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어김없이 봄은 우리 곁에 와 있지만 모두가 말을 잃어가는 계절이다. 전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촌의 질서를 온통 뒤집어 놓았다. 사람들은 불가항력적인
전염병에 공포를 느끼며 당장의 무사함에 잠시 안도하고 있다. 신록의 푸르름이 물결치고 노란
축포를 터트리는 민들레의 봄이 왔으나 그전의 봄은 아닌 것이다.
4월로 접어들어 콜로니 농장으로부터 텃밭을 개방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봄비가 내려
씨를 뿌리기 알맞은 곡우의 절기가 다시 돌아왔다. 자가격리에 가까운 생활에서 벗어나 갈 곳이
생긴 것은 긴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골든 이어스 눈 덮인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텃밭으로 갈 때면 공중을 가르는 새들과 초록 물결을 이루는 억새들의 사열을 받는다. 텃밭에서
만나는 이웃들도 고립된 일상에서 벗어난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열심히 퇴비를 나르고 씨와
모종을 나누며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모습들이다. 나는 주저 없이 삽을 들고 남편을 도와 20여
평의 텃밭 흙을 뒤엎기 시작한다.
2020년 5월 말 집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전염병 코비드-19에 의해 373,899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 생태 환경이 열악한 인구 밀집 지역의 빈곤층에 빠르게
전파되어 높은 치사율을 기록했다.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된 팬데믹 현상은 각국의 대처 방법에
따라 확진자와 치사율에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 캐나다 BC주, 대만, 독일은 정부와 주 정부
차원의 재난을 대비한 지속적인 역학 연구 지원과 철저한 방역 체계로 세계가 주목하는 확산
방지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은 집단 감염의 신속한 접촉자 파악과 진단 검사, 국민들의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 등의 방역 수칙으로 추가 확산을 신속히 통제했다. 또한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한 자가 격리 앱은 격리자의 의심 증상 보고와 이탈 여부 확인 등으로 바이러스 퇴치에
놀라운 기능을 발휘했다. 특히 방역 담당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 방호복에 가려 얼굴도 보이지
않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힘든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우리는 요즘 코비드-19 사태 후 맞게 될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 경제와 고용 위기,
기아와 빈곤층의 발생, 취업과 진로의 불안, 생필품 공급망의 붕괴 등 불안한 뉴스를 접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 자연 생태계 보호,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매연과
공기 오염의 감소, 과학 기술적 의료 체계 강화는 팬데믹 재난에 대처하는 인류의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코비드-19 발생 후 지난해보다 3배 이상 많게 밴쿠버 경찰에 접수된 70여 건의
인종 차별 사례 또한 심각한 사회 현상이다. UBC의 마크 샬럿 맥라크란 교수는 코비드-19
위협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을 ‘행동 면역 체계’라고 정의하며, “잠재적 병원체와의 접촉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을 더 존중하고, 외부인을 불신하는 보수적 태도를
보인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미국 시카고에서 호응을 얻는 “따로 함께하자(Together Apart)”는 TV 공익 광고는
코비드-19 재난 극복을 위해 인종과 지역, 나이에 구별 없는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국가적 위기에서 한 개인은 ‘공동의 선’을 위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며 모두가 상호 의존적
관계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고립된 생활을 하며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강과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가족 그리고 영혼을 위로하는 책과 음악이 있다면 그 외의 것들은 군더더기임을 깨닫는다. 식료품과 약, 기본적인 생필품만으로도 하루를 별 탈 없이
보내는 요즈음, 여행과 쇼핑, 외식이 없던 어릴 적 조부모님의 단순 소박한 삶을 돌아보게 된다.
텃밭에 뿌린 씨앗들이 저마다 다른 생김으로 땅 위로 올라온다. 먹이를 물고 둥지를 찾는
어미 새, 벌과 나비의 부산한 날개짓, 하루가 다르게 푸릇해지는 텃밭 풍경---, 모두가 지난봄
그대로이다. 그러나 날마다 증가하는 코비드-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인터넷 신문 머리기사로
실리는 수상한 계절이다. BC주 보건당국이 올가을 코비드-19, 2차 대유행을 예상하는 지금
우리의 희망은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킬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는 일이다. 부디 ‘그 재난은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 번의 시련이었다’고 말 할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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