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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군인이었습니다”

권승준 기자 virt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11-18 18:18

"화염이 치솟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오직 K-9 자주포를 쏴야 한다는 생각 밖엔 없었습니다."

임준영(22)씨는 1년 전인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해병대 연평부대 포7중대 상병으로 북한의 포격 도발에 맞서 K-9 자주포를 쐈다. 방탄모 외피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대응 사격에 나섰던 바로 그 해병이다.

방탄모에 붙은 불길은 어느새 턱 끈을 타고 내려왔다. 방탄모 턱 끈과 전투복은 화염에 까맣게 그을렸지만 임 상병은 자주포를 포상에 옮기고 대응 사격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임 상병은 입술 위 인중에 화상을 입었다.

임씨는 "장약이 적탄에 맞아 불이 붙어서 몇 미터 높이의 불기둥이 솟았는데, 그 불꽃이 방탄모에 튀어서 불이 붙은 것 같지만 솔직히 어떤 경로로 불이 붙었는지도 몰랐다"며 "평소 연습했던 대로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대응 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라 군인"이라고 했다. 임 상병의 불에 탄 방탄모는 해병대 정신의 귀감으로 해병대 박물관에 진열됐다.

 

그때 방탄모는 아직 그의 가슴에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서해 연평도는 전쟁터가 됐다. 해병 2명이 숨지는 등 모두 4명이 사망하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일은 휴전선 너머에 얼마나 호전적인 세력이 있는지, 평화로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순식간에 깨질 수 있는지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해병 임준영 상병은 방탄모에 불이 붙은 것도 모르고 K-9에 올라 대응사격을 했다. 불에 타 외피가 벗겨진 그의 방탄모, 코 밑의 그을린 흔적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말해준다. /사진공동취재단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이 "포격과 화염의 공포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임 상병의 방탄모를 해병대 정신의 귀감이 되도록 영원히 해병대 박물관에 전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내 방탄모가 해병대 박물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직 보진 못했다"면서 "그 방탄모는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고 했다.

18일 경기도 일산의 자택에서 만난 임씨는 "당시 방탄모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대응 사격을 하고 있는데 전우가 소화기로 불을 꺼줬다"며 "당황했지만 평소 훈련했던 대로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지난 7월 제대해 인하공업전문대 자동차학과 1학년에 복학해 평범한 대학생이 됐다. "친구들은 내가 연평도의 바로 그 해병인지 몰라요. 자랑할 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역을 2주 앞두고 있던 정병문(22)씨는 제3포반 선임병으로 표적을 조준하는 사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제대 후 조선대 제어계측공학과에 복학해 재학 중인 정씨는 "고향 친구이던 고(故) 서정우 하사 생각이 나서 연평도 얘기를 일부러 피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적 포탄이 떨어지는 폭발음에 귀가 먹먹해지고, 정신을 차려보니 포반장 김영복 하사가 파편을 맞아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손짓으로 대원들에게 대응 사격을 지시했다"며 "귀가 먹먹해져 적의 포탄 소리가 '둥둥둥' 북 치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씨는 "포반장 김 하사가 머리에 피를 흘리는 걸 본 순간 울컥하며 분노가 치밀었다"며 "청각이 회복되면서 '치지직'하는 무전 소리가 들렸다. 중대장이 무섭도록 침착한 목소리로 '피해 현황 보고하라. 곧 사격명령 내릴 테니 사격 준비하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발을 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오직 김 하사의 복수만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그때 적에게 충분히 사격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며 "해병대가 지금이라도 부르면 다시 입대해서 싸우고 싶다"고 했다.

당시 통신병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포탄과 화염을 뚫고 끊어진 통신선을 이었던 전명준(21)씨는 " 아직도 당시의 상황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한동안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이 시작되면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면서 "눈 앞에서 K-9 자주포가 적의 포탄에 맞는 것을 보면서 공포감이 몰려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제대 후 충남 서산의 한서대에 복학한 전씨는 "포7중대 동기들과 몇 달에 한 번씩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아직도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선하고, 심지어 눈에 보인다. 이건 우리들만의 이야기다.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를 나눈다"며 "사람들은 연평도를 잊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잊지않고 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포탄 속에서도 꿋꿋했던 해병들, 그대들을 잊지 않으리 - ‘잊지 않겠습니다!’작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戰死)한 고(故) 서정우(22·해병 1088기) 하사와 문광욱(20·해병 1124기) 일병의 묘역.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그는 "연평도가 공격 당하고 나서 바로 북한이 '주적(主敵)'이라는 감정이 각인됐다. 전우를 잃은 분노가 참기 어려웠다. 전시 상황이 벌어지면 적을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아군 피해는 전사 2명, 중상 6명, 경상 1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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