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또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④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3-10 00:00

바람의 땅 그리고 9일간의 트레킹

▲ 산티아고에서 온 대학생 그룹이 그레이 글레시어를 보면서 내려가고 있다.

트레킹 4일

간밤에 기분 나쁜 꿈으로 잠을 설쳤다. 몸이 피곤한데도 꿈은 영화처럼 선명했다. 이 찝찝한 기분에 모기들까지 가세했다.

이 모기지옥에서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서둘러 냄비에 인스턴트 쌀과 토마토 소스를 들이붓고 반찬도 없는 아침밥을 준비했다. 밥 속에는 아마 반찬대신 모기가 적당히 섞였을 것이다. 양을 넉넉히 잡아 남는 걸로는 점심용으로 하기로 했다.

텐트를 거꾸로 세워 모기들을 털어냈다. 죽은 모기들이 비듬처럼 떨어졌다.

목적지 로스 페로스까지 10km는 숲길. 볕이 좋았지만 그늘 속을 걸었다. 시작 5분의 1은 오르막, 5분의 3은 평지, 나머지는 빙하 너덜지대 오르막이다. 그 뒤 작은 숲 속에 페로스 캠프장이 숨어 있다.

오늘은 가장 짧은 구간임에도 아내는 어제부터 심상치 않던 발가락의 생살과 물집이 악화돼 가장 고통스러운 하루를 걸었다. 텐트를 치자마자 연고를 바르고 항생제를 먹었다.

이제 우리는 파이네 서킷 구간에서 가장 깊숙이 들어와 있다. 들판은 어제로 끝이 나고 사납게 생긴 봉우리들이 양편에 도열해 있는, 깊은 골짜기의 한가운데다. 산정에는 빙하가 도사리고 있고, 빙하에 머물렀던 얼음 바람이 쉬지 않고 계곡을 훑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옷을 모두 꺼내 입었다.

저녁식사를 끝낸 이스라엘 신혼부부가 민트 티를 우려낸 주전자와 쿠키봉지를 들고 우리 텐트로 놀러 왔다. 신랑의 직업은 엔지니어, 신부는 히말라야 트레킹과 인도 여행 등 경력이 화려한 배낭여행 고수다. 우리는 서로 지난 여행 경험담으로 추위도 잊은 채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대화도중 우리 나이가 오십 중반이 넘었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라워했다. 사실 이 파이네 서킷 트레킹에서 우리 부부가 최고령이었다. 대부분이 20대였고 그 외에는 42세의 칠레 남자 사진작가와 네덜란드에서 온 40대 중반의-머지않아 헤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한 커플을 만났을 뿐이다.

민트 티의 답례로 이스라엘 부부에게 라면 한 봉지를 주었다. 한사코 사양하는 걸 결혼선물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물론 조크였지만, 식품이 귀한 이 산중에서 라면같이 고급식량(?)을 포기한다는 것은 대단한 선심이요 희생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남은 최후의 라면 두 개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밥짓기에 실패한 옆 텐트 학생들에게 한술씩 퍼주는 바람에 저녁밥은 라면 반, 쿠키 반으로 대신했다.

생애 처음으로 라면을 맛 본 옆 텐트 식구들은 산티아고의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하는 여대생들과 남자 친구들인데, 이 라면 맛에 요즘 말로 입맛이 ‘뻑’ 가고 말았다.

이 중 한 여학생은 유일하게 아내보다 뒤쳐지는 고정 낙오병이다. 이 학생은 우선 체형부터가 걷기에 적합하지 않게 디자인 된데다가 걷겠다는 의지도 전혀 없다. 우리는, 배낭을 내팽개쳐 버리고 풀섶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있는 이 학생을 여러 번 만났고, 그때마다 에너지 바를 먹이고 물을 주며 힘을 북돋아 일으켜 세웠다. 동병상련이랄까, 아내는 캠프장에 도착할 때마다 아직도 어딘가 길바닥에 퍼 질러 앉아 있을 이 학생을 염려해 입구에서 기다려주곤 했다.

그런데 이토록 힘들어하는 데는 까닭이 있었다. 이 학생은 등산용 버너 대신 식당에서 많이 사용하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부르스타)를 배낭에 지고 온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연실색했다. 배낭무게를 줄이려고 세수 수건도 반으로 잘라오는 판에…. 미련한 건지 대범한 건지, 아무튼 이 학생은 이 때부터 우리 모두에게서 스토브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내일은 가장 어려운 구간인 존 가너 패스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짐을 가볍게 했다. 트레커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 존 가너 패스 정상.

트레킹 5일

기상을 하면 으레 하는 일들이 순차적으로 정해져 있다. 사람들로 붐비기 전에 화장실부터 다녀와서 얼음장 물로 세면을 하고 나면,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냇물을 떠서 수통을 채우고, 텐트를 접고, 배낭을 단단히 하고, 그날 날씨를 살펴 복장을 갖추는 것이다. 지금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강해 플리스 재킷 위에 윈드 재킷도 껴입었다.

