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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MC 송해, 95세로 별세

최보윤 기자 ssh@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6-07 19:37




“고향에 계신 여러분! 그리고 어머니! 복희가 왔습니다. 전국~노래자랑!”

눈 감기 전에는 반드시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던 최장수 MC 송해(95·본명 송복희). 그가 8일 결국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지난달 14일 건강 문제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한 상태였다.

1988년부터 34년간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 4월 말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돼 5월 공식 공표됐으니, 이젠 진정 세계가 인정한 MC다. 그가 마치 전 국민을 호령하듯 “전구우욱~”을 외치고는 “빰 빰빰 빰빰 빰~빰~”하는 악단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빠라밤 빠라밤 빠라밤빰 빰빰 빰빰~”을 따라 부르게 하던 전국민의 프로그램. ‘일요일의 남자’라는 애칭도 붙었다.

서너살 꼬마부터 백살 어르신들까지 송해 앞에서 ‘스타’로 변신했다. 송해가 활짝 웃으면서 마이크를 건네면 기적이라도 일어나는 듯, 큰 무대에 바짝 얼어 입을 열지 못했던 이들에게 청산유수처럼 말이 흘러나왔고 숨은 끼가 나왔다.

‘미스터트롯’(2020)의 스타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김희재, 김수찬은 물론 ‘미스트롯’(2019)의 송가인, 국악소녀 송소희, 오마이걸 승희와 별도 전국 노래자랑이 낳은 스타들이다. 송해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출연진의 삶을 끝까지 귀를 기울여 새겨듣고는 오래된 친구처럼 풀어냈다. 흥에 겨운 송해도 춤사위와 노래 솜씨를 곁들이며 분위기를 돋웠다.

송해.

송해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천상 예능인이자, 상대를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그의 친화력을 칭송한다. 깊은 내공 뒤에 따라붙는 찬사다. 과거 신재동 전국노래자랑 악단장은 “딴따라라는 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라 했고, 후배 MC 강호동은 송해와의 첫 만남을 회고하면서 “보자마자 씨름을 하자고 했던 송해 선생님”이라고 추억했다.

송해에겐 ‘큐카드’(방송대본)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즉흥적으로 교감하기 위해서다. 모두가 즉석이다. 송해는 오히려 배운다고 말했다. “만 세 살부터 백열다섯 살 되시는 분까지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정말 배우는 게 많아요. 직업들도 천태만상이에요. 이 순간에도 제 이야기를 경청하시는 분들이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거예요.”(2021 ‘송해의 인생티비’)

요즘 식의 ‘유튜브 먹방’도 송해 앞에서 명함도 못내민다. 전주에선 한정식이 그득하게 차려진 한 상과 함께, 스물 셋 젊은 출연진이 “송해 성님, 나가 엊그제 제대했는디 성님 주려고 한상 차려 왔응께 한번 잡숴봐”라는 이야기에 무대에 털썩 주저앉아 장단을 맞추는 가 하면, 무대 위 펼쳐놓은 휴대용 가스렌지 위에서 즉석에서 구워주는 고기쌈을 한입 크게 베어물고, 경운기를 몰고 오는 도전자를 맞아 수박과 딸기, 인삼 등을 먹기도 했다.

임신 8개월 임산부 출연진이 송해에게 턱받이와 젖병을 물리게 하고는 “이런 아들좀 낳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 덮썩 아이마냥 ‘빈 젖병 먹방’도 해 보였다. 그에겐 언제나 넉살과 편안함이 있었다. 상대의 어떠한 부탁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전국 팔도 안다녀 본 곳이 없는 그였다. 평양도 가고, 금강산도 갔다. 하지만 고향 땅만큼은 밟아보질 못했다. 황해도 재령 태생인 송해는 어릴 때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했다. 그 인연으로 월남 이후 창극단에서 일하기도 한다.

6·25 전쟁 당시엔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송해는 과거 방송에서 “휴전 전보를 내가 쳤다. 그런데 내가 그걸 치고 고향에 못 가게 됐다. 내가 돌아갈 길을 내가 끊은 셈이다”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와 헤어진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이틀 뒤에 옵니다.” 평소에 별말씀 없으시던 어머니가 그때는 “이번엔 조심해라”라고 했다. 그 뒤에 어머니 얼굴은 보지 못했다. 송해가 2015년 발표한 노래 ‘유랑청춘’은 그 당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눈물 어린 툇마루에/손 흔들던 어머니/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70년/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재 넘어 길 떠나는 유랑 청춘아/’

연평도에서 미 군함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송해는 바다를 건너며 ‘바다 해(海)’자를 예명으로 썼다. 어린 시절 송복희가 지금의 ‘송해’가 된 것이다. 1955년 유랑극단 ‘창공악극단’으로 가수 활동했다. 또 故 구봉서 故 서영춘 故 배삼룡 故 이순주 등 당대 유명한 재담꾼들과 함께 극장 쇼무대를 누볐다.

특히 여성 코미디언이자 MC로 유명했던 故 이순주와 1970년 TBC 동양방송 라디오프로그램 ‘웃음의 파노라마’에서 명콤비로 불리며 MBC ‘웃으면 복이와요’ 등에서도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일상인으로 송해는 소박함 그자체다. 방송인의 필수라는 큐카드가 없었든, 그에겐 현대인에 필수로 보이는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없다. 누룽지에 김치찌개, 계란후라이로 하루를 시작하고, 자택인 역삼동에서 자주 찾는 종로까지 항상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주당인 송해가 해장을 위해 단골로 다닌 2000원 우거지국밥집은 ‘송해 국밥’으로 유명해졌다.

송해/KBS




안경낀 얼굴로 항상 웃음 가득한 모습이지만 그늘을 공개하기도 했다. 영화 ‘송해 1927′(2021)에서다. 1974년부터 KBS 교통전문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간 진행했던 그가 중도하차한 데엔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 창진의 오토바이 사망 사고 때문. 송해는 “사고 직후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아버지, 살려줘’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18년엔 평생을 함께하자던 아내 마저도 그의 곁을 떠났다.

그가 일요일마다 출연진에 건넨 “땡”과 “딩동댕”은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일 수 있지만, 스스로를 향한 응어리진 메아리일 수도 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임종도 지키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수가 되고 싶어한 아들을 극구 반대하며 꿈을 풀어주지 못한 회한, 그토록 바랐던 고향을 결국을 밟지 못하는 현실….

그는 올초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탈락을 뜻하는) 땡과 (합격을 말하는) 딩동댕 중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땡을 받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릅니다.”

좋아하는 술 한잔에 우거지국을 들이키고,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던 그는 이제 영원히 깊은 잠에 취하게 됐다. 그는 꿈속에서 지금껏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이들과 만나 못다 나눈 이야기를 하고 거한 밥상을 받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수도 있다.

“조심하라”던 어머니에게 “제가 걱정 마시라 했잖아요”라고 웃으며 돌아갈 것이다. 별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듯, 그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외칠 것이다. “전국~노래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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