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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신앙을 생각해본다(1)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6-03-20 00:00

지금껏 보살 사상의 유래와 잘 알려진 보살들 몇을 살펴보았다. 이제 보살 사상과 관련하여 몇 가지 짚어보고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째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런 우주적 보살 개념과 함께 대승불교 특유의 사상으로 회향(回向, pari??namana)이란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회향'은 우주적 보살들이 수많은 겁을 통해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여 쌓은 그 넘치는 공덕을 다른 불쌍한 중생에게 나누어 줌을 이른다. 쉽게 말하면, 마치 오랜 세월 성실히 일해 돈을 많이 번 사람이 그 돈을 통장에 예금했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통장에 돈을 쓸 만큼 옮겨 주는 것과 같다. 보살들은 이렇게 보살행을 실천하며 공덕을 중생에게 옮기기로 서원한 이들이다. 보현보살의 10대 원 중 마지막 "모든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겠다"가 바로 그런 예다.

이런 가르침은 해탈에 이르는 것이 자력의 결과라는 소승불교의 가르침과 대조를 이룬다. '회향' 개념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은총'이나 '은혜'를 생각하게 한다. 내게 모자라는 것을 대신 채워 주어 살 수 있게 한다는 뜻에서 '대속(代贖)’ 개념까지 떠오르게 한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불교를 단순히 '자력 종교'로 취급하는 경향의 사람들이 있는데, 대승불교를 두고는 자력 종교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 앞으로 보겠지만 특히 대승불교 중 정토 신앙에서는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을 믿는 믿음만으로 극락에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우주적 보살만 회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실한 불자라면 누구나 독경을 하든, 예불을 하든, 다른 무슨 일을 하든 그렇게 하여 생기는 공덕을 다른 모든 중생에게 돌리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이런 회향의 개념 때문에 나와 남의 구별마저 없어지는 일체감, 유대감, 공동체 의식도 생긴다. 이렇게 서로가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나누는 것, 이보다 더 참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어디 있겠는가?

둘째, 우리가 처음 살펴본 '보살의 길'은 모든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걸어가야 할 원형(archetype)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며 자라야 하고, 또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들 보살이 걸어간 길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걸어갈 것을 다짐하며 거기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한다.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살의 길을 가서 위대한 우주적 보살(bodhisattva mah?sattvas)을 본받고 그들의 경험에서 용기와 지혜를 얻으려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소원을 아뢰면 아들도 낳을 수 있고, 그 아들이 입학시험에도 합격하고, 졸업해서 사업도 번창하고, 무병하고, 심지어 죽어서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등등 현실적으로 덕을 보겠다는 이른바 '기복 신앙'을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말로 십일면관음이 시방을 살피다가 우리의 울부짖음을 듣고 그의 천 개의 손 중 하나를 펼쳐서 우리를 구해 주는가? 정말로 지장보살이 죽은 영혼을 천도하여 극락과 열반으로 인도하는가? 불자가 된다는 것은, 혹은 불교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런 기복적 가르침마저 무조건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뜻인가?

어느 종교나 크게 나누어 '문자적(literal)’ 이해와 '영적(spiritual)’ 이해라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사도 바울도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린도후서 3:6)고 했다. 이 둘을 '표층구조'와 '심층구조' 혹은 '밀의적(esoteric) 차원’과 '표의적(exoteric) 차원’으로 나눌 수도 있다. 신앙이나 수행이 깊어 갈수록 외적 의미에서 내적 의미를 발견한다는 뜻이다. 진리의 길에 입문하지 못한 사람(the uninitiated)은 어쩔 수 없이 문자적 표층구조를 접할 수밖에 없고, 이 단계를 지나서 진리의 길에 입문한 사람(the initiated)은 문자적 표층구조에만 머물지 않고 그 밑에 깔린 영적 상징체계를 점점 깊이 알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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