 낙타와 말타기, 바다에서 낚시, 스쿠버 다이빙, 해적선 쇼 관람하기, 25에이커 전용 농장을 갖은 아크레 식당에서 식사하기 등 다양한 여행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이번 멕시코 여행은 로스 카보스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돌아보기로 했기에 그들의 권유를 주저 없이 뿌리치고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예약된 버스를 타고 산 호세 델 카보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도로 주변엔 온통 마른 덤불 사이에 키 큰 선인장들만이 늘어서 있었다. 기후나 토양 조건이 척박한 이 지역은 정부 차원의 관광 산업이 1990년대 부터 시작됐으며, 자연 조건으로는 뜨거운 태양과 바다, 멕시칸의 친절함 그리고 싼 노동력으로 알려져 있다. 드디어 호텔 로비에서 바라본, 야자수가 우거진 풀장 주변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그 너머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넘실대는 푸른 바다는 이곳이 지상 낙원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했다. 뜨거운 해가 기울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후, 산 호세 성당 앞 광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지역 예술가들의 그림, 수공예품, 멕시코 민속춤을 감상하며 이국의 정취에 젖어 있었다. 다음날, 은빛 모래사장 갈대 지붕 밑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은 썬탠을 즐기며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책 읽기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진실로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는 일이며, 침묵함으로서 영혼의 본질 속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한 시인의 말은 시공의 경계가 없었다. 최근 신문 기사는 2015년 OECD 주최 72개국 10학년 학생들의 읽기 평가(PISA)에서 캐나다 비씨 주 학생들이 1위를 기록한 사실을 보도하며, 캐나다인들의 독서열을 다시 조명한 바 있다.
해 질 무렵, 넓은 모래사장 한쪽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올모스트 프리”를 외치던 멕시칸 행상들이 귀갓길에 올랐다. 온종일 노동이 자신의 하루 생계를 감당하지 못하는 허탈함!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쓸쓸한 뒷모습과 절망처럼 밀려오는 파도의 낯선 조화로움 속에는 무거운 삶의 비애가 담겨 있었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카보 산 루카스, 플레이타 그리고 토도스 산토스 지역의 하루 여행길에 올랐다. 카보 산 루카스에선 코르테스 바다로 나가 아름다운 기암괴석인 엘 아르코와 바다 사자 무리를 보았고,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플레이타에선 마리너를 배경으로 한 개성 있는 호텔에서 유쾌한 멕시칸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산 호세 델 카보에서 2시간 거리의 토도스 산토스를 가던 날, 우리는 버스 터미널에서 사스칸 주에서 온 캐나다인 부부로 부터 많은 정보를 얻기도 했다. 토도스 산토스를 지나가는 그들은 세계의 수족관으로 불리는 라 파즈에서 20년 동안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오랜 이웃처럼 특별한 경험을 기꺼이 나누던 두 사람의 부드러운 눈빛은 초행길의 우리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작은 마을 토도스 산토스에서 우리는 예술가들의 스튜디오, 역사 박물관, 그릇 가게를 돌아본 후 넓은 선인장 정원이 있는 로스 아도레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마가리타의 맛을 음미하던 그 시간의 충만함을 어떤 수사로 그릴 수 있을까! 코르테스 주홍빛 노을 속 펠리칸들의 수직 하강, 만월의 밤 바다 위로 뛰어오르던 물고기 떼, 소박한 웃음으로 소통하던 멕시칸들---, 문득 그리워질 기억들이다.
