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가 발끝에서부터 몸 위로 차오르면 나는 겨울 부츠를 꺼내 신는다. 지난 1월에는 예상치 못했던 북극의 한파와 폭설로 학교와 공공기관들은 문을 닫았다. 뜻하지 않은 휴교 덕분에 아이들은 미끄럼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며 한껏 휴가를 즐겼다. 부츠를 발에 껴 신으며 나는 12년 전의 몬트리올로 돌아가 추억을 반추한다.
그는 2008년 2월 8일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긴 여행을 떠났다. 그의 생애 마지막 약 한 달, 병실에서 그가 떠날 날을 카운트다운하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을 때였다. 낮에 아이들이 병실을 지키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여러 가지 일 처리를 했다. 은행 잔고, 회사 보험, 장지 확인, 등 정말 바쁘게 며칠을 보냈다. 그의 소지품도 대충 정리 하고 이제는 차분히 병실을 지키고 있던 어느 날, 딸과 아들이 내게 살짝 물어왔다. 아빠가 왜 지갑을 침대 머리 책상에 두고 있는지 호기심에 열어 보았는데 거금 300불이 들어 있다고 의아 해 하는 것이다. 궁금하면 여쭈어 보라 했지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어느 날 궁금증을 못이긴 아들이 아빠가 조금 안정 된 시간을 틈타 물었다. 아빠 지갑 속에 있는 돈으로 뭘 할 것이냐고. 그는 잠시 싱글 미소를 지으며 쉰 소리로 ‘엄마 부츠 사주려고’ 우리는 모두 놀랐다. 그는 방사선 치료 때 성대를 상해서 목소리는 꺼져 버렸고 다만 목쉰 소리로 말을 했다. 호흡도 거동도 힘들어 하면서 아내의 부츠 걱정을 하다니! 그 때 딸아이가 간단명료하게 ‘아빠 걱정하지 마, 엄마 부츠 그 돈으로 우리가 사 드릴거야’ 했다. 그는 또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맘대로 해’. 그렇게 하여 아이들은 아빠 지갑 속에서 잠자던 300 불을 꺼내는데 성공했다.
그가 암에 걸리기 전 몇 년 동안은 여러 가지 건강 문제로 병원을 들락거렸다. 바로 그 전해 1월이었다. 그 때도 지금 밴쿠버처럼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병원 침대에 잠시 그를 남겨 두고 그의 치료에 꼭 필요 했던 물건을 챙기기 위해 급히 집으로 돌아 왔다. 급한 마음에 눈이 아직 묻어있는 부츠를 신고 집안으로 들어 가 8개나 되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아래로 드르륵 미끄러지듯 넘어졌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으나 엉덩이와 허벅지에 심하게 멍이 들어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멍 자국은 오래 갔고, 그러다 봄이 왔고 또 그의 병치레를 하느라 새 부츠를 사러 다닐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새 부츠를 사야한다고 노래를 했고 나는 산지 일 년도 안 되는 새 신이고 내 부주의로 넘어진 거라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암 말기 선고를 받고나서는 부츠 챙길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부츠가 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가 떠난 후 그 해 봄, 집 정리를 모두 끝내고 그가 남겨 준 300불로 외출용과 막 신는 부츠 두 개를 샀다. 올 들어 12년차 신고 있다. 아이들은 새것으로 바꾸라 하지만 아직도 말짱한데 새 부츠를 산다는 것은 불필요한 사치라 생각한다. 나는 옷, 신발 그 외 어떤 것도 한번 내 맘에 들면 잘 버리지 못하고 오래 쓴다. 더욱이 이 부츠엔 특별한 기억이 묻어 있기에 선뜻 버리지 못한다.
우리는 그가 마지막 가는 길을 더 따듯하게 보내 드리려고 많은 애를 썼다. 병실이 독방이라 그런대로 우리 식구끼리의 시간이 많이 허락 되었다. 회사를 다니던 아들은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된다며 12월서부터 집에 와 있었고 보스톤에서 선생을 하던 딸도 휴가 아닌 휴가를 받아 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료 선생들이 자기들이 쓸 병가 휴일을 모두 친구 선생에게 도네이션 해 준 덕분에 맘 놓고 와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가 떠나기 전 거의 두 달을 함께 지냈다. 병실에서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냉면 파티는 두 번, 애주가였던그를 위해 위스키 파티까지, 그 외에도 성가대원들의 작은 위문 음악회... 영원한 이별을 슬퍼하는 방문객들에게 그는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주면서 자기의 죽음을 준비했다.
숨이 꺼져 가면서도 그는 한 번도 아프다 괴롭다 불평 하지 않고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드렸다. 한마디로 그는 낙천가였다. 마누라와 아이들만 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 사람이었다. 그 외의 것에 정신을 팔지 않은 가정을 위한 사람이었다.
고대 로마에 호라스라는 서정 시인의 momento mori, carpe diem 라는 유명한 싯구가 있다. 그 뜻은 ‘네가 죽을 인간인 것을 알아라, 그러니 오늘을 잡아라’ 라는 뜻이라고 한다. 혹자는 잡아라 대신 즐기라 로 해석하지만 잡아라 가 더 맞을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죽게 되어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그러나 그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드리면서 내 앞에 남아 있는 오늘 이라는 시간을 최대한 후회 없이 살라는 뜻이리라.
2008년 2월 8일 새벽 5시 그가 떠나기 전 몇 시간까지 우리를 웃기고 장난치다가 드디어 그는 긴 여행의 잠으로 빠져 들어 갔다.
오늘도 나는 하느님이 허락하셨고 지금도 계속되는 시간들이 감사해서 어린아이처럼 ‘까르페 디엠’ 을 외우며 부츠를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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