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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6-09-23 15:12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시
구월,
풀어헤쳤던 계절의 옷고름 다시 여미면
내 멍던 시간은 벌써 저만치
그 날의 곡성 앞에 풀썩 주저앉는다

그립다
보고 싶다

숨 막히는 막다른 골목이었을 것이다
아픔보다 더 아픈 못다 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튼 살 서로 부비며 한마디 말로만 속삭이던 낙엽

바람이어라
살아간다는 건
그 날, 뼛가루 날리던 서러운 바람이어라

보고 싶다
목이 메인다

그대 마지막 체온처럼 사그라드는 구월 볕,             
그래도 익자
익어야 한다

그리울수록
보고 싶을수록
목이 메일수록
더 익어져야 한다

익는다는 건
품는다는 것일 게다
품는다는 건
잉태한다는 것일 게다

잉태한다는 건
하나 된다는 것일 게다

구월 볕 아래서
젖은 마음 꺼내어 감사함으로 말리고
익어질 때를 견디어 비로소
허허
저녁 하늘을 우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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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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