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어떤 신부와 나 그리고 칸쿤

정관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4-02-12 09:08

정관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늙은 개와 70 이 넘은 늙은이는 그 성질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들의 사고나 생활 습관이 이미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그걸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 인 듯하다. 필자의 경우도 새벽 2시 경이 되어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나쁜 습관을 옆에서 바꾸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마이동풍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웬만하면 그냥 접고 만다. 특히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저 경청하며 그 모임이 빨리 끝나기 만을 기다리는 편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유튜브로 강원도 평창에 있는 성 필립보생태마을 관장인 황창연 신부의 행복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는 수강생 ( 거의 60 - 70대 여성 천주교 신자들 인 듯 ) 들에게 노후에 행복하기 위한 3가지를 특히 강조하는데 그 호응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첫째는 절대로 자식과 함께 살 생각 말고 둘째는 가진 돈은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나를 위해 모두 쓰고 셋째로 죽을때는 장례비로 500만원 만 남기라는 것이었다. 누가 장례비로 500만원은 모자란다고 하자 부의금이 들어올테니 부의금 플러스 500이면 될 것 이라고 해서 청중을 웃긴다. 나는 이 완고한 할머니, 햘아버지들이 전혀 싫증을 내지 않고 강의에 열중하는, 그 신부의 강의 테크닉에 매료되었다. 아마 그 날 그의 강의를 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중 10프로 만이라도 늙으면 자식과 함께 살아야겠다던가 또는 죽어라 하고 돈을 아껴서 자식에게 모두 물려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바꾼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60 - 70 이 넘은 늙은이들의 생각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일찍이 " 자식에게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 본부 " 본부장이던 손봉호 교수 ( 전 서울대 교수 ) 님의 뜻에 감화를 받아 그렇게 뜻을 굳힌 나에게 황신부의 강연은 지금도 나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해 줌과 동시에 이번 기회에 나도 나를 위해서 돈을 좀 써 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나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이 때 우리 문협 회원 한 분이 따님 결혼식을 멕시코 칸쿤에서 올렸다는 내용과 함께 그곳의 야자수 우거진 해변과 어우러진 멋진 결혼식 사진을 카페에 올렸다. 그렇다! " 가자! 동해 바다로! " 는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평생 처음으로 순전히 나를 위한 여행 계획을 세운다. All Inclusive Cancun 7박 8일 ( 왕복 비행기, 숙소, 맛있는 식사에 모든 주류까지 포함된 칸쿤 여행 ) 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것 마저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은 아니다. 집사람과 딸이 함께하니 말이다. 출발 당일은 9시 비행기에 맞춰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샌드위치 싸고 5시 30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출발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라니 하는 수 없었다. 우리 비행기 체크인 카운터는 이미 바글바글 했다. 비록 체크 인은 늦었지만 우리 모두 넥서스 카드 소지자여서 보안 검색에서 그들을 따돌리고 1착으로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넥서스 카드가 미국 입국시에만 편리한 줄 알았는데 밴쿠버 공항 출국 시에도 효력을 발휘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하릴없이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사들고 듀티 프리 상점을 서성이며 시간을 죽였다.
비행기는 만 석 이었다. 일찍 예약하지 못한 죄로 우리 세 식구는 분산 된 좌석을 배정 받았다. 꼼짝 없이 내 자리에 콕 박혀 가야 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겠다. 대부분이 젊은이들 이었지만 가족을 동반한 우리 같은 늙은이도 있었다. 이륙하고 한참 후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커피를 한 잔 시키니 4불 55 센트란다. 아니? 3년 전에는 국내선도 커피는 공짜였는데 이건 그래도 명색이 국제선 아닌가. 커피 4불 55센트, 컵라면 6불 55센트. 이 비행기에서 공짜란 냉수 햔 잔 뿐이다. 와! 비행기 인심도 점점 야박해짐을 느꼈다.
