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전 그 친구가 누군지 잘 모릅니다. 한 두번 TV에서 얼굴을 보기는 한 것 같습니다. 가수인 것까지는 줏어들어 알겠는데 노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질 만한 대상이 아닌거죠. 그저 인터넷에 소동이 일어나고, 그 소동의 정체가 하도 기가 막혀 엉뚱한 관심이 생긴 겁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저처럼 재범이라는 친구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시면 주위에 어린 친구들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뭐 사연은 간단합니다. 미국에서 자란, 한참 인기절정의 가수가 인기를 얻기 전에 한국을 안 좋게 말한 것이 나중에 밝혀져 급기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겁니다.
유승준이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전 물론 이 친구도 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 친구가 한국에서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연은 잘 압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사람이 평소 한국군대를 가겠다고 큰 소리 치고 다니다가 막상 군대 갈 때가 되어 발뺌을 하고 미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그 길로 다시는 한국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번에 다시 이런 일이 생긴 것이죠.
그 과정 속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언론이었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흔히 황색언론이라 부르는 그야말로 사실여부보다는 흥미여부가 기사의 잣대가 되는 그런 쓰레기 같은 언론들이 앞뒤 재지 않고 소문의 확대재생산에 뛰어들었습니다. – 저는 그런 언론을 쓰레기라고 부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쓰레기만도 못합니다. 쓰레기야 잘 하면 재활용이라도 하지만 이런 언론은 재활용은 커녕 어디 파묻어도 그 냄새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울 것입니다.
그 친구가 한 말이 과연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 판단할 자리에 있지도 못하고 또 설령 그럴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수 하나가 노래를 그만 부르던 말던 그 것은 제 알바가 아니니까요.
다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입니다. 이른바, 여론,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믿어지는 것에 의해 어떤 개인의 인생이 좌우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입니다. 사실 여부를 판단할 정보가 있을리 만무한 많은 사람들이 그저 언론이 던져주는 정보에 근거해 격한 언사들을 쏟아내고 그 것이 결국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이 반복적 상황이 걱정이 될 뿐입니다.
더구나 이번 일을 보면서 외국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핵심은 결국 애국심입니다. 재범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 시민권자라고 합니다. 어쩌면 그 사실이 이번 소동의 큰 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재범이는 결국 미국사람인 것이지요. 그래서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 것은 아닐까요? 애국심의 척도에서 일단 용의선상에 오른 것이지요. 이를테면 미리부터 의심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더욱 조심을 했어야했던 것인데…
이렇게까지 생각이 드니 마음이 좀 찹찹해집니다. 그럼 나는? 하고 바로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군요. 이렇게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애국심 몇 점일까 조금 궁금해집니다. 그러면서 대체 애국심이란 뭘까하는 근원적인 의문도 생깁니다. 이런 생각은 참으로 오랬만입니다. 뭐 잊고 있었다는 핑계보다는 외면해왔다는 고백이 더 맞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난 조국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그 대답은 저처럼 그저 혼자만 간직하십시오.
교육방송 피디(PD)협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Chapman University Film School MFA 과정을 마쳤고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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