오늘은 해발 1300m의 존 가너 패스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 8시 서둘러 출발했다. 험한 구간이어서 기상이 악화되면 길이 차단되는 곳이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간간히 비가 흩뿌렸다. 곧 폭우라도 쏟아 부을 듯 먹구름이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옷이 젖을 정도로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몇 일간의 체험으로 터득했다. 구름은 허세만 부릴 뿐, 거센 바람에 쫓기다 보면 비 뿌릴 틈이 없을 것이다.

캠프장은 바로 숲 속으로 난 오르막 길로 연결되었다. 숲 속의 길은 나무 뿌리와 돌과 진흙이 뒤엉켜 전진이 더디었다.

진창 길을 한 시간쯤 올라 숲 속을 빠져나오니 아득한 고개까지 너덜지대다.

계곡 아래에서 끝이 난 수목 한계선, 그리고 빙하와 빙퇴석의 너덜지대와 거친 바람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불과 1300m의 고도임에도 마치 3000~4000m 고지대에 올라온 것만 같다.

고개 정상에 다가갈수록 바람은 우리의 접근을 방해하려는 듯이 더욱 거칠어졌다. 장갑을 끼고 털모자를 쓰고 그 위에 윈드 재킷의 후드까지 뒤집어 썼다.

바람막이 큰 바위 밑에 기대 앉아 숨을 고르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뒤에 출발한 트레커들이 삼삼오오 돌밭 틈에 섞여 느린 속도로, 그리고 묵묵히 오르고 있다.

캠프장을 떠난 지 다섯 시간 만에 존 가너 패스 정상에 도달했다. 돌무더기에 꼽혀 있는 형형색색의 깃발이 히말라야의 룽다 같이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태고의 정적이 감도는 장엄한 빙하가 끝간 데 없이 펼쳐졌다. 록키의 콜럼비아 아이스필드보다 수십 배는 넓어 보였다. 우리는 양손에 쥔 스틱을 하늘로 쳐들어 숨막히는 장면에 환호했다.

비탈길 돌밭에 앉아 대빙하를 마주보며 차갑게 식어버린 점심을 먹었다. 바람에 섞인 모래가 입 속에서 씹혔다.

고개 정상에서 오늘 목적지 캠프 파소까지 약 세 시간은 무릎이 아플 정도의 급경사가 갈지자로 계속되었다. 아내는 무릎지지대를 꺼내 착용했다.

오후 5시 30분 파김치가 되어 파소 캠프에 도착했다. 가파르고 협소한 산비탈에 자리잡은 이 무료 캠프장은 시설이 최악인데다가 분위기마저 을씨년스럽다.