  하는 수 없이 그 맛없고 비싼 커피로 샌드위치를 뱃속에 우겨 넣고 칸쿤의 열대 바다와 낭만에 대하여 상상 하다 보니 착륙 준비를 하라고 한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태양의 나라 멕시코 칸쿤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 멋진 곳에서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음식 호사를 누리며 젊은이들이 타는 카약이 하도 멋져 보여 카약을 1시간 대여했으나 30분 만에 반납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바로 더위 먹고 ( 8월의 칸쿤은 정말 뜨거웠다 ), 식욕 떨어지고, 살 데이고, 허벅지 높이의 바닷물에서도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고는 제 때 일어나지 못해 아내와 딸의 부축임을 받고 겨우 일어서는 불상사(?) 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곳 밴쿠버로 돌아온 후에도 한 동안 부부 동반 모임 때 마다 아내가 나의 이 치부를 들춰내는 바람에 만인의 놀림감이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우리 보다 앞서 칸쿤에 다녀온 여행 선배께서 그곳에 갈 때 컵라면 한 박스 가져가라고 했는데 라면이라면 질색인 집사람은 " 아니 그곳에 그렇게 먹을게 많다면서 웬 컵라면이냐? " 고 그들의 충고를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런데 사흘도 안돼 김치 생각이 나더니 4-5일이 지나니 아닌 게 아니라 컵라면 생각이 간절했다. 호텔 매점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컵라면을 파는데 그 가격이 3불 50이다. 그것도 미국 달러로. 일단 그 리조트 구역에 들어서면 모두 호구다. 그곳에서 현지 쇼핑 몰까지는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쪄랴 그걸 꼭 먹어야 속이 풀리겠으니. 이곳에서 캐나다 달러로 1불 20 짜리를 세배를 더 주고 그걸 사 먹으려니 이 새 가슴은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집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여행 선배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 마누라 말 잘 들으면 자다 가도 떡이 생긴다. " 고 하는데 누가 그런 헛소리를 지어냈는지 알고 싶어졌다.
  나도 제법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이번 여행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그 곳을 100% 즐기기는커녕 그저 어리벙벙 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이건 내가 스페인어를 못해서 가 아니었다. 허기사 그 땅에서는 호텔을 한 발짝만 벗어나면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2주 간 남미를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가 말이 안 통해 먹는 것도 제대로 못 찾아 먹고 고생만 하다 왔다고 했는데 이해가 간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여전히 음료수에 돈을 받는다. 그렇지. 같은 항공사인데 다르면 이상하렸다. 여전히 커피 4.55$, 컵라면 6.55$ 공짜는 냉수 한 잔 뿐. 그래도 잘 들 사 먹는다. 우리는 미리 밖에서 사온 컵라면을 승무원 눈치 안보고 보란 듯이 꺼내 뜨거운 물 ( 냉수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물이니 당연히 -공짜였다. ) 을 청해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마치 너희가 기내에서 파는 커피와 라면이 너무 비싸서 그렇다고 데모 하듯이. 승무원들이 이 내 마음을 알았을까?
  그런데 그 비행기 안이 내가 느끼기에 너무 서늘하더니 급기야 이곳에 도착해서 바로 감기가 와서 1주일을 거의 격리된 상태로 지냈다. 너무 더운데서 지내다 갑자기 서늘한 곳에 들어서니 몸이 제 때 적응을 못하는 나이가 되었는가 보다. 그러나 재미있었다. 한 열흘 정도 더 지나니 다시 그곳 생각이 났다. 뜨거운 태양, 새파란 하늘, 멀리 보이는 수평선, 푸른 바다에 흰 가로 선을 그으며 밀려드는 파도, 하얀 모래사장, 카약....... 그리고 비행기에서 먹던 컵라면까지. 참 사람의 마음이란. 재력만 뒷 받침 된다면 내년 1 - 2월 경에 또 가고 싶다. 그러다 " 스님이 고기 맛을 보면 절에 빈대가 남아 나지 않는다. " 라는 말이 생각나서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목련 꽃 필 무렵 2023.04.24 (월)
   지나는 나그네 마냥 잠시 봄이 찾아 왔던 것을 잊은 채, 뜨거운 여름을 시원한 바다에서 보냈던 시간도 눈 깜짝 할 사이 지나, 어느 순간 붉게 물들인 나무들을 바라보며 시간의 무상함을 말하다 또 거센 추위에 맞서야만 하는 혹독한 시간을 지나고, 마침내 다시 따스한 기운이 스며드는 햇살에 몸을 담그고 볼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게 될 때, 하얀 목련 꽃을 바라보며 벌써 봄이 왔다고 탄성을 부른다.그런데 지금 까지 밴쿠버에...
