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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공포증(Yellow Peril)의 부활과 인종차별

문영석 yssmoon@g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23-09-15 09:27



최근 2-3년 전 부터 밴쿠버에서 부쩍 아시아인에 대한 언어폭력이나 인종차별 테러가 늘었다는 기사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필자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작년 10월 밴쿠버 총영사관이 주최하는 브라운백 세미나에서 “한-캐 관계의 성찰과 미래”라는 강의를 한 후 질의응답시간에 “1981년 캐나다에 온 이래 나는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는데 날카로운 반론이 들어왔다. 이 세미나는 다운타운에서 일하는 2.30대 한인2세 청년들이 주요 대상자들이라 장년층은 거의 없는데 이 날은 유일하게 두 분의 노년층이 계셨고 그 중의 한분이 자신은 산책길에 모욕적인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말씀하셨다. 최근 늘 푸른 장년회가 BC 주정부의 의뢰를 받아 BC 반인종차별법 입법을 위한 워크숍에 참석하였는데 이 문제가 단순히 영어를 잘못 구사하는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서 태어난 청소년들도 경험하였으며, 하필이면 필자의 모교인 University of Toronto에서조차 자신의 자녀가 조교로부터 인종차별적인 폭언과 불이익을 받았다는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캐나다는 세계최초로 1971년 캐나다의 모든 인종과 문화의 평등한 공존과 조화를 지지하는 다문화정책(Multiculturalism)을 선포한 이래 인권강국임을 표방해왔다. 그러나 사실 캐나다도 인권에 관한한 추악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신대륙 발견은 유럽인들에게는 축복과 기회의 땅으로 다가왔겠지만 이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백인들이 가져온 홍역, 천연두 같은 신종 전염병들에 대해 면역력이 전혀 없었던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고 연이어 무력에 의해 무참하게 살육된 결과 지난 400년간 약 90%의 원주민들이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인종말살(Genocide)사건으로 꼽힌다. 

이 땅에 아시아인들이 도착한 것은 1788년 항만과 선박건조를 위해 120명의 중국인들이 밴쿠버 아일랜드에 도착했고,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1871년 BC주가 캐나다 연방에 가입한 조건중의 하나인 동부 캐나다와의 철도연결 공사를 위해 17,000 명의 중국인들이 이 땅에 들어와 캐나다 태평양 철로(CPR)건설을 완성시켰다. 문제는 값싼 노동력 확보를 위해 중국인들을 유입했는데 갑자기 늘어난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반응이 소위 황색공포증(Yellow Peril)이다. 1881년 BC 전체 인구가 50,000명 정도이었고 이중 반이 원주민들이었기에 백인들 숫자는 고작 25,000 명 내외에 불과했으니 갑자기 확 늘어난 중국인들에 대한 혐오반응은 그 유명한 인두세(Head Tax)로 나타났다. 1885년에 제정된 이 악법은 중국인이 이 땅에 들어오려면 처음에는 $ 50 로 시작한 세금이 나중에는 $ 500 까지 올라갔고 이 액수가 당시 금액으로는 몬트리얼에서 집 2채 값이었다고 한다. 독신으로 건너온 가난한 중국노동자들이 배우자를 초청하기 위해 어떻게 이런 금액을 마련할 수 있었겠는가. 1911년 중국인 사회의 남. 여 성비는 28:1로 절대다수의 중국인 청년들이 평생 동안 독신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악법은 1923년에야 폐지되었고 캐나다 정부는 2006년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 외에도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적성국 국민으로 간주되었던 일본인들은 자기가 살던 집과 일터를 떠나 BC주 내륙이나 대평원 지역의 집단수용소에 억류된 상태로 살아야했고 1949년에야 풀려났다. 

