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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공예에는 느림의 미학이 녹아 있습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2-07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왕년에..' / 김효주씨

전 LA VanNess 초등학교 교사, 코리안 유스센터 상담사
현 연세대학교 국제교류원 강사

규방공예가 김효주씨.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국으로 이민, 84년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에서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로스엘젤레스에서 초등학교 교사와 ‘LA 코리안 유스센터’ 상담사로 근무하며 미국인으로 살아 온 그는,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조각보의 은은하고 아름다운 선에 반해 규방공예가가 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규방공예, 조각보를 보고 나서다.

■느림의 미학이 녹아 있는 규방공예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물론 달라지겠지만, 아이들의 배냇저고리 한 벌 만드는데 1주 정도 걸려요. 쌍둥이도 세대 차이 난다는 농담처럼 빠른 것이 대접받는 이 시대에, 이처럼 느린 작업이 어쩌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속에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불린 우리나라의 조용하고 진득한 선조들의 느림의 미학이 녹아있습니다."
'규방(閨房)'은 조선조 여인들이 거처하던 내실을 뜻하는 말이다. 예전 가난하던 시절 여자들은 그 규방 안에서 인내하며 오직 가족들의 '의식주'를 꾸리는 일에 전념했다. 가족의 옷을 짓거나 버선을 만들고 수를 놓아 장식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창조해 냈다. 그 인내와 사랑이 오히려 우리네 여인들의 '바느질과 자수문화'를 꽃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뜻 보기에 미국의 노동자들이 천을 아끼기 위해 재활용한 ‘퀼트’와 비슷하지만 우리 선조 여인들은 그 이전부터 이미 자투리 천을 이용해 소품을 만들어 사용하던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
이 규방공예는 여러 분야로 또 나누어지지만, 천 조각을 이어 만드는 조각보는 그 조화로운 빛깔과 정교한 바느질 솜씨로 한국적인 정서가 가장 많이 깃들어 있다. 
 
■ 조각보에 반해 시작

‘규방칠우' 등의 자료에 남아있는 조각보를 되살려 규방공예가가 된 김효주씨가 규방공예가가 된 것은 한국을 ‘너무 몰랐던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갔어요. 마침 박물관에서 규방공예 작품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의 천도 있구나 감탄을 했죠.”
조각보를 단순히 바느질로 생각하고 국립중앙박물관 특설강좌에 등록을 했던 김씨. 그러나 알면 알 수록 오묘함에 빠져들게 하는 조각보는 그가 알고 있던 단순한 바느질이 아니었다. 한 뜸 한 뜸 손으로 만드는 과정은 극도의 섬세함으로 인내심을 요구했다.   
“취미로 배운다 해도 조각보를 하려면 우선 바늘과 친해야 해요. 한 뜸도 바늘 끝이 지나가지 않는 자리는 없으니까요. 또 다른 색깔의 천을 조각조각 이어 만드는 것인 만큼 색감에 대한 감각도 있어야 하죠. 그래서 조각보를 조금 익히고 나면 자연스럽게 천연염색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기죠.”
이런 이유로 조각보에 심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연염색을 하다가 조각보로, 조각보를 배우다가 천연염색을 함께 하게 된다는 것. 김씨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천연염색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직접 염색하는 일부터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몇 번 염색한 다음 착색하고, 전통방식대로 풀 먹여 다듬이질해서 반듯하게 손질된 천을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조각보를 만든다.
이때 바늘땀을 고르게 해야 하니 숨결조차 흔들리지 않도록 차분한 호흡과 명상하듯 정신을 바르게 차리고 한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일반 천으로 만든 어떤 것들과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그 매력에 빠져 십 수년 천 조각과 씨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가례복 재현 전시에도 참가
 
규방공예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김효주씨의 우리 문화 익히기 노력은 비단 조각보뿐 아니다. 한국복식봉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은신군 관례 복식전’과 ‘고종, 명성황후의 가례복’, ‘순종비 가례복’을 재현해 내는 스승의 작품전에도 '상궁복'으로 참가했다. 우리 전통 다도에도 심취해 2000년 다도사범 자격도 취득했다.
미국에서 자라 우리 전통방식의 옷 만들기와 손바느질을 구경해 본 적도 없는 김씨가, 이처럼 우리 전통문화에 반한 데는 또 ‘핏줄’과도 연관성이 있을 듯 하다.
“순조임금의 3녀 덕원공주의 맏며느리께서 친할아버지의 고모님이세요. 덕분에 미국을 가기 전 어릴 때 한국에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몰랐지만 우리 전통적인 문화를 많이 체험했던 것 같아요. 손으로 만든 바느질 소품과 옷 등등 소품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어요. 그런 기억들이 은연중에 제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김씨가 조각보를 배우기 위해 처음 시작한 곳은 국립중앙박물관내 개설된 전통문화 특설강좌. 이후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대학 한국복식학과에 등록, 우리나라 복식의 디자인, 재단, 복식 전반에 관해 공부를 했다.
그동안 한국을 비롯해 이곳 캐나다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해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자신처럼 규방공예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든 이들과 아보츠포드 지역에서 ‘조각보 공예’모임도 만들어 무료로 지도도 하고 있다

한국주재 외국대사 부인들에게 규방공예 가르쳐

김씨는 2000년 9월부터 세종문화회관 산하 삼청각 전통문화교실에서 우리나라에 부임한 재외 공관장들의 부인들을 대상으로 규방공예를 가르쳤다.
“너무 열심히 하고 너무 알려고 해서 우리 문화 빼앗기는 기분 들 정도로 매달려요. 그러고나서 집에 가면 일하는 운전기사와 도우미 아줌마들 앞장 세워 박물관이니 전시회 찾아 다니면서 무섭게 배워요.”
이때 그에게 규방공예를 배우던 노르웨이 참사관  부인은 영문으로 우리 규방공예를 영문매거진에 기고를 하기도 했다. 그들을 보면서 김씨는 “우리 한국인들이 조금 배워서 흉내를 내어서는 결코 안되겠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좋아서’ 만든 그의 작품들은 소박하면서도 단아하다. 그러면서도 또 우아함과 화려함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한사코 “옛날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면 누구나 다 하던 것”이라며 겸손해 하는 김씨. 그가 만든 전통 가리개와 창문 발 등은 어떤 현대적 감각의 공예품에 비교해도 가치 있고 실용성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그가 최근 회원들과 만든 아기 버선은 끝 처리가 빨간 바이어스로 덧대어 색동옷 같이 소박하면서도 앙증맞은, 이런 작품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비록 쓰진 않아도 소장해 두기 위해 ‘하나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보츠포드에 오기 전까지 맡고 있던 연세대학교 국제교류원은 현재 그의 제자가 잠시 맡고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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