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마흔다섯 번째 이야기 – 털북숭이 손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2-19 23:20

계약위반과 그에 따르는 손해배상에 관한 판례 중에 the “Hairy Hand” case라고 알려진 판례가 있습니다. 번역하면 “털북숭이 손” 사건 정도 되겠지요. 이 소송의 원래 이름은 Hawkins v. McGee로 1929년 미국 뉴햄프셔 주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원고인 호킨스 (Hawkins) 씨는 어렸을 때 겪은 감전사고로 손에 흉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8살이 되던 해 호킨스 씨는 의사인 맥기 (McGee) 씨에게 흉터 제거 수술을 받기로 했는데요. 맥기 (McGee) 씨는 호킨스 씨의 손을 “100% 완벽한 손 (one hundred percent good hand)”으로 만들어주겠다며 수술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호언장담에도 수술은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는데요. 흉터는 원래보다 커졌을 뿐 아니라 가슴의 피부를 이식해 붙인 손바닥에서 굵은 털이 수북이 자라 말 그대로 “털북숭이 손”이 된 것이지요. 화가 나 호킨스 씨는 계약위반이라는 이유로 맥기 씨를 고소하였습니다. 맥기 씨가 손을 완벽하게 만들어준다는 약속(guarantee)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1심의 결과는 당연히 호킨스 씨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상금이었습니다. 배상금이 지나치게 높게 정해졌다고 생각한 맥기 씨는 배상금을 낮춰달라고 요청(motion)했고 1심 판사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판사는 호킨스 씨가 입은 정신적 물리적 고통 (pain and suffering)과 손의 상태가 수술 전보다 얼마나 더 나빠졌는지를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호킨스 씨는 이러한 1심 판사의 결정에 승복할 수 없었고 항소를 하였습니다. 항소심을 맡은 뉴햄프셔 주 대법원은 1심 판사의 배상금 책정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사건의 경우 기대손실 (expectation damage)을 근거로 배상금을 산정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대손실이란 만약 계약이 제대로 이행됐다면 어떠한 결과를 낳았을지 예상해보고 그 결과에 비해 어떤 손실이 있었는지 산정해보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맥기 씨가 100% 완벽한 손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기대손실은 완벽한 손과 털북숭이 손의 차이겠지요. 물론 이 차이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뉴햄프셔 대법원을 기대손실의 원칙을 바탕으로 재판을 다시 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호킨스 씨와 맥기 씨는 다시 재판을 하는 대신 법원 밖에서 합의를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둘의 합의에 관한 기록은 업지만 뉴햄프셔 대법원의 판결은 기대손실의 원칙에 관한 중요한 판결로 남았습니다.

 

사실 이 판례는 그 법률학적 중요도 보다는 흥미로운 소재 때문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또한 존 오스본 (John Jay Osborn Junior)의 소설이자 1973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크게 흥행한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The Paper Chase)에 소개되어 유명해졌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