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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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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7-07-13 00:00

登須陀山有懷
Stawamus 산에 올라 소회를 읊다

餘生足布衣 나머지 나의 인생 초야에 만족하니
悠悠太古情 태고의 깊은 정회 끝없이 흐르누나
流水回千曲 천구비 돌고 돌아 계곡물 흘러가고
巖逕履僅通 바윗길 험한틈을 신발 겨우 통과하네
峰頂眺大野 정상에서 넓은 들을 바라다 보니
茫茫春樹暢 새잎 튀운 봄나무들 끝없이 화창하네
山虛松鳶啼 텅빈 산속에는 송골매가 울어외고
風泉吼遠空 휘날리는 폭포수는 저멀리 메아리져

丁亥陽四月十九日與二人登須陀山有仙興梅軒偶吟
정해년 4월 19일 두 사람과 함께 스타와머스 정상에 올라 신선의 흥취가 있어
매헌은 우연히 읊다.

한국에 살든 외국에 나가 살든 이런 저런 친목단체에 몸을 두기 마련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응집력이 강한 친목회는 고교동창회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나 중학동창회가 있긴 하지만 저마다의 추억이 뿌연 안개 같아 흡인력이 떨어져 유명무실하기만 하고, 대학동문회는 워낙 범위가 크고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결속력이 없다. 하지만, 저마다 제임스 딘같은 '이유없는 반항아'(Rebel without cause)로서 사춘기의 절정을 마무리했던 고교시절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선명한 추억의 편린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선후배간의 애증이 교차하는 끈끈함,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진정한 모교의식(alma mater mentality)등이 강한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이곳 밴쿠버에도 연말연시면 모든 교민 신문이 고등학교 동창회 송년회 광고로 대목을 맞는 것이고 사람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참석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때만큼은 어김없이 소외감을 느낀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지지리도 오지인 지리산 골짜기 산골고등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작은 초미니 고등학교요, 유일한 면소재지 고등학교일 것이다. 전교생이 250명도 채 못 되는 가난한 사립학교라 교직원도 10명이 넘질 않았고 전기시설도 없는 교실마저 6개에 불과한 남녀공학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60년대,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논밭으로 나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던 촌무지렁이 학교였던 것이다. 수학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을엔 수업을 전폐하고 전교생이 벼 베기로 기금을 마련했던 일, 미군부대 원조로 지어 주는 학교 건물 공사에 전교생이 개미떼처럼 돌과 모래를 날라야 했던 일, 매일같이 10리 길을 걸어서 통학했던 일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갈수록 나는 모교 안의고등학교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를 낳아주고 나의 잔뼈를 굵어가게 한 내 고향 안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

5공 시절 88 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서울에 가려면 김천까지 서너시간 버스를 타고나와 열차나 고속버스를 타야 했고 부산을 가려 해도 자갈길 신작로를 버스로 8시간 이상이 걸렸으니 오지치고는 강원도 산골이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지리산과 덕유산이 만나는 서부경남의 끝자락이라 전남 남원이나 구례를 가려면 팔령재가 가로막고 전북 장수로 가려면 육십령재가 가로막았으며 대구나 김천쪽으로 가려 해도 고령재나 웅양재를 넘어야 갈 수 있는 지리적 고립을 천형처럼 떠안고 있는 곳이 바로 안의라는 곳이다. 하지만 문자그대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이라 예로부터 명현일사(名賢逸士)들의 안식처로서 안의의 서북쪽 계곡은 유홍준이 ‘나의 문화답사기’에서 밝혔다시피 조선 정자문화(亭子文化)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수십 개의 정자가 계곡마다 들어서 있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인걸지령(人傑地靈)이라 했던가. 남쪽 고개 너머 산청엔 남명 조식 선생이 칩거하셨고, 문익점 선생의 목화 재배지가, 그리고 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성철 스님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으며 수동엔 거유 일두 정여창(鄭汝昌) 선생의 고택이, 북으론 동계 정온(鄭蘊) 선생이 바로 안의 출신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의 조카 곽준이 안의 현감으로 있으면서 함양 거창 안의 3개 군민을 규합하여 왜놈들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원 옥쇄한 황석산성이 주민들의 심령에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방 후 남한의 무정부주의 운동의 효시가 바로 이곳 안의에서 있었다는 사실도 결코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이다. 첩첩산중에서 오로지 농사만을 짓고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라도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기개와 어떤 시련도 극복해 낼 수 있는 투지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인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기에 해방 후 당장 면민들의 뜻을 모아 면소재지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사립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역만리 타국에 32년째 살고 있지만 아직도 내 고장 안의를 잊지 못한다. 보잘 것 없는 오지 시골 고등학교지만 나는 다른 넉넉한 친구들처럼 부산이나 대구같은 큰 도시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고향고등학교를 나온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명문고를 나와 일류대학을 가진 못했어도 그렇게 우리 시골학교가 대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고장은 서울이나 부산의 고향 동창회가 초중고를 불문하고 차별없이 모든 초교동기면 함께 모이는 전통이 살아 있다. 좁은 산골동네 사람들은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하나로 뭉쳐진 거대한 가족이었으니 그 끈끈한 정은 도시출신들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우리들만의 위대한 유산인지도 모른다. 설령 이곳에서 연말 연시의 고교동창회에 못간다 한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겐 위안과 자부심이 되어 이민생활을 힘차게 살아오고 있는 원동력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으니 이제야 철이 들었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산골에서 태어나 뼈가 굵은 탓에 산을 가면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안온함을 느끼며 향수를 되살릴 수 있어 뒤늦게나마 산행에 몰입하게 된 것도 시골출신이 누리는 복락이지 싶다. 그러니 산에 갈 때마다 얼마나 산이 고마운지 모른다.
산은 나의 영원한 존재의 탯자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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