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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단풍과 박고안 신부님

앤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10-29 11:38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친구데레사 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신부님께 설악산에 갔다 왔다고 했더니 “그래도 내장산에 단풍을 봐야 단풍을 보았다 하지 않나 “하셨단다. 한국에 가면 내장산에 단풍보러 간다면서 늘 시기를 놓치곤했다. 데레사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도 소중하고 편안하고 부담이 없는 친구 중에 한사람으로 반세기를 넘게 사귀어 온 친구이다 그녀는 늘 무슨 이야기를하면 세심하게 재미있고 넋을 잃게 한다. 가끔 난 그녀를 보면 한 분의 수녀님으로 보인다. 데레사가 수녀님이 었다면 만날쩍마다 늘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웃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겠나 하는 생각를 해 본다. 할아버지 신부님을 비롯해서 친구의 사랑하는 동생,바오로신부님, 요한신부님, 동정성 모회의 원장이신 에리자베스 수녀님, 이모님들 그리고 외사촌형제들,이렇게 내가 만났었든 안 만났든 난 정이 들었고 가까워진 그분들의 안부를 묻곤 한다.

      할아버니 신부님은 40년을 교수로 봉직하시다가 지금은 성 라자로 마을에서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언덕위에 아담하고 예쁜 사제관에 들어서니 신부님은 나를 구면같이 맞아 주신다. 지난주 장성에서 사 왔다면서 주먹보다 더 큰 감을 대접하면서 해 지기 전에 성 라자로 마을 구경을 가자고 하신다.
뵙기전 부터 신부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막상 뵙게 되니 신부님이라는 이 세글자가 나를 긴장케 하고 고해성사을 보러온 느낌에다 그의 근엄. 거룩함에 압도되어 그 중압감에 나는 사정없이 꽁당기리고 있은데 신부님의 인자한 모습이 어느덧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병환자 병원을 끼고 언덕을 내려오는 길은 한폭의 그림 같았다. 한잎 두잎 사뿐이 떨어진 단풍을 밟으면서 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아니 내장산 단풍을 보면 입이 딱 벌어져서 캐나다 갈때 까지 못 다물겠구나 “ 하신다. 내려오는길 오른쪽에는 주기도문 한 구절 한 구절씩 써 있는것이 퍽 인상적이고 천국에 가는 길이 이렇게 아름답겠지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 보기도 했다. 내가 한국에 휴가를 갈때는 이런 특별한 만남과 여행이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다. 이 길을 신부님과 사랑하는 친구랑 걸으니까 꿈만 같았다. 단정하시고 덕스러우신 모습을 뵈니 젊은 시절에는 얼마나 멋이 있으시고 인기가 많으셨을까! 소탈하고 자상하고 인자하신 아버지를 뵌듯 편안해 졌다. 나도 스스럼없이 멋진 신부님의 팔짱을 끼고 아늑한 마음으로 내려오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할아버지 박고안 신부님의 안(安 )을 고향안성에 면 서기가 자(子) 로 잘못 쓴 적이 있어 고자 안자가 고자
자자가 되어 어렸을때 많은 놀림 걸이가 되었다고 한다. 동생신부님 본명이 Thomas인데 그 당시에는 도마라 부르니 칼도마 라고 한창 장난기 시절 서로 놀리고 흥분하면서 뛰어 놀다 쌓아 놓은 볏가리를 쓰러뜨렸는데 형수님은 시동생들이 꾸중을 들을까 겁이 나서 빨리 도망가라고 안타까워하는데 신부님은 겁이 많으셔서 숨고 작은 신부님은 잘못 했으니 어떤벌이라도 받는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형수님의 마음을 아랑곳 않고 그 볏가리옆에 무릎을 끓고 앉아 형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본 큰형님은 아무말도 못하셨다는 것이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 가시고 큰형님이 가장이 되었을때 음악을 좋아하시는 작은 신부님이 일본예수회 입회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헤화동 본당 성가대지도를 하기 위해 풍금이 필요하다고 하니 사 주셨다는 이야기.....일본 유학시절 그곳에 오르간이 없은것을 알고 큰형님께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지금도 일본예수회에는 그 풍금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동생들을 아끼고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보살펴 준 큰형님이 있었기에 훌륭한 성직자분들이 계시었구나하고 고개가 수그러 진다.

성 나자로 마을의 병원을 지나 내려오면 성당.박물관, 피정회관을 끼고 언덕을 오르는데 한 청아한 수녀님이 “으아 하고 장난기 있는 눈치로 신부님의 코트 뒷자락을 잡아당긴다. “신부님 감 하나로 되겠어요 양쪽에 아가씨랑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시는데요?” 하고 유모럽게 농을 건다. 각 건물에는 기중한 기관이나 개인의 이름이 패말에 적어 있었다. 특히 박물관에서는 나병환자를 위해 성라자로 마을을 이룩한 고 이경재 신부님의 일생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신부님의 다 떨어진 신발, 낡은 가방 사용하시던 물품이 전시 되어 그분에 삶을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벅차오름과 보람있게 그리고 아름답게 수 놓은 그 분의 삶에 경의와 감동으로 역매었다.  