한 칸짜리 관리소에는 무전용 안테나와 구급상자만 있을 뿐이고, 계곡의 물은 수량이 적어 빨래도 할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9시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바닥이 경사져서 자다 보면 몸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곤 했다. <다음 주에 계속>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리치몬드, 외국태생 비율 가장 높아 써리는 5년간 외국태생 가장 많이 증가
BC주민 4명중 1명(27.5%)은 이민자 출신이라고 BC주 통계청이 20일 인포라인 리포트를 통해 밝혔다. 전체인구에서 이민자 비율은 1996년 22.3%, 2001년 26.1%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관련 보고서는 “지난 20년간 BC주로 이민자 유입이 꾸준하게 증가해 2006년 BC주에...
RBC, 2010 올림픽 납품 입찰 설명회
로얄은행(RBC)은 25일 한인들을 대상으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납품입찰에 관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가르맨 류진 RBC 문화 및 지역사회 시장 어드바이저는 “RBC는 올림픽 공식 스폰서로 지역사회에 밴쿠버 올림픽준비위원회(VANOC)와 함께 일할 기회를 만들어가기...
2월 BC주 물가 1.1% 상승 휘발유값은 15%나 올라
휘발유값이 BC주 서민들을 괴롭히는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캐나다 납세자연맹(CTF)에 따르면 캐나다 평균 휘발유 값은 2000년 리터당 72센트에서 2005년 92센트로 뛰어오른 후 현재 평균 1달러12센트 대를 보이고 있다. 20일 BC주 통계청에 따르면 물가 중에 유독...
캐나다-미국 국경이 위치한 피스 아치에 부활절 연휴기간동안 입국수속을 대기하는 차량들의 장사진이 연출됐다. 일부 차량은 길게는 5시간 이상 국경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김혜인 인턴기자/ (hyein2@hotmail.com)
BC 주정부 스킬스 커넥트 제도 목표 초과 달성
BC주정부는 24일 유료 기술이민자 지원제도가 목표선을 넘은 결과를 달성했다고 자평했다. 콜린 한센 BC주 경제개발부 장관은 24일 “이민자를 위한 스킬스 커넥트(Skills Connect) 제도를 통해 07/08회계연도 목표였던 보건분야 관련 이민자 200명과 다른 분야 이민자...
BC주에서 3만7280명 수혜자
캐나다 국내 고용보험(EI) 수혜자는 1월중 45만6200명으로 12월보다 3430명 줄어든 것으로..
올바른 다이어트 방법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시도할 때 가장 먼저 시작하는 방법은 굶는 다이어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체중계에 의존하는 다이어트 방법이며 결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굶는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체중이 줄어든...
수수께끼의 석상 모아이
수수께끼의 석상- 모아이. 스위스의 한 작가가 이스터 섬의 석상이 외계인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한 이래 세계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모아이 석상은 원주민들이 조상숭배(수호신)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바다를 등진 채 육지(마을)를 바라보고 있다....
연방 보수당의 이민정책이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수당은 지난 14일, 이민신청 대기자 적체현상을 해소하고 캐나다에  필요한 기술인력 즉시 확보를 위한 이민법 시행 개정안을 의회에 상정했다. 새 법안에는 이민부 장관에게 막강한 권한을...
밴쿠버 주말 여행 - 델타‘철새도래지’
철새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은 낯설었던 새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수 만 마리의 새떼가 일제히 솟아오르며 끼룩~ 끼룩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르는
돈이 되는‘알뜰’시장정보 슈 웨어하우스(Shoe Warehouse) 브랜드 신발 모두 취급하는‘신발 멀티 숍’
‘슈 웨어하우스(Shoe Warehouse)’는 운동화와 구두, 한 가지 아이템의 신발을 판매하는 일반 신발 할인점과 달리 운동화, 구두, 아동화, 등산화, 숙녀화 등 일반화와 기능성 신발까지 한 곳에서 원 스톱 쇼핑이 가능한 ‘신발 멀티 숍’이다. 나이키(Nike),...
돌잔치 백오이소박이와 장산적-이경란씨(써리)
요즘 젊은 엄마들에게 아이의 첫돌은 결혼식 이후 ‘두 번째 주인공’이 되는 날. 혹여 딸, 며느리에게 “조촐해도 집에서 정성껏 차려야 하지 않겠니?” 이런 말 입 ‘벙긋’이라도 했다가는
퀴리아 어머니 합창단
“존경 받고 성공한 인물들이 자서전을 낼 때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배운 지혜는 어머니를 통해서 였다’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자녀를 사랑으로 키워낸 훌륭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큰 인물이 되지 않았다고 그...
韓 고려대·日 리츠메이칸 대학 방문학생 프로그램
세계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제도시 밴쿠버. 이 도시를 쏙 빼닮은 UBC에는 전세계 약 130여개 국에서 온 5000명에 달하는 국제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들 국제학생은 크게 학부·대학원 정규 과정에 등록한 유학생과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한 학기...
우리가 줄곧 찾아 다니는 커피전문점은 공부, 잡담, 휴식, 독서 등 한 장소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공간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커피점의 커피 맛 마저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관심을 파는 가게스타벅스제 3의 생활공간이라고...
여학생들을 위한 “Just For Girls”체육 수업
BC주 체육과정에는 달리기에다가 날마다 농구, 축구, 그리고 핸드볼 등 여러 가지 격한 스포츠들이나 체력 단련운동이 포함돼 있다. 격렬한 스포츠를 할수록 남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력이 좋지 않은 여학생들은 점수는 고사하고 수업을 즐겁게 듣기가...
연방경찰은 17일 오후 3시경 버나비 에드몬드가(Edmonds) 7100번지 인근 주거지에 괴한이 침입해 91세 남성 거주자를 폭행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거실에 머물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는 주방에 확인을 하러 갔다가 문을 부수고 들어온 괴한에게 2차례 이상 주먹으로...
올 여름까지 계속… 교차로 사방에 경찰 배치
경찰은 올 여름까지 사고가 빈발한 교차로를 교대로 돌아가며 단속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사진: 권민수 기자 ms@vanchsoun.com 메트로 밴쿠버 각지에 사고가 빈번한 교차로를 지나갈 때 운전자들은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방경찰...
12월 이래로 큰 변화 없어
BC주민들은 주수상보다 야당대표가 더 일을 잘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나...
밴쿠버 시내 사우스 슬로프지역에 3월6일 이래 길거리에서 폭행강도사건이 9건 연달아 발생해 경찰이 주의를 촉구했다. 앤디 홉스 밴쿠버시경 부경찰서장은 18일 “예측할 수 없는 폭력적인 강도 행위가 해당지역에서 3월6일 이래 9건 발생했다”며 “1~3명...
 1391  1392  1393  1394  1395  1396  1397  1398  1399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