허지수
설핏한 산 촌의 밤, 소리 소문도 없이立冬의 높은 담을 넘은 이 누구신가동장군 검은 속내도 씻겨 내린 저 달빛산이 내 게로 오는 小雪엔 강이 운다유장한 강물마저 비수를 빼어 들고미완성 한 줄 문장을 써 내리는 보우강허투루 여울 물은 사람을 폄하하지않는다 물소리에 숨겨진 산의 형체살얼음 뼈 조각까지 순장 하는 매듭 달철없는 눈이 내려 불면의 상처들을덮지만 출렁이며 다시 첨벙 대는 날급류로 휘 돌던 아픔 꽂 잠에게 바치리
이상목
바닷가에 갈매기들이 공중에서 떼를 지어침묵으로 포물선을 그리는 춤사위는자유를 갈망하는 몸짓인가.오랜 세월 대대로 이어온 날개 짓은갈매기들의 반란이 아니며 기슭에서 먹이를 찾는 연습이다. 깊은 산에 혼자 있다그루터기가 된 나무는줄기와 잎이 떠나도 뿌리로 먹이를 찾는다 하루 종일 햇빛을 받다가 먹구름 몰려오고어둠에 비 몰아쳐도 동트는 아침이 오면산새들은 나이테 위에 앉아 재잘거리고어느 새 끼리끼리 먹이를 나누며...
송요상
예술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음악의 주된 이야기는 사랑으로 이어진 슬픔과 환희의 표현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 론에서 가장 완벽한 문학 장르는 비극이라고 단언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연민과 회한을 통해 격정을 덜어내는 진솔한 스토리야 말로 예술의 절정을 말해 준다. 우리들의 삶속에서 비극은 슬픔 그 자체로 각인되어 남지만 예술이 보여주는 슬픈 장르는 가슴을 적셔주는 아픔과 눈물로 이어지다...
자명
수양매화 2023.04.17 (월)
   사월 중순, 경기도 축령산 자락에 둘러싸인 아침 고요 수목원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단번에 눈이 황홀해져 어쩔 줄 모르고 오랫동안 바라만 본다. 여인은 방문 밖으로 긴 주렴을 늘어뜨리고 그 안에서 홀로 가야금을 뜯고 있는가. 내 가슴에 덩기둥, 덩기둥 가야금 소리가 울리고 있다. 10만 평의 수목원을 가득 메운 꽃들 중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벚꽃, 매화, 목련 등 하얀 빛깔의 꽃이다. 나무 한 그루 씩이 거대한 꽃 궁궐을 이루고 있다....
정목일
나는 잠의 나라에서 온 사람물 빛 수련 위로 물 새들 날아오르고꽃가루 속에 입술 묻었던 나비들물 안개 따라 날아오른다공기 방울, 물방울 같은 나비 날개들하늘하늘 잠들 곳을 찾아 날아오르고나는 먼 나라에서 온 집시처럼섬 같은 외로움 찍으며 간다물속에서 팔딱거리는 은빛 물고기들노을 빛 햇살 가르며 튀어 오르는데나는 물 속 돌 틈에 기대 앉아물고기처럼 한 쪽 발 담근다
이영춘
디지털 적토마 2023.04.11 (화)
  디지털 문화의 첨단기술,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이 매우 유용할 것이며, 앞으로 인공지능 없는 우리 생활을 생각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석기 혁명을 시작으로 몇번의 획기적인 혁명이 있었다. 그 혁명을 통해 인류는 그 때마다 비약적인 발전의 단계를 거쳐왔다. 인공지능 역시 인류의 발전을 한 단계 끌어 올릴...
정효봉
착각 2023.04.11 (화)
내가 단단한 결정이라는 착각 우리가 개별 포장이라는 오산 나는 나 너는 단지 너라는 착오  물감처럼 우리는 혼색되고 있다 마주치면 물들어 퍼져나가는 파레트 오케스트라 합주 공중에서 섞여 춤추는 소리의 물결 커다란 봉투 안에 뒤섞인 색색깔 별사탕  떨림과 떨림그 사이 사이 구멍.별과 별 사이 우주만큼이나 무수한 구멍들 그러니 당연하지 가끔 나도...
이인숙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