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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불교와 보살 사상의 등장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6-01-16 00:00

불교 공동체 승가는, 앞에서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좌부와 대중부로 갈라진 후 상좌부는 그 자체 내에서 이루어진 계속적인 분열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이어져 갔지만, 대중부는 그 후 얼마 못 가서 없어지고 말았다. 대중부가 성행하던 카쉬미르, 간다라 등 인도 서북부를 중심으로 기원전 1세기 경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출현하게 되었다.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사변적이고 개인적이고 소수 엘리트 중심적인 성향에 반대하고 나온 진보적 승려들이 일으킨 일종의 혁신 운동인 셈이다. 처음에는 대승불교를 세운다는 자각도 없이 시작되었다가 나중에 가서 자기들은 여러 사람들을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실어 나르는 '큰 수레'(大乘, Mah?y?na)인데 반해 부파불교는 '작은 수레'(小乘, H?nay?na)라고 불렀다.  ‘소승’이라는 말은 이처럼 본래 경멸하는 뜻이 들어있던 말이기 때문에 이른바 동남아 소승불교 국가에서 온 스님을 상좌(Therav?da) 스님이라 하지 않고 소승(H?nay?na) 스님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옳은 일이 못 된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생긴 대승불교의 가장 큰 종교적 특징이라면 이른바 '보살'(菩薩, bodhisattva)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승불교를 '보살승'이라 하기도 한다. ‘보살’이란 말은 '깨침을 위한 존재' 곧 깨침을 구하거나 깨침 속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대승불교 신봉자들에 의하면, 소승은 자기들의 '개인적 구원'에만 관심이 있어 모두 개인적 수행을 통해 '아라한'이 되려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비해, 자기들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보편적 구원'을 위해 자기들을 희생하는 '보살'이 되는 것을 종교적 이상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보살은 열반에 들 자격이 충분하지만 중생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자비(慈悲, karu??)의 마음 때문에 나보다 남을 먼저 피안(彼岸)으로 보내려고, 자원해서 이 사바 세상에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돕고 있는 존재이다. 그야말로 철저히 '남을 위한 존재'(being for others)인 셈이다('남을 위한 존재'라는 말은 독일 신학자 본회퍼가 예수님을 가리켜 쓴 말이다. 예수님을 보살 사상에 비추어 살펴본 책으로  길희성, ‘보살예수’(현암사, 2004), 특히 187쪽 이하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보살 사상과 관련하여 얼마 전 필자가 어느 신문에 칼럼으로 썼던 글 하나를 덧붙인다. 

지옥에 간 테레사 수녀

자기 고향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마다하고 인도 캘커타 빈민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친 마더 테레사 수녀가 죽어서 지금 지옥에 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테레사 수녀가 교회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일까? 그리스도교의 어느 복잡한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잘못 이해했기 때문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성경에 보면 심판의 날 양과 염소를 가르는데 '네가 어느 교회에 속했었나' '네가 삼위일체를 제대로 알고 있었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는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런 기준에 따라 천당에 가는 일이라면 테레사 수녀보다 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가 천당이 아니라 지옥에 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테레사 수녀의 사랑과 자비 때문이다. 사랑이란 남을 내 몸 같이 여기는 것이고 자비란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사랑과 자비로 가득했던 테레사 수녀가 어찌 지옥에서 고통 당하는 많은 사람을 외면하고 혼자 하늘나라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을 수 있겠는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지옥행을 자원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뼈 있는 농담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은 결국 천당에 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마음이라면 나만 천당에 가겠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은 천당에 가야겠다는 마음이라면 오히려 그 마음 때문에 천당에 갈 수 없을 것이다. 남의 고통을 외면하고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적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천당에 갈 자격이 있겠는가.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유명해진 페르시아만 해안도시 바스라에서 1200년 전에 살았던 이슬람 성녀 라비아의 기도가 생각난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김이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저를 지옥에서 불살라 주옵시고, 낙원의 소망 때문이라면 저를 낙원에서 쫓아내 주옵소서. 그러나 그것이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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