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에게 보내는 초대장

홍유화 roslie@withyouaba.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24-02-07 12:02

아이의 첫 걸음마처럼, 보호자가 되는 여정도 서툴기 마련입니다. 보통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다양한 영역에 있어서 미숙함이 있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 곁을 지키는 행동 컨설턴트로서, 발달이 느린/다른 아이를 둔 가족들의 여정은 감히 더 큰 인내를 요하는 길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처음 그 사실을 직면했을 때, 마냥 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줘야지! 하고 힘을 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좌절감과 불안, 그리고 '왜 내 아이인가'하는 자책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신 분들도 계십니다.

이때 주변에서 스스럼없이 던지는 "다 괜찮아질 거야", "나중엔 하겠지"와 같은 근거 없이 긍정적인 말들은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은 위로로 건넸을 수 있는 이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족들의 가슴에 남는 아픔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이가 ‘누구를 닮아서’ 또는 ‘양육 방식 때문에’ 와 같이 아이가 다른 원인을 가족들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들 또한 가슴 속 비수로 오랜 시간 남게 됩니다.

이때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가족들과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위안을 줍니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것. 이는 단순한 경험의 공유를 넘어서, 발달이 느린 아이를 둔 가족들에게 필요한 강력한 지지체계를 형성합니다. 이 연대감은 자신만이 힘든 길을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아이의 발달 속도에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줍니다. 서로의 아픔과 희망을 공유하며 얻는 위안과 지지는 때로 전문적인 도움 이상의 힘이 되고, 정보와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지탱해 주는 소중한 자산이 되죠. 하지만, 이러한 유대감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잘못된 정보와 비전문적인 조언과 의견 등이 혼란과 오해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비전문적인 조언을 따라 결정을 내렸다가 아이의 소중한 시간과 경제적인 자산을 낭비하는 경우들도 상당수 봐왔습니다.

전문가의 조언은 발달이 느린 아이를 둔 가족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이의 발달을 최대치로 이끌어주는 게 전문가 개입 없이도 가능하다면, 왜 세계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발달적인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을까요? 올바른 정보와 전문적인 지원은 아이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고, 가족들이 겪는 불확실성을 줄여줍니다. 때로는 전문가의 명확한 지침이 가족들이 마주하는 막막함을 해소하는 열쇠가 됩니다. 이러한 전문적인 도움은 보호자가 자신의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가 직면할 수 있는 도전에 미리 대비하며, 그 과정에서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제가 모든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과, 또 그 가정과 함께할 수는 없기에, 특정 가정에 대한 도움을 드릴 수는 없어도 일반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봅니다. 아이의 발달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한 가지 측면일 뿐입니다. 가족은 서로를 배우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가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무조건 ‘다 괜찮아질 거야’ 라는 메세지를 드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느려도 괜찮아'라는 마음가짐은 모두에게 인내와 용기를 주며, 발달이 느린 아이를 둔 가족들이 각자의 속도로, 그러나 함께 걸어가는 길을 만들어 갈 때, 아이가 가진 최대 잠재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있을 것이라는 메세지를 가집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그리고 각자의 소중한 여정을 존중하며 나아갈 겁니다. "느려도 괜찮아 - 함께 걸을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제가 하루하루 힘을 내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함께 걸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