인종차별 학대사건의 정점은 2021년부터 BC 주와 사스퀘치완에 이르기까지 과거 가톨릭교회가 운영했던 원주민 기숙학교(Residential School) 근처에서 1,200구가 넘는 아동 유해들이 대거 발굴되면서 이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분노한 원주민들은 근처의 수많은 교회들을 방화했다. 원주민 기숙학교는 1884년부터 원주민들의 자녀들을 문명화시키겠다는 국가정책으로 4-16세 사이의 원주민 자녀들을 강제로 기숙학교에 입학시켰다. 기숙학교는 가족들과의 생이별만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와 전통에서 단절되게 만들어 버린 악랄한 문화집단학살 정책이었고 1997년에야 문을 닫았다. 학교기숙사의 불량한 주거환경, 영양 결핍, 전염병 등으로 약 6,000명 정도의 아동들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기숙학교의 70%는 가톨릭교회가 그리고 나머지는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 등 개신교단이 운영했는데 캐나다 정부는 가톨릭교회 수장인 교황에게 직접사과를 요구했고 급기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작년 여름 7월24-29일까지 캐나다를 방문해 사죄를 하였다. 교황이 특정한 국가를 찾아가 특정한 사안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연이은 사제들의 성추행 고발로 추락하는 가톨릭교회의 공신력에 일격을 가하는 참담한 사건이었다. 

최근 밴쿠버와 그 인근에서 빈발하고 있는 인종차별과 황색공포증의 부활은 대략 3가지 원인으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1967년 이민법이 점수제로 바뀌는 획기적인 개혁 이래 이민자들 중 압도적 다수가 아시아인들로 바뀌었다. 현재 2021년 기준 광역 밴쿠버의 인구 지형은 한국. 일본을 포함한 중국인이 23%, 인도인 14%, 필립핀인 7%로 다른 지역 유색인종을 포함하면 밴쿠버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면서 43%인 유럽계 백인들을 압도하고 있다. 이렇듯 유색인종의 폭증은 당연히 기존의 백인들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둘째, 밴쿠버 지역의 주택가격 폭등은 많은 부분 부동산에 민감한 중국. 한국인들의 과도한 투자에 기인한다.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는 백인 중산층들이 변두리나 딴 도시로 밀려나는 판국에 당연히 불평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 2019년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세계를 덮치면서 반아시아인 정서가 급격하게 팽배하였고 특히 차이나타운 근교에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꼬리를 이었다. 미숙한 인간일수록 차이를 강조하고 차이는 차별을 부른다. 

오늘날 인권이란 모든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이자 문화적 우상 혹은 성역으로 떠올랐으며 제도적 종교는 아니지만 현대세계에선 거의 종교와 같은 개념이다. 따라서 이를 파괴하는 것은 현대세계에서는 신성모독에 해당된다. 그러나 평등한 사회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저항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것도 개인이 아닌 집단적 저항과 요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요즘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코퀴틀람시가 전국에서 가장 무례한 도시 2위로 떠올랐다. 운전 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난폭운전,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대화나 통화, 대중교통에서 노약자. 임산부 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무례함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이 지적되고 있는데 한인들도 많이 반성해야할 사례들이다. 

작년 3월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이 모여 밴쿠버생태연대가 결성되었는데 필자는 환경운동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이 선행되어야하니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자고 제안하였고 작년 4월부터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2시30분, 포트 코퀴틀람 게이츠 파크(Gates Park) 주차장에서 만나 쓰레기를 주어오고 있다. 공원 청소부들은 쓰레기통과 주변의 큰 것들은 집어가지만 수풀 숲 곳곳에 널려있는 수많은 오물. 담배꽁초. 마약중독자들이 남긴 주사바늘이나 깨진 유리병 등은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우리의 조그만 행동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이들에게는 무언의 압력이자 교육이 되겠지만, 또 한편 아시아인들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인여성회도 먼디 파크에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는데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를 만드는데 한인들이 앞장선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존경을 받고 싶으면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문영석 교수 약력

University of Toronto 종교인류학 박사. 서울대, 서강대 외래교수, UBC 객원교수, 강남대 국제대학 학장. 캐나다학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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