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19세로 참전했던 도널드 본 일병의 생전 모습. 1951년 발견된 신원 미상의 유해가 최근 그의 것으로 확인됐다. /미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
6·25 전쟁 당시 19세로 참전했던 도널드 본 일병의 생전 모습. 1951년 발견된 신원 미상의 유해가 최근 그의 것으로 확인됐다. /미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


6·25 전쟁 발발 한 달이 지난 1950년 7월 30일 경남 진주 남강변. 거침없이 치고 내려온 북한군에 맞서 악전고투하던 미 육군 24보병사단 19연대 2대대 G중대원 중에 아직 앳된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 살의 도널드 본 일병이 있었다. 그가 소속된 부대원들은 일본에 주둔하다가 북한의 남침 직후 한국으로 배치됐다. 거침없이 밀고 내려온 북한군에 맞서 진주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대항했다. 그러나 변변한 화기에 대전차 무기도 없는 열악한 전력에다 숫자에서도 북한군에 크게 밀렸던 G중대원들은 결국 이날 퇴각했다. 그 아수라장 속에 본 일병은 행방불명됐다. 그 후로 그를 본 목격자는 없었다.

포로 수용소에서도 그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미군은 1953년 12월 본 일병을 추정 전사자로 등재했다. 시신은 찾지 못했지만 전사자가 확실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잊혔던 열아홉 젊은 병사가 뒤늦게 귀향길에 올랐다. 72년 만에 유해가 발견된 것이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지난 2일(현지 시각) 본 일병의 유해가 최종 신원이 확인돼 30일 펜실베이니아주 앤빌에서 영면에 든다고 밝혔다. 본 일병이 실종되고 반년이 지난 1951년 1월 신원 미상의 유해가 발견됐다. 이후 71년은 이 유해의 주인공이 바로 본 일병임을 밝혀내는 시간이었다. 당시 이 유해에 붙은 이름은 ‘마산 X-220′이었다. 현 진주시 평거동 인근에서 수습된 이 유해가 본 일병의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은 이때부터 나왔지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정밀 감식 장치가 없어 신원 확인 판정을 내리지 못했다.

X-220은 마산에 있던 미군 묘지에 임시 안장돼 있다가 역시 주인을 찾지 못한 다른 6·25 참전 미군 유해와 일본의 미군 신원 감식 시설을 거쳐 함께 하와이에 있는 국립묘지 신원 미확인 용사 묘역(펀치볼)에 묻혔다. X-220이 다시 빛을 본 것은 2019년 3월이었다. 오랜 세월 다양한 감식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한 DPAA는 2019년부터 신원 미확인 상태로 잠들어있는 6·25 참전 군인 유해 652구의 신원을 확인해 고향 유족들에게 돌려보내기 위한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그 첫 단계로 6·25 발발 초기 부산·마산 일대에서 악전고투하다 희생된 미군 유해들이 수습돼 DPAA 유해분석연구실로 옮겨졌다. 본 일병의 유해 감식을 위해 DPAA 소속 과학자들은 인류학적 분석과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등 최신 기법을 활용했다. 인력도 보강됐다. 이런 노력 끝에 본 일병의 귀향길이 열렸다.

지난달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서는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가 들어섰다. 미군 전사자 중에는 본 일병처럼 뒤늦게 귀향길에 올랐거나, 아직 발굴과 신원 확인을 기다리는 장병들도 상당수다. 미국의 소리(VOA)에 따르면, 현재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미군 6·25 전사자는 7500여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