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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 장난의 대가

이정운 변호사 piercejlee@hotmail.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11-10-03 00:11

영미법에는 토트 (tort)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토트는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단어인데요.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토트의 한 종류로 intentional tort, 고의적인 불법행위가 있습니다.

 

고의적인 불법행위란 말 그대로 일부러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고의성이 있기 때문에 피고의 과실과 상관없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여기서 불법행위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민사상의 문제이지 형법상 위법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고의성역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악의(惡意)”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1955년에 워싱턴 대법원 (Washington Supreme Court) 에서 결정한 Garratt v. Dailey 라는 판례는 민사법상 고의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기준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건은 19517월에 일어났는데요. 5살짜리 꼬마 대일리 (Dailey) 는 나오미 가랱 (Naomi Garratt) 할머니와 함께 루쓰 가랱 (Ruth Garratt) 할머니 댁에 놀러 갔습니다. 나오미 할머니와 루쓰 할머니는 자매 사이였고요. 대일리와 나오미 할머니는 무슨 사이였는지 판결문에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아마 이웃 사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나오미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뒷마당에 나온 루쓰 할머니는 평소처럼 자신이 늘 앉던 의자에 앉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대일리가 그 의자를 움직여버렸기 때문에 루쓰 할머니는 바닥에 넘어져 버렸고 골반에 금이 가는 부상을 얻게 됩니다.

 

루쓰 할머니는 5살에 불과한 대일리를 고의적 불법행위라는 이유로 고소했는데 사건의 정확한 정황에 대해서 양측의 주장이 엇갈렸습니다.

 

대일리의 주장에 의하면 할머니의 의자를 옮긴 것은 자신이 앉기 위했을 뿐이고, 할머니가 의자가 있던 곳에 앉으려는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의자를 도로 옮겨놓으려고 했으나 너무 늦었을 뿐이었습니다.

 

반대로 루쓰 할머니의 주장에 의하면, 대일리가 루쓰 할머니가 의자에 앉으려던 찰라 장난으로 의자를 확 빼버렸다는 것입니다.

 

단순한듯하면서도 복잡한 판결을 맡은 워싱턴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고의적 불법행위에서 고의성은 악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중요한 것은 피고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상당한 확신 (substantial certainty) 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이다.”  

 

다시 말해 대일리가 자신이 앉기 위해 의자를 옮겼든 장난을 치기 위해 의자를 빼버렸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일리가 장난을 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의자를 움직인 순간 루쓰 할머니가 넘어질 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고의성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결과는 루쓰 할머니의 승소로 끝났고 5살짜리 꼬마 대일리는 $11,000의 손해배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판례는 고의적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에 관한 유명한 판례로 남아 있습니다.

 

*법적 책임면제고지이 글은 법률 조언이 아니며 저자는 이 글에 대한 일체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법률 조언이 필요하신 분은 변호사를 찾으십시오.

 

 

 

 

 



이정운 변호사의 풀어쓴 캐나다법 이야기
칼럼니스트: 이정운 변호사
  • UBC 로스쿨 졸업
  • UBC 경제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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