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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속에 벌레가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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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04-30 10:18

이정순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회원, 동화작가
위잉잉!

“뭐야! 기분 나쁘게.”

나는 이어폰 볼륨을 좀 더 높였다.

‘바보야, 그래가지고 들려? 더 높여야지!’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네? 녹음할 때 잡음이 들어갔나? 내 귀가 잘못됐나?’

나는 이어폰을 뽑고 면봉을 찾아 귀를 후볐다.

‘아악! 하지 마! 아파!’

“엄마야!”

나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안은 고요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음악을 더 크게 틀었다.

‘히히, 볼륨을 더, 더 크게 올려야지!”

“누, 누구야?”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요즈음 귀속이 이상했다.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도 잘 못 들을 때가 있었다. 이어폰 소리를 최대한 올려도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이어폰이 고장 났나? 아빠 출장에서 오시면 새로 사달라고 해야겠다.’

‘찌르르!’

간혹 귀뚜라미 울음소리처럼도 들렸다.

“엄마, 내 귀에 벌레가 들어갔나 봐!”

저녁에 엄마한테 말했다.

“하도 이어폰을 끼고 사니까 환청이 들리나 보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난번 모둠 수업 때의 일이었다. 책상을 원탁으로 배치했다. 내 왼쪽에 앉은 베프 소영이가 영어 동화를 발표했다. 발표가 끝나면 발표자가 지적하면 감상을 말하는 거였다.

내 오른쪽에 앉은 승훈이가 갑자기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그래? 말로 해야지.”

“소영이가 너 뽑았잖아. 너 귀먹었어?”

승훈이가 손나발을 하고 화를 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너 땜에 우리 모둠 꼴찌 하겠다.’

소영이도 인상을 팍 쓰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너 땜에 우리 모둠 꼴찌 하겠대.”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승훈이가 대신 말해주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이 내게 자주 퉁을 주기도 하고, 수화 흉내를 냈지만, 모든 게 환청인 줄 알고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깔깔깔!’

“뭐야?”

‘난 네 고막이란 말이야. 고막이 없으면 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어.”

나는 혼란스러웠다.

언제부턴가 엄마가 현관을 들어서면서 TV 소리 낮추라고 잔소리했다. 엄마는 리모콘을 빼앗아 소리를 확 줄였다.

“안 들린단 말이야!”

엄마한테 짜증을 냈지만, 왠지 불안하고 초조했다. 주말에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셨다.

‘하니야! 아빠 왔다.’

아빠 말소리가 동굴 속처럼 윙윙 울렸다. 아빠가 헤드셋을 선물로 주었다.

“와! 예쁘다.”

핑크색 헤드폰이 참 예뻤다. 방으로 들어가 새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음이 크지 않았다.

엄마가 헤드셋을 확 벗겼다. 엄마 입이 금붕어처럼 벙긋거리고 있었다.

‘음악 소리 때문이겠지.’

내가 멍하니 서있자, 아빠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요즈음 아이들 이어폰 때문에 청력에 문제가 많다고 하던데, 하니 너도 그런 것 아니야?”

“아, 아니에요.”

아빠가 오른쪽에서 말을 해서 그런지 잘 들렸다.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하셨다고 하더라. 수업 시간에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이어폰을 껴서 그럴 거예요.”

“여보! 하니 병원에 한 번 데려가 봐요.”

나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머리를 확 스치고 지나갔다.

‘진짜 아무것도 듣지 못하면 어떡하지?’

지난번 소영이하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모둠 수업 때도 그랬지만,

“하니야, 같이 가자!”

소영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느 쪽에서 나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등 뒤에서 툭! 쳤다.

“깜짝이야. 왜 그래?”

“엉뚱한데 보니까 그렇지. 너 이어폰도 안 꼈는데… 혹시 너 귀먹은 거 아니니?”

“귀 안 먹었거든!”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는데?”

그때 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소영이한테 큰 소리를 지른 기억이 났다.

요즈음은 소영이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왕따 당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이어폰 볼륨은 더 올라갔지만, 음악 소리는 차츰 모깃소리만큼 작았다.

“왜 이리 소리가 작아!”

귀에서 이어폰을 확 빼서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이하니! 이어폰 소리 좀 줄여!’

아이들이 수화하듯이 입과 손동작으로 말하며 웃었다.

“내가 언제 소리를 높였다고 그래?”

‘하하! 호호! 히히!’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어떤 아이는 배를 잡고 웃고, 어떤 아이는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고개를 젖히고 웃고, 어떤 아이는 입을 막고 히히거리며 웃었다. 소영이 까지 손가락질을 하며 웃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결국 교실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오후 내내 우울했다. 나는 음악도 듣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하니야, 엄마 왔다!’

“……!”

‘얘는 엄마가 왔는데도 아는 척도 안 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나는 엄마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 말소리가 안 들리니?”

엄마가 내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말을 했다. 그때야 엄마 말이 들렸다.

