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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79세로 파리서 별세··· “머릿속엔 늘 필름이 돌아가는 배우”

김성현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1-20 09:37

배우 윤정희 /이진한기자

배우 윤정희 /이진한기자


“마지막까지 자잘하고 세속적인 문제들로 지지고 볶고 살기보단 이렇게 아이처럼 근사한 꿈을 꾸면서 살다 갈래요. 건우 백이랑(2016년 본지 인터뷰).”

‘은막(銀幕)의 스타’ 윤정희(79)씨가 19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7)는 이메일을 통해서 “제 아내이자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 윤정희가 딸 진희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생전 윤정희의 뜻에 따라서 장례는 파리에서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정희는 1967년 1200대1의 경쟁을 뚫고 영화 ‘청춘극장’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본지 보도처럼 약정된 출연료만 “A급 스타와 맞먹는 50만원”에 이르렀다. 달걀 한 꾸러미(10개)가 110원, 돼지고기 한 근(600g)이 120원 하던 시절이었다.

곧바로 청룡영화상 인기상과 대종상 신인상을 휩쓸며 청춘 스타로 부상했다. 1960~1970년대 남정임·문희와 더불어 ‘원조 트로이카’로 불렸다. 청룡영화상·대종상 등 여우주연상만 25차례 받았고, 평생 출연작은 300여 편에 이른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은 “제가 1988~1992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윤정희씨가 공사에 기증한 시나리오만 300여 편에 이른다. 한국 영화계의 살아 있는 역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

윤정희, 배우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다섯 편이 같은 날 개봉한 적도 있다. 영화감독 이장호(78)씨는 “이른 봄 바닷물에도 거침없이 들어갈 만큼 근성 있었고 노출 장면이 있으면 촬영을 모두 마친 뒤 스튜디오 뒤에서 혼자서 숨죽여 흐느낄 만큼 연약하고 인간적인 면도 지니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1960년대 최고의 스타였지만 당시 연출부 막내였던 내게도 꼬박꼬박 ‘장호씨’라고 이름을 불러줄 만큼 다정다감한 분이셨다”고도 했다.

‘원조 트로이카’로 군림했던 윤정희는 1973년 홀연히 파리행(行)을 택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영화 유학이라는 당시 출국 이유보다 관심을 모았던 건 남편 백건우와의 열애·결혼이었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기념작으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초연될 당시 이들은 처음 만났다. 생전 윤정희는 “오페라 극장 계단에 순수하게 생긴 한국 남자가 있었다. 자리를 잘 몰라 그분에게 좌석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해줬다”고 회고했다. 당시 공연이 끝난 뒤 뒤풀이가 열린 맥줏집에서 말없이 꽃 한 송이 건네준 청년이 백건우였다.

1976년 이들 부부는 재불(在佛) 화가 이응노의 집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 신부는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었고, 예물도 백금 반지 한 쌍이 전부였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의 작은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린 이들 부부는 이듬해 공산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현재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납북(拉北) 위기를 함께 겪었다. 당시 이들 부부는 가까스로 미 영사관으로 탈출한 뒤 무사히 파리로 돌아왔다.

1980년대부터 남편 백씨는 라흐마니노프·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 같은 굵직한 녹음과 연주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아내 윤정희는 비서이자 매니저, 팬이라는 ‘1인 3역’을 자청했다. 남편의 연주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객석 1층 맨 뒷자리를 고집했다. “좋은 자리는 관객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국제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남편 연주 일정과 겹친다’는 이유로 고사한 적도 있다. 10년 전 남편이 이스라엘 현지에서 지휘자 주빈 메타와 협연할 당시에는 무대 뒤 대기실에서 남편의 구두를 직접 닦았다. “백건우 비서 노릇은 나 아니면 아무도 못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말년에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은 2019년 남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인터뷰를 통해서 뒤늦게 밝혀졌다. 그 뒤 남편 백건우와 윤씨의 친정 동생 측 사이에서 성년 후견인 자격을 놓고 법적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윤정희의 마지막 출연작인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詩)’에서 맡았던 역할 역시 알츠하이머 환자 미자 역이었다. 미자는 그의 본명(손미자)이기도 했다.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의 데뷔 50주년 특별전에서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서겠다”고 말했다. 남편 백건우는 3년 전 투병 중인 아내를 대신해서 아름다운예술인상 공로예술인상을 받으면서 “항상 그랬듯 (아내의) 머릿속에는 시나리오와 필름이 돌아가고 있다”며 고개를 떨궜다. 평생 배우였던 그는 삶의 마지막 장면마저 영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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