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첫 아이가 태어나 더 큰 집으로 옮기려고 아파트 매매 계약을 했다. 연달아 나오는 대출 축소 뉴스를 보고 불안해져 지난 25일 회사 근처 은행 지점을 찾았다. 김씨는 “마이너스 대출은 5000만원까지밖에 안 되고 주택담보대출은 연말쯤 상황 보고 신청하라더라”며 “내년 1월 잔금인데 운에 맡기라는 말이냐”고 했다.
금융 당국의 대출 조이기 압박으로 은행들이 대출 한도를 갑자기 줄이거나 아예 중단해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신용대출 가릴 것 없이 ‘대출 절벽’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실수요자들 사이에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들의 대출 축소 방안이 잇따르자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관련 글이 매일 수백 건씩 올라오고 있다. “눈앞이 깜깜하다. 부동산 집값 잡겠다 해서 기다렸는데 그 끝은 대출 자르기인가”, “뉴스 보기 겁난다. 현금 없는 사람들은 어쩌란 건가” 등 대출 불안을 호소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당장 연내에 부동산 관련 대출을 받아야 하거나 이사 등을 생각하고 있던 이들이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일단 어떤 방법이든 대출을 최대한으로 내놓고 보려는 ‘패닉(공황) 대출’ 현상까지 벌어지는 중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27일 인사청문회 때 “가능한 모든 정책 역량을 동원해 가계 부채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혀, 더 강력한 대출 압박을 예고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은행에 가계 대출을 줄이라고 최근 지시한 후 대부분 은행은 신용대출과 마이너스대출 한도를 이미 크게 줄이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 5000만원이 최대
금융감독원은 은행(저축은행 포함)권에 지난 27일까지 가계 대출 통제 방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주요 은행들은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줄이겠다고 했고, 대출 축소에 들어갔다. 금감원이 지난 13일 주요 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을 불러 요구한 내용대로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의 2배’에서 ‘연소득’으로 낮춘 것이다. 올해 가계 대출 증가율이 비교적 높은 NH농협은행, 하나은행은 이미 시행에 들어갔고 KB국민, 신한, 우리은행은 다음 달 중 시행할 예정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도 신용 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직장인들의 비상 지갑으로 불리는 ‘마이너스 통장’ 한도도 5000만원으로 쪼그라든다. NH농협, 신한, 우리, 하나은행은 이미 한도를 축소했고, KB국민은행도 9월 중에 시행한다. 5대 은행에서 5000만원 이상 마이너스 통장이 사라지게 된다.
앞서 NH농협은행은 금융위의 대출 총량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을 중단(지난 24일부터 11월까지)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2%대 주택담보대출 사라질 듯
금융 당국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불어난 가계 대출을 통제하지 않으면 자산 거품 등 부작용이 악화될 위험이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임대차 3법 등 정책 실패로 인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대출 조이기로만 해결하려 해 실수요자가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책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야 하는데 금융 당국이 은행에 한 마디 하고 은행은 앞다퉈 대출 축소하고 있다”면 “젊은 직장인 등의 부동산 거래가 막히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출 금리도 올라가게 될 것이라 대출 여건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지난 26일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연내 추가 인상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현재 연 2.72~4.13%인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0월쯤부터 올라가, 최저 금리가 연내 3%대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은 일단은 대출 축소는 신규 대출에 한정되며 이미 나간 대출을 회수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마이너스 대출 등의 ‘재약정’ 시점 등에 맞춰 한도 축소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대출 제한은 일단은 올해까지”라며 “내년 대출 관련 당국의 입장은 여전히 나온 것이 없어 지금으로서는 추가 지침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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