져녁때가 되어  식당으로 갔다. 커다란 식당에는 우리세사람이 앉아 있기에는 너무나 설렁했지만 아늑하게 꾸며져 있으며 노래방 기계도 가추어져 있었다. 저물어가는 서산의 노을과 함께 의왕시를 내려다 보는 전망 그 또한 예술이었다. 식복사 아주머니께서 손님대접에 정성을 담아 주신다 신부님은 접시를 가지고 오라시더니 생선을 나에게 담아 주신다. 내가 어려워 안 먹을까봐 작은 일 까지도 신경을 써 주시는 자상한 그 분의 마음이 나을 더 훈훈하게 해 준다

내일은 식복사 아주머니를 쉬라 신다. 아침일찍부터 우리때문에 수고를 할까봐 식빵, 우유 그리고 커피를 챙겨 사제관으로 오시지 않는가. 아직도 나는 시차 차이로 어디에 앉아 있으면 늘 졸고 있었다. 태조왕건을 신부님이랑 보고 있었는데 가서 자라고 깨우신다. 방에 오시더니 말 없이 방 여기 저기를 걸어다니신다. 나는 방 밖에서 멍 하니 서 있었다. 우리가 자는 방이 찰까봐 방 온도를 점검하시는 것이 었다.  

 성직자 그리고 교육자 로써 헌신과 열정 그리고 그 진솔한 사랑으로 살아 오신 모습을 한 눈에 보는듯 했다. 우린 새 벽일찍 일어난나 했더니만 벌써 아침기도를 끝내시고 단정이 아침준비까지 다 해 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신다. 아침 9시에 내장산에 도착을 했다. 이 단풍을 봐라 저기를 봐라 하신다. 설악산 에 단풍과 달리 유난히 진한 빨간색, 노란색 그리고 녹색으로 물든 단풍은 햇빛에 반사 되어 산들거리는 바람에 그 빛갈은 형용할수 없은 채색으로 몽롱하고 황홀하게 해 준다.

지그재그 산등성이을 넘어 장성에 도착했다. 그곳은 오랜만에 보는 시골장터였다. 감 고장이라 그런지 감 만 파는 상인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신부님께서 는 내 주먹보다 더 큰 감을 손으로 슥슥 씻어 주시면서 "이곳에 오면 이 감을 먹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닦을 겨를도 없이 어린 아이 같이 이리저리 얼굴에 묻혀가며 먹는 얼굴을 서로 보면서 웃었다.

  백양사에 도착했다. 양쪽 입구에 단풍나무 역시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내장사 입구에 단풍은 아쉽게도 좀 떨어져 있었지만 이곳은 아직도 풍성하고 황홀한 모습으로 나를 온통 사로 잡아 버렸다.
“늙은 단풍나무가 되서 아직도 단풍이 떨어지지 않고 너희들 보라고 버티고 있지”하시며 농담을 하신다.  

호수가 근처의 추어탕으로 유명한 레스트랑이 신부님의 단골이시란다. “이런 추어탕을 한번 맛을 봐야 정말 추어탕의 진미을 알것이다” 하신다.  상 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갖가지 반찬이 상을 가득 매었다. 내가 처음 신기하게 맛을 보게 된 것은 감 장아찌 었다. 그 맛은 정말 혀 끝을 사르르 녹아 내린다.  

택시기사형제님은 일주일에 하루 직장에서 쉬는 날이면 신부님을 위해 봉사를 오래전부터 해 오셧다고 한다. 신부님이 어딜 가시고 싶어 하시는 줄 알고 어디고 모시고 다닐 정도라 한다. 나는 그 기사님의 봉사에 내 마음이 또한번 찌르르 해 오는 것이 었다.

할아버지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으신지 올해가 60주년이란다. 신부님의 사랑을 통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을 뵈는 듯 햇다. 이렇게 나는 못 갚을 사랑의 빚쟁이가 되었고 귀한 만남의 축복에 감사 을 드린다. 여행은 삶 전체를 새롭게 할수 있는 커다란 영양력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관계가 시작 되기도 한다.

 
1997년 가을에 내장산에 단풍을 보았던 생각을 할적 마다 그 분의 존엄하시고 자상함속에 사랑이 넘치는 멋진 모습의 신부님이 떠나신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가을이 올쩍마다 추억이고 감사로 물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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