안일과 휴식이 필요한 시간, 반복되는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심리적인 풍요와 내적 사유를 찾아 우리는 길을 떠난다.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기억들은 때로 삶을 지탱해 줄 활력이 되기도 하고, 삶에 온기를 더하기도 한다. 나는 내 평범한 일상이 집착이 없는 바람 되어 다시 푸른 바다 위로 날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륙 후 2시간, 온천지가 눈밭인 풍경이 펼쳐질 때 그랜드 캐년 위를 날고 있다는 기내방송이 들렸다. 애리조나 주 북쪽, 443Km 길이의 콜로라도 강이 흐르는 웅장한 그랜드 캐년은 가장 깊은 계곡의 깊이가 1.6Km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계곡 옆으로 펼쳐지는 붉은 황톳빛의 드넓은 분지는, 바다 수면보다 낮고 두꺼운 소금층으로 이루어진 데스 밸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4시간의 비행 중 1시간 30여 분을 남겨놓고 비행기는 1,250Km 길이의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상공을 날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캘리포니아 만과 태평양 사이의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는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의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밴쿠버를 떠난 지 4시간, 작은 로스 카보스 공항에 도착하니 섭씨 26도의 건조한 여름 날씨였다. 공항 안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멕시코 사람들의 적극적인 호객 행위로 이들을 뿌리치며 밖으로 나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태평양에서 흑 등 고래 보기, 카보 산 루카스 바다에서 엘 아르코와 바다사자 보기, 해안 사구에서 낙타와 말타기, 바다에서 낚시, 스쿠버 다이빙, 해적선 쇼 관람하기, 25에이커 전용 농장을 갖은 아크레 식당에서 식사하기 등 다양한 여행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이번 멕시코 여행은 로스 카보스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돌아보기로 했기에 그들의 권유를 주저 없이 뿌리치고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예약된 버스를 타고 산 호세 델 카보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도로 주변엔 온통 마른 덤불 사이에 키 큰 선인장들만이 늘어서 있었다. 기후나 토양 조건이 척박한 이 지역은 정부 차원의 관광 산업이 1990년대 부터 시작됐으며, 자연 조건으로는 뜨거운 태양과 바다, 멕시칸의 친절함 그리고 싼 노동력으로 알려져 있다. 드디어 호텔 로비에서 바라본, 야자수가 우거진 풀장 주변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그 너머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넘실대는 푸른 바다는 이곳이 지상 낙원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했다. 뜨거운 해가 기울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후, 산 호세 성당 앞 광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지역 예술가들의 그림, 수공예품, 멕시코 민속춤을 감상하며 이국의 정취에 젖어 있었다. 다음날, 은빛 모래사장 갈대 지붕 밑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은 썬탠을 즐기며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책 읽기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진실로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는 일이며, 침묵함으로서 영혼의 본질 속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한 시인의 말은 시공의 경계가 없었다. 최근 신문 기사는 2015년 OECD 주최 72개국 10학년 학생들의 읽기 평가(PISA)에서 캐나다 비씨 주 학생들이 1위를 기록한 사실을 보도하며, 캐나다인들의 독서열을 다시 조명한 바 있다.
해 질 무렵, 넓은 모래사장 한쪽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올모스트 프리”를 외치던 멕시칸 행상들이 귀갓길에 올랐다. 온종일 노동이 자신의 하루 생계를 감당하지 못하는 허탈함!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쓸쓸한 뒷모습과 절망처럼 밀려오는 파도의 낯선 조화로움 속에는 무거운 삶의 비애가 담겨 있었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카보 산 루카스, 플레이타 그리고 토도스 산토스 지역의 하루 여행길에 올랐다. 카보 산 루카스에선 코르테스 바다로 나가 아름다운 기암괴석인 엘 아르코와 바다 사자 무리를 보았고,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플레이타에선 마리너를 배경으로 한 개성 있는 호텔에서 유쾌한 멕시칸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산 호세 델 카보에서 2시간 거리의 토도스 산토스를 가던 날, 우리는 버스 터미널에서 사스칸 주에서 온 캐나다인 부부로 부터 많은 정보를 얻기도 했다. 토도스 산토스를 지나가는 그들은 세계의 수족관으로 불리는 라 파즈에서 20년 동안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오랜 이웃처럼 특별한 경험을 기꺼이 나누던 두 사람의 부드러운 눈빛은 초행길의 우리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작은 마을 토도스 산토스에서 우리는 예술가들의 스튜디오, 역사 박물관, 그릇 가게를 돌아본 후 넓은 선인장 정원이 있는 로스 아도레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마가리타의 맛을 음미하던 그 시간의 충만함을 어떤 수사로 그릴 수 있을까! 코르테스 주홍빛 노을 속 펠리칸들의 수직 하강, 만월의 밤 바다 위로 뛰어오르던 물고기 떼, 소박한 웃음으로 소통하던 멕시칸들---, 문득 그리워질 기억들이다.
안일과 휴식이 필요한 시간, 반복되는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심리적인 풍요와 내적 사유를 찾아 우리는 길을 떠난다.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기억들은 때로 삶을 지탱해 줄 활력이 되기도 하고, 삶에 온기를 더하기도 한다. 나는 내 평범한 일상이 집착이 없는 바람 되어 다시 푸른 바다 위로 날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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