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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네 번째 이야기 – 청약과 상담유인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2-13 02:45

손해배상에 관한 가장 유명한 판례는 음료수에 달팽이 한 마리가 들어간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칼럼 14회 참고) 이처럼 아주 작은 사건 때문에 역사에 남는 판례가 탄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1968년에 영국에서 있었던 Partridge v. Crittenden 이라는 판례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조그만 되새 (brambling) 한 마리였습니다. 1967년 5월 13일 파트리지 (Arthur R. Partridge) 씨는 “새장과 새장조류(Case and Aviary Birds)”라는 잡지의 줄 광고란에 영국산 되새를 팔겠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이 광고를 본 톰슨(Thompson) 씨는 되새 암컷 한 마리를 사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 30 실링(shilling)짜리 수표를 파트리지 씨에게 보냈습니다. 구매한 되새는 곧 기차 편으로 톰슨 씨에게 전달되었고 여기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파트리지 씨가 보낸 되새 다리에는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는데 톰슨 씨가 이 반지를 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영국에는 1954년에 제정된 “새 보호를 위한 법률(Protection of Birds Act)”이 있어서 야생조류를 판매하기 위한 offer 즉 청약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예외가 있었는데요. 태어날 때부터 새장에서 자란 야생조류는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새가 야생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은 다리에 끼워진 반지였습니다. 갓 태어난 새의 다리에 조그만 반지를 하나 끼워서 키우면 나중에 뺄 수 없게 되는데 이 반지가 없는 새는 야생으로 간주하는 것이었지요.

 

따라서 톰슨 씨가 구입한 되새 다리의 반지를 뺄 수 있었다는 것은 새가 야생이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는 파트리지 씨를 고발했고 파트리지 씨는 유죄선고와 함께 5파운드의 벌금 그리고 10파운드가 넘는 소송비용을 내야 하게 되었습니다.

 

파트리지 씨는 곧 항소했고 항소의 근거는 자신이 낸 신문 광고는 상담유인(invitation to treat)일뿐 판매를 위한 청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담유인(invitation to treat)이란 청약보다 약한 개념으로 상대방을 유인해서 청약을 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 광고 또는 물건을 진열해놓는 행위를 모두 상담유인이라고 하는데 청약은 상대방이 수락(acceptance)하면 바로 계약이 성립되는 것에 비해 상담유인은 청약을 유인하는 것일 뿐 상대방의 청약을 수락할 필요가 없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항소심 판결을 맞은 애쉬워스(Ashworth) 판사와 블래인(Blain) 판사는 청약과 청약유인의 개념을 정확히 하고 파트리지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새 보호를 위한 법률” 위반이 계약법상 가장 중요한 판례 중 하나로 이어진 순간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의 주인공인 파트리지 씨의 이름 역시 새 이름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Partridge는 자고새(꿩, 메추라기와 비슷한 새)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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