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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훈훈했던 나의 이민 일기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2-26 11:13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0-세번째 영한 시집 <프레이저 강가에서> 출판한 시인 안봉자
옛날엔 그랬다. 좋은 것을 독점하면 뭔가 허전하고 이웃에게 저절로 미안해지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주머니는 늘 비워져 있기 일쑤였지만, 양배추로 만든 김치라도 낯선 땅 밴쿠버에 함께 정착한 “이민 동기들”과 나누고 싶었다. 시인 박라연의 표현을 빌리자면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이 있었던,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고 읆조릴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1970년이 그랬다.



“이민 동기들과의 순수한 나눔이 빛났던 시절”
 밴쿠버 다운타운 바클리가(Barclay St.). 1990년대 후반 이곳은 한국에서 건너온 어학연수생들의 아지트 쯤으로 통했다. 유학생 수가 크게 줄었다는 지금도 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1970년의 풍경은 크게 달랐다.

그때 바클리가엔 몇몇 한인 이민자들이 정착 초기 잠시 거쳐갔던 하숙집이 서 있었다. 이 하숙집의 다락방 혹은 지하 한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이민 동기”라 불렀고, 상대에게 의지가 되었다. 얼마 전 세번째 영한 시집 <프레이저 강가에, By The Fraser River>를 펴낸 시인 안봉자씨(사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리치몬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 시인은 1970년대의 한인사회를 "시대의 풍족함을 선물받진 못했지만 마음만큼은 늘 훈훈했던 시절"로 기억하는 듯 했다.

“1970년, 당시 한인이라곤 갓난아이까지 모두 합쳐 300명 정도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참 순박하고 맑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순수함만으로는 당연히 생존이 어려웠다. 정착 자금이 넉넉치 않았던 초기 이민자들은 대개 몇 개월간의 영어 교육을 마친 뒤 곧바로 일거리를 찾았다. 한국에서 약대를 졸업했던 안 시인의 남편은 야간에 빌딩 청소를 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간호조무사가 되었다. 손에서 물기가 마를 날이 없었다. 참 애쓰며 살았다.

“하지만 단 한번도 고생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이른바 개척 정신 같은 게 있어서였는지, 겁도 나지 않았어요. 그때 제 나이 불과 20대 중반이었는데, 겁날 게 뭐가 있었겠어요. 그런데 저희 부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주변 사람들 모두 정착 초기의 노동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 쯤으로 여겼지요.”

지친 하루를 보내도 이민 동기들은 만남을 이어갔다. 이제 같은 배를 탔다는, 그래서 얻게 된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한 달에 한번씩은 꼭 만났다. 한국음식이 귀했던 시기, 초기 이민자들에게 일본식 된장과 어렵게 구한 고춧가루의 조합은 고추장 역할을 했다. 여기에 밥을 비벼 먹었고, 양배추로 김치맛을 흉내냈다. 그래도 나눠먹을 수 있는 상대가 있어 좋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네다섯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엔 그릇수가 늘 부족했어요. 그래서 다 먹은 마가린통도, 빈 깡통도 쉽게 버릴 수 없었지요. 그게 우리들에겐 밥그릇이고 국그릇이었지요. 그게 창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웠고, 지금도 그리워요. 다들 살기 바빴겠지만 어떻게해서든 함께할 뭔가를 찾았어요. 조개를 채취하러 가기도 했고, 차 한대에 몇 가족이 끼워 타고 미국 벨링햄에 다녀오기도 했지요. 그저 좋았어요.”

초기의 억척스러움은 넉넉함을 위한 기반이 되어 주었다. 안 시인의 남편은 BCIT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한 뒤 수질 오염 등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BC주 공무원이 되었다.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며 노력한 결과였다. 아내 역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아들 셋을 낳아 기르면서도, 그녀는 치기공사로서 새 삶을 살았다.

