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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정치에서 배우는 교훈

문영석 yssmoon@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23-10-27 15:50


캐나다는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늘 최상위 권에 꼽힌다. 그래서 캐나다는 한국인들만 아니라 전 세계 이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들 중의 하나이다. 물론 살기 좋다는 의미가 매우 주관적인 측면이 있기에 일괄적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객관적 순위를 말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캐나다는 땅은 넓고 인구는 적은데 천연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잘 사는 국가로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땅도 넓고 지하자원도 풍부한 브라질. 러시아. 멕시코 등을 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선진국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원이 아니라 정치의 선진화다. 아무리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다줘도 아내가 살림을 잘못하면 망조가 들거나 곤궁한 생활을 면할 길이 없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나라의 살림을 맡는 사람들인데 부정부패로 물들어있다면 그 국가는 망조가 들거나 극도로 국민들을 괴롭게 만든다. 난 부정부패가 만연한 선진국을 본 적이 없다. 

1981년 캐나다에 와서 공부하는 동안 필자는 두 번의 극단적 정치개혁을 목격한 적이 있다. 1867년 독립한 이래 캐나다는 보수당과 자유당이 번갈아가며 국정을 운영해왔고 NDP는 한 번도 연방정부에서 정권을 쥐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양당제 국가이다. 그런데 보수당은 1984년 총선에서 캐나다 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의석수인 211석을 확보했고 자유당은 겨우 40석을 얻어 야당이 되었다. 1988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은 다시 169석을 얻어 연이은 다수당 정부를 구성했지만 경제정책의 실패, 연방헌법 상정안의 반발로 인한 연이은 정치적 실패 등으로 국민의 불만을 고조시키더니 급기야 개인 및 측근들의 재정적 스캔들이 폭로 되면서 1993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단 2석을 얻어 일거에 공중 분해되어 버렸다. 당시 연방 수상이었던 브라이언 멀루니가 경비행기 회사로 받은 뇌물이 $225,000에 불과한 돈이었지만 캐나다 국민들은 이를 결단코 용서하지 않았다. 당시 이 사건을 일러 멀루니의 “초죽음 상태”(a near death experience)라고 신문들은 비꼬았다. 

또 한 번의 극단적 정치개혁은 캐나다 동쪽 해안에 있는 뉴 브룬즈윅 주에서 주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주 수상으로서 봉직했던 리처드 햇필드 사건이었다.  그는 부친이 보수당 연방하원의원을 지냈던 명망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정치적 감각을 배운 사람이었다. 인물 또한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사람이었고 정치력도 탁월하여 4번이나 주 수상을 연임하였다. 그러나 임기말기 마리화나 소지 혐의가 발각되고, 그가 게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개인의 성적정체성은 이 나라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개인적 사안이어서 계속 그를 밀어주었는데도 그가 동성연인들과 주 수상 전용기를 타고 뉴욕이나 몬트리올로 밤에 놀러 다닌다는 등 공.사를 구분 못하는 문란한 사생활이 드러나자 민심이 철저하게 등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1987년 뉴 브룬즈윅 주정부 총선에서 보수당은 자유당에게 58-0 이라는 전무후무의 참패를 당하게 된다. 보수당에게 단 한 석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상 처음으로 뉴 브룬즈윅 주는 야당이 없는 의회를 꾸려야 했다. 

이처럼 깨어있는 캐나다인들의 철저한 시민의식은 정치판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시민들의 성숙된 정치 감각과 판단을 통해 완벽하게 정치판을 물갈이 시켜버리는 혁명적 사례들을 필자는 그동안 캐나다에서 두 번이나 직접 목격했다. 겨우 156년밖에 안된 짧은 역사와 4,000만밖에 안 되는 인구를 가지고서도 세계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는 소위 G7 국가가 된 최고의 비결은 바로 성숙한 국민들의 세련된 정치의식이 이처럼 부강한 나라를 만든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외과의사도 자기수술은 자기가 못하고 남의 손을 빌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 정치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살을 스스로 도려낼 수는 없지 않는가?

문영석 교수 약력

University of Toronto 종교인류학 박사. 서울대, 서강대 외래교수, UBC 객원교수, 강남대 국제대학 학장. 캐나다학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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