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성왕 아쇼카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최종수정 : 2006-01-09 00:00

여기서 제2차 결집을 주선했을 뿐 아니라 초기 불교 발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쇼카 왕에 대해 잠깐이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 불교는 기원전 3세기 인도 대륙 거의 전체를 다스리던 아쇼카 왕이 기원전 297년 불교로 개종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왕은 비록 불교로 개종하기는 했지만 계속되는 전쟁으로 살생을 피할 수가 없었다. 특히 인도의 통일을 위해 남방에 있던 칼링가를 정벌하면서 수십만 명이 죽고 다치는 것을 보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는 이제부터 진정으로 "불법을 따르고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진리의 다스림'으로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진리의 정복'을 위해 아쇼카 왕은 스리랑카나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는 물론, 인도 내에서의 기록일 뿐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멀리 시리아, 그리스, 이집트에까지 포교사를 보냈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의 친 아들과 딸을 스리랑카로 보내 불법을 전하게 했다고도 한다. 불교를 인도인의 종교에서 "보편 종교"로 변화시킨 셈이다.

그 외에도 여행자들을 위한 휴식처, 병든 사람들이나 동물들을 위한 병원, 고아원과 양로원, 학교 등을 세우는 사회사업에도 열심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과 비폭력(아힘사)의 원칙을 실천하라고 가르쳤다. 스스로 사냥하던 습관을 버리고 부처님의 사적을 찾는 순례로 대신했다. 궁중에서도 채식을 채택하고 동물을 제물로 드리는 일도 금했다. 본래 10개의 스투파에 봉안되었던 부처님의 유골을 스투파 8만4천개를 다시 만들어 거기에다 나누어 봉안하도록 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가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종교가 서로 화목하고 협력할 것을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와 같은 생각을 칙령(勅令) 형식으로 전국 여러 곳 바위나 동굴, 돌기둥(石柱)에 새겨놓았는데, 현재 발견된 34종 중 유명한 것 하나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과인 아쇼카 왕은] 모든 종교의 교인들, 그들이 수도인이든 평신도이든, 모두를 한결 같은 존경심으로 존경하노라.... 각 종교마다 기본 교리는 다 다를 수 있으므로...자기 자신의 종교는 자랑하고 남의 종교를 비판하는 일을 삼가야 하리.... 자기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느라 남의 종교를 비하하는 것은, 그것이 맹목적인 충성에서 나온 것이든 자기 자신의 종교를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든, 자기 자신의 종교에 오히려 더욱 큰 해악을 가져다 줄 뿐이다. 조화가 최선이라. 모두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존경하도록 할지라.... 그리하면 자신의 종교도 발전하게 되고 진리도 더욱 빛나게 되리. (제12 석주 비문)

흔히 아쇼카 왕을 기원후 313년 밀라노 칙령을 공표하여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를 신봉할 자유를 허용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비교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쇼카 왕도 정치적 지도자인 만큼 정치적 관심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웠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경우, 개인적인 신앙심이나 보편적 가치에 대한 확신보다도 그리스도교를 오로지 자기의 통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한 정치적 의도가 아쇼카 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강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인들은 중국에 불교를 일으킨 양무제(梁武帝)를,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에 불교를 정착시킨 성덕태자(聖德太子, 쇼도구다이시, 574-622)를 아쇼카 왕에 비견할 만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한국 역사에서는 누구가 아쇼카 왕에 견줄만할까? 신라 시대 불교의 진리를 흥기시키려고 한 법흥왕일까? 불교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세종대왕 같은 분일까?

아무튼 독일의 종교사학자 프리데릭 하일러(Friedrich Heiler) 같은 사람은 아쇼카 왕을 두고 '세계 역사에서 가장 숭고한 사람 중 하나'라고 했다.  실로 나라를 관용과 진리의 다스림으로 다스린 아쇼카 왕은 그 후 불교를 받아들인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이 본받으려고 애쓴 귀감이 되었다. 불교 위정자들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2300년 전에 이미 종교 간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트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우리 이웃종교에 대해 지금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자성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오교수의 속담풀이
오교수의 속담풀이.
  칼럼니스트:오강남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