“당시엔 맨파워라는 정부 기관에서 취업 등을 알선해 줬어요. 그곳을 찾아가 무작정 매달렸지요. 치기공사가 되고 싶으니 방법을 알려 달라고. 결국 밴쿠버커뮤니티칼리지에서 관련 과정을 이수하게 됐고, 일터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감사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
치기공 일은 마음에 들었다. 가계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면 즐거워졌다. 하지만 치기공소에서 써야 하는 각종 재료를 몸이 거부했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치기공사가 된 지 만 10년만의 일이다. 이후에는 샌드위치 가게를 열었고, 또 그 다음엔 서점 주인이 되었다. 오랫 동안 잊고 지냈던 활자와 직업적으로 재회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꿈을 떠올릴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여고 시절엔 교지 편집자로 활동했었지요. 하지만 집안 사정상 간호학을 공부해야 했지요. 서점을 운영하면서, 또 여러 책을 접하게 되면서 오래된 내 꿈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녀의 생각이 곧 현실이 된 것은 아니었다. 50세에 조기 은퇴를 결정한 후, 그녀는 만 5년을 즐겁게만 보내기 위해 애썼다. 이민 와서 마음 푹 놓고 해보지 못했던 것들, 예를 들어 여행이나 등산 그리고 정원 가꾸기 등에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런 삶을 동경했고, 그런 삶이 즐거울 줄 알았고, 또 실제 괜찮았다. 그런데도 쓸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어요. 그러다 또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그 모임의 인터넷 공간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 모임이 제가 글을 쓰게 된 발판이 되어주었던 거죠.”

2003년 밴쿠버문협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된 그녀는 이듬해 한국 순수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다. 다소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모국어 뿐 아니라 영어로도 계속 시작업을 해왔다는 점이다.

“영어로 시를 쓰는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어요. 다만 여기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 이곳 국어와의 거리도 좁히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교육청 영어창작반을 다니면서 제 글을 다듬었는데, 그게 제겐 하나의 도전이었지요.”

만 70세를 넘어선 그녀는 도전을 얘기했고, 그래서 더욱 행복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는 행복한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자기가 좋아하던 일을 마침내 하게 됐다고 해서 저절로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게 시인의 생각인 듯 보인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게 된 것, 이게 바로 행복 아니겠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직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작가로서 아직 해야 할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 인생을 담았다. 첫번째 시집 <바다에서 온 편지>, 두번째 시집 <시인과 종이배>에 이어 이번 시집 <프레이저 강가에서>도 시인의 삶이 녹아있다.

“이곳 밴쿠버의 한 언덕에 앉아서, 아님 바닷가 어느 한구석에 앉아서 지나온 날을 돌이켜 보고 내게 주어진 앞날을 생각하는, 그 모든 게 제 시집에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아직 행복하다 말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그녀의 삶에 불행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어 보였다. 젊은 시절을 낭비하지 않았고, 그 대가로 얻게 된 열매를 자신이 꿈꾸는 일을 위해 투자하는 시인은 분명 부러움의 대상이다.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인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불행하다는 느낌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거에요. 똑같은 일이라도 겪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불행일 수도 있고, 또 만족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겠지요. 마음의 욕심을 내려놓고, 좀 더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시인의 조언은 시 <오늘은>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오늘은 슬퍼하지 말자, 그대여/ 그리움 못다 적시는 갈등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이 밤에도 한 켜 박 먹구름 층 뒤 저쪽/ 은하수 푸른 물 풍성하게 흐른다// 오늘은 환하게 웃자, 그대여/ 일기장 삼백육심오 갈피 사이/ 기갈든 언어들이 서걱거려도/ 그 마음 기도처럼 진실하고 겸허하다면/ 세상은 감사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 오늘은 충분히 갖지 못함에 불평하지 말자, 그대여/ 처음부터 빈손이었던 이승 길 나들이/ 어느 날 잡고 있던 숨줄 놓으면/ 헌 옷처럼 벗고 갈 육신은 빈손인 것을// 아아, 오늘은 노래하자, 나의 그대여/ 하루 끝에 타오르는 저녁놀 빛 저리 찬란하고/ 우리 하루 몫의 수고는 거의 끝났느니/ 가고 나면 뒤돌아보며 몹시 그리워할/ 내일의 어제다, 오늘은.”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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