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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한 번째 이야기 – 임산부의 의무?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2-01-21 22:56

1993년 3월 14일 New Brunswick 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임신 27주였던 신시아 돕슨(Cynthia Dobson)씨는 눈보라 속에서 운전하다 차가 미끄러져 정면에서 마주 오던 차와 충돌하게 됩니다. 다행히 신시아씨와 태아 모두 목숨은 건졌지만,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난 아이는 심각한 뇌성마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는 라이언 돕슨(Ryan Dobso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안타까운 사건은 몇 년 후 캐나다에서 가장 흥미로운 소송의 발단이 됩니다.

 

1999년 라이언은 New Brunswick 법원(Court of Queen’s Bench)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합니다. 청구의 근거는 과실이었습니다. 신시아씨가 조심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자궁 속에 있던 라이언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것이지요. 소송은 라이언이 직접 제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라이언의 할아버지가 소송후견인(litigation guardian)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지요.

 

어린아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상대로 태아 때 입은 부상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당시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때까지 제삼자에게 이러한 소송을 청구해 승소한 사례는 있었지만, 자신의 친모를 상대로 이러한 소송을 제기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여성의 몸 안에 있는 태아는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달라지지요. 일단 태어난 아이는 자궁 안에서 입은 부상조차 보상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제삼자로부터는 말이지요. 또한, 아이가 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일심법원은 라이언의 손을 들어줍니다. 신시아씨가 눈보라 속에서 운전해서 자신의 몸 안에 있던 라이언에게 부상을 입힌 것은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한 것이지요.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도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습니다. 태어난 아이의 법적 권리 못지않게 임산부의 권리도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태아는 임산부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 할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심각한 사생활 침해라는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권리보다 임산부의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대법원 판결의 진정한 의미는 임산부와 태아의 관계가 법적인 권리와 의무로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하고 숭고한 관계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 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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