“잘 들려! 잘 들린다고!”

나는 괜히 반발심이 생겼다.

“안 되겠다. 이비인후과에 가봐야겠다.”

나는 진짜 벌레가 귀속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정신이 혼란스러워 어지러웠다.

다음 날 엄마는 나를 병원에 데리고 했다. 안경이 잘 어울리는 여자 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이 헤드셋 한 번 써 볼래요?”

선생님은 여러 선이 연결된 헤드셋을 내 머리에 씌웠다. 꼭 사이보그 같았다.

“들리는 쪽 손들어 볼래요?”

왼손은 들지 못했다. 오른손은 반쯤 올렸다 내렸다.

“왼쪽 청력이 거의 떨어졌어요. 그나마 오른쪽은 나은 편이에요. 그래서 소리가 어느 쪽에서 들리는지 방향을 몰라 많이 불편했을 거예요.”

엄마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어폰을 밤낮 끼고 살더니 결국…….”

“요즈음 아이들 이어폰이나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어 청력이 많이 나빠졌어요. 더군다나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줌 수업을 하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고요. 이어폰을 착용하면 소리가 고막에 그대로 전달되어 고막이 찢어질 수 있어요. 이어폰 소리는 지하철이 바로 옆에서 지나가는 소리만큼 커요. 60데시벨로도 충분한데 아이들은 소리를 최대한 올려 청력에 이상이 생기는 거예요. 하니는 아직 고막이 손상된 게 아니라 치료도 가능해요.”

의사 선생님은 내 오른쪽에서 말을 했다.

“하니야, 이것 한 번 귀에 끼어 볼까?”

“싫어요. 그럼 내가 아이들이 말하는 귀머거리란 말이에요?”

그 말에 의사 선생님도 엄마도 당황했다. 내가 걱정하던 말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보청기 끼면 괜찮아져요.”

“잘 들린단 말이에요.”

“하니야. 눈이 나쁘면 뭘 써야하지요?”

“……!”

“선생님은 눈이 나빠 안경을 썼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해요. 귀가 나쁘면 보청기를 껴야하는 거예요.”

나는 초조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이건 테스트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선생님이 보청기를 내 귀속에 넣자 삐-! 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양손으로 귀를 막고 도리질을 했다. 소리는 금세 멈추었다.

“내 말이 들리면 고개를 끄떡여 볼래요?”

그 말이 신기하게도 맑고 선명하게 들렸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거 안 껴도 이 정도는 들린단 말이에요.”

억지를 부렸다. 보청기를 끼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창피해 할 것 없어요.”

선생님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거울 한번 볼래요?”

선생님이 귀 쪽에 거울을 비추어 주었다. 보청기가 보이지 않았다.

“불편하지 않지?”

“네……!”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이제 괜찮아요.”

선생님은 헤드셋을 다시 씌우고 이것저것 테스트를 했다

“들리는 쪽 손들어 봐요.”

나는 왼손을 번쩍 들었다. 엄마가 나를 얼싸안았다.

“내 딸 미안해! 엄마가 그동안 신경을 못 써서 이런 일이 생겼어.”

“아니야 엄마, 내가 이어폰을 끼고 살아서 그래.”

“앞으로 선생님이 이어폰 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사용하면 안 돼요.”

귓속이 좀 불편하긴 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가 병원 문을 나서자, 고막 벌레가 말했다. 아, 내가 고막 벌레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아휴! 이제 살 것 같아.’

“미, 미안해!”

“누구에게 미안하다는 거니?”

 

다음 날 학교에서 안경을 낀 승훈이가 작은 소리로 놀렸다.

‘귀머거리 하니! 낄낄!’

“야! 깜짝이야!”

“어? 너, 귀 안 들리잖아?”

“안 들리긴 왜 안 들려. 내 귀가 들려서 실망했니?”

아이들도 깜짝 놀랐다.

소영이는 지난번 좁은 골목길에서 하니 뒤로 승용차가 바짝 다가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위, 위험해!’

“야, 너 귀머거리야?”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화를 냈다. 하니는 놀라 울면서 뛰어갔다, 그때 소영이는 전봇대 뒤에 숨었었다. 소영이는 하니를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용기가 없었다. 소영이는 오늘 용기를 냈다.

“너희들! 특히 승훈이, 그리고 너, 너! 니들은 눈이 나빠 안경을 꼈잖아? 하니는 귀가 좀 안 좋을 뿐이야. 그리고 이어폰 꽂고 있는 너희들도!”

소영이가 안경 낀 아이들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아이들을 지적했다.

“고마워. 소영아!”

“고맙긴, 우린 베프잖아!”

나는 소영이를 보며 웃었다.

“참! 내 귀 안에 귀여운 벌레가 살아. 그 벌레는 이어폰이 침입하는 걸 무척 싫어해.”

“뭐야?”

아이들이 놀라 귀에서 이어폰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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