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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일곱 번째 이야기 – 범의(犯意)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3-05 11:57

지난 칼럼에서 범죄가 성립되는 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액터스 레우스(actus reus, 범죄적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이번 주에는 또 다른 요소인 멘즈 레아(mens rea)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멘즈 레아는 “guilty mind”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로 한국어로는 범의(犯意)라고 합니다.

 

범의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각각의 범죄마다 요구되는 범의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절도(larceny)나 폭행(assault)죄가 성립되려면 반드시 고의(故意, intent)가 필요하지만 불법 약물소지(drug possession)죄가 성립되는 데는 자신의 소지품 중에 불법 약물이 있다는 지식(knowledge)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범의에 관한 유명한 판례로 1989년 캐나다 대법원에 판결한 R v. Tutton and Tutton 이 있습니다. 여기서 R은 Regina 또는 Rex라는 라틴어 단어의 약자로 여왕이나 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군주 대 개인의 재판, 즉 형사소송을 뜻이지요. 피고인은 터튼(Tutton) 이라는 성을 가진 부부였습니다.

 

터튼 씨 부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요. 당뇨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평생 인슐린을 맞으며 살아야 했지만, 신앙심이 투철했던 터튼 씨 부부를 열심히 기도하면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터튼 부인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 앞에 하느님이 나타나 아들의 병이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믿은 터튼 씨 부부는 아들에게 인슐린 더 이상 투여하지 않았고 인슐린 투여를 멈춘 지 나흘만인 1981년 10월 17일 당뇨병으로 인한 고혈당증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사망과 함께 터튼 씨 부부는 범죄적 과실(criminal negligence)로 인한 고살죄(故殺罪, manslaughter)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고 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과연 이들 부부에게 범의가 있었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범의는 바로 “범죄적 과실”이었지요. 터튼 씨 부부는 자신들은 진심으로 하느님이 아들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떠한 “범죄적 과실”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재판에서 대법원은 범죄적 과실은 “합리적인 사람에게서 기대되는 기준에서 뚜렷하면서도 상당하게 벗어난 행위(marked and substantial departure from the standard expected of a reasonable person)”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행위를 판단하는 몇 가지 접근방식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범죄적 과실이라는 범의를 판단하는 데 있어 주관적인 믿음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으로 남아있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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