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희 / (사)한인문협 밴쿠버 지부 회원
11월 마지막 주말이 되면 아들네는 모두 소나무 농장으로 나무를 사러 떠난다.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골라 톱으로 자르고 베어 차에 싣고 나면 어른들은 따근한 커피 아이들은 핫 쵸코릿을 사서 마시고 크리스마스 트리 쇼핑을 끝낸다.
거실에 사다리를 높이 올려 나무 끝까지 올라간 아들은 며느리와 아이들이 일러주는 대로 이리 저리 천사의 위치를 고정하고 장식 등을 키면 아이들은 나무 사이사이에 장식을 걸고 캔디 케인도 걸어 놓는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식은 크지도 않으면서 반짝이는 작은 별이다. 머리에 천사를 이고 가슴에 별을 달고 온 몸에 알록 달록 장식을 붙인 소나무는 거실을 소나무 향기로 꽉 채운다.
12월 한 달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들떠 지낸다. 아이들과 함께 생강 쿠키 집도 단장하고 하루에 한 개씩만 빼 먹는 쵸코릿 박스에 매일 한 개씩 문이 열린다. 크리스마스가 몇일 남았는지를 헤아리는 카운트 다운을 하는 것이다. 트리 밑에는 울긋 불긋 포장한 선물들이 쌓이고.
드디어 24일 낮, 싼타가 찾아 와서 먹어야하는 색색의 쿠키를 굽고, 사슴이 먹을 당근도 챙기고, 드디어 벽에 걸어 둔 선물 버선이 꽉 꽉 차서 터질듯 쌓이면 아이들은 일찍 자야한다. 싼타는 자는 아이에게만 찾아 오니까. 마침내 아이들이 모두 꿈나라로 떠나면 어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버선 속에 들어 있는 선물들을 한 사람씩 돌려 가며 뜯는다. 발신인 없는 버선 속 선물은 누가 넣었는지 알 필요도 없고 그저 싼타가 넣어 준 선물로 알고 감사하며 뜯는다. 큰 선물은 포장하여 점잔케 나무 밑에 갖다 놓지만 버선 속에 들어 갈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일일이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한달 내내 식구들 모두가 한나씩 둘씩 준비되는 대로 집어 넣지만 헐렁하니 빈 버선은 주로 며느리의 사랑의 손길로 꽉 채워진다. 별것도 아닌 물건들이다. 치실, 칫솔, 여행용 로션, 남자들 미용에 필요한 것들, 작은 행주, 수세미. 상비 약등 ..하찮은 것들이지만 일년 내내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들이다. 일일이 그런 물건들을 사러 다니려면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어느 해인가, 아들은 너무 바빠서 선물을 사러 다닐 시간이 없었다. 아내의 버선에 채워 넣어야 할 물건이 빈약했고 시간은 없고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아내는 자기 버선 속에서 작은 향수병 하나를 꺼내더니, ‘이건 내가 쓰던 거 아냐?’ 뭔가 채워 넣어야 하는데 궁여지책으로 아내의 향수병이 아직 새것인줄로 착각하고 슬쩍 아내의 버선 속에 집어넣었던 것이 들통이 났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깰까봐 큰 소리로 웃지도 못 하고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뺀 추억도 있었다.
드디어 25일 새벽 아이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산타가 쿠키와 우유를 다 마셨고 사슴이 당근도 다 먹어 치웠다고 소란을 피우면 우리는 모두 트리 앞에 모여 앉는다. 산타의 모자를 쓴 사람이 선물 받는 사람 이름을 호명하며 선물을 안겨 준다. 선물 받은 사람은 카드를 읽고 물건을 뜯고 고맙다고 허그와 인사를 하면 그 다음 사람 차례가 되어 똑 같은 방식으로 카드 읽고 선물 뜯고.. 그렇게 거의 두시간 정도 선물뜯기 행사가 끝내게 되면 미리 준비한 스코트랜드 식 아침 정식으로 허기를 채운다. 서양식 순대(black pudding), 두툼한 베이컨(Ayshire bacon), 콩죽(beans), 서양식 감자전(potato scorn), 토매토 볶음(fried tomato), 그리고 겨란 프라이.
팬데믹 제한 규제로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전례인 성탄 미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집에서 라이브로 참석했다. 그러나 미사의 클라이막스인 성체는 미사 후 사제는 성체를 모시고 밖으로 나와서 분배하므로 다행히 성체를 모실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코로나가 얼마나 우리의 일상을 바궈 놓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왜 이런 시련을 겪고 살아야 하는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이토록 우리의 시련을 방관 하시는가? 누구든 한번 쯤은 생각 해 봄직한 오늘의 아픔이요 또한 성찰의 시간이다. 펜데믹 아픔의 브레인 스톰을 지나 건져낸 단어 두개, 그것은 교회와 가정이다.
그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가정 울타리의 의미를 잃고 살아 왔다. 혼자 밥 먹는다는 혼밥, 혼족 등.. 전에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신조어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세상이다. 자의거나 타의거나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독신자들, 혹 결혼을 해도 의도적으로 아기의 출산을 거부하는 사람들, 결혼했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쉽게 이혼하는 사람들.. 가정이라는 단어가 설 자리를 잃어 버린지 오래다. 가정 뿐인가?
교회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자신의 만족을 위한 놀이터 정도로 왔다 갔다 했던 사람들, 또는 무슨 단체장을 하면 감투가 머리위에 올라가는 줄 알고 목이 뻣뻣 했던 사람들, 교회 문이 닫혔으니 어디로 갈 것인가? 선택의 여지 없이 가정이다. 가정 안에서 예배도 보고 가정 안에서 식구들과 음식도 나눠야 한다.
그리하여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가정안에 리이브라는 매체로 교회를 꾸미게 해 주었고 가정 울타리 안에 소 공동체를 형성하게 해 주었다. 바이러스를 피해 찾아 들어 간 가정 울타리 안에서 모두가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걷어 내리는 날 며느리는 천사와 별을 받아 고이 상자 안에 넣었다. 다음 해 크리스마스를 기약하면서. 그날 밤 천사와 별은 상자 속에 들어가면서 또 한해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을 약속한다. 천사는 별을 따라 가라 하고 별은 빛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춰준다. 그리하여 내가 너를 비추고 네가 나를 비추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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