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4-04-30 10:18

박혜경 / 캐나다 한국문협
   자연 속에는 서로 반겨주는 친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울긋 불긋 물든 단풍과 그와 잘 어울리는 단짝 낙엽, 따스한 봄 볕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개나리, 흐르는 강 줄기와 강물에 치덕 치덕 내리는 빗줄기. 며칠 전 강변에서 비 님과 호젓한 시간을 보내었어요. 우산에 떨어지는 사근 사근 빗방울 소리 들으니 공연히 실룩 거리는 입에서 맥없는 웃음이 나왔어요.

저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꼭꼭 숨겨둔 절친이 있어요. 실은 집 앞 소리 없이 흐르는 후래이저 강변이 저의 절친이에요. 제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만나주니 참 행복하답니다. 그저 필요할 때면 시간 약속 따로 하지 않아도 아무 때나 달려가면 볼 수 있고 소곤대는 나의 모든 이야기를 군소리 없이 묵묵히 들어주는 좋은 친구입니다. 햇살 좋은 날에는 차를 마시기도 하고 도시락을 풀어 놓고 함께 즐기기도 합니다. 삶의 기쁨, 슬픔과 외로움조차 다 받아주며 귀 기울여주어요. 참, 때로는 온갖 불평과 지친 마음을 친구에게 고스란히 털어놓기도 하지요. 주로 침묵으로 대화하지만, 나의 혼잣말이 멋쩍어 질 때 쯤이면 이내 바람 소리에 실려 시원한 대답을 들려 주기도 합니다. 또한 강변에는 이름도 갖지 못한 연약한 들 풀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강 둑에 퍼져 있는 이끼는 삶의 고단함을 견디라고 귀여운 눈망울을 반짝이며 위로를 건네 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서로 엉켜 지내며 강변이라는 공동체를 슬기롭게 이루어 가고 있답니다. 사실 이렇게 작고 귀한 벗들이 지천에 퍼져 있어요. 저에게서 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자신의 곁을 두말 없이 내주기만 하는 귀중한 친구들 이어요.

어느 날 가만히 살펴보니 햇볕이 뿜어내는 빛의 파장에 따라 흐르는 강의 얼굴도 변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맑고 따스한 빛이 내리쬐는 날에는 반사되는 빛을 받아 강물 위로 구슬들이 주르륵 쏟아져 내립니다. 온통 머리에 예쁜 구슬 장식으로 관을 쓰고 진 초록 드레스 입은 친구의 화려한 자태는 영락없이 품위 있는 여왕님 이어요. 그런데 흐리거나 비 오는 날 검푸른 강물은 사나운 듯 거칠어진 제 마음을 연상케 합니다. 이른 아침에는 동쪽에서 솟아 오르는 햇살과 함께 살포시 옷 고름 입에 물고 있는 새색시한테서나 볼 법한 수줍은 듯 홍조 띄운 모습으로 저를 맞아 줍니다. 저녁노을 질 때면 어두움을 그대로 받아 내기가 부담스러운지 강변에서 부터 온통 갈색으로 물든 채 노을 뒤로 살짝 자취를 감추거든요.

변함없는 친구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흐르건만, 상황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친구를 바라보며 바뀌는 내 감정의 증폭은 바람에 나부끼는 겨와 같습니다. 하늘 넘어 구름 위에서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겠지요?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거대한 성운 너머 존재하는 아름다운 천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강가를 거닐어 보고 싶어지네요. 호젓한 나의 절친 강변의 품에서 주님과 산책하며 올리는 찬양은 또 하루를 일으켜주는 힘이 되어 일상의 기쁨을 누리게 된답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영원한 이민 2024.04.15 (월)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권순욱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셀카 증명 시대 2024.04.15 (월)
세상은 변했어기우뚱 거리다 기울어 지다 엎어졌어마음을 나타내려 해도 이제는환적의 경유지를 밝혀야 하고무게의 중량을 홀수선에 남겨야 하는"마음 속으로" 는 사라지고"보시다시피"로 증명 해야 하는 세상마음을 찍을 수 없는 셀카에 의존하는증명사진 유행의 시대, 증명사진 요구의 시대여보시게나자네들과 나 사이에는이심전심의 토양에서우정 이라는 길을 돋우고 다지며믿음을 넓히고 오해를 메우는, 마침내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큰 길모여...
조규남
1.23세. 대학을 마치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들어간 나의 첫 직장은 강북구 미아동 소재 S여중이었다. 첫 출근 날 아직 군대도 미필인 시절, 솜털이 뽀얀 홍안의 청년이 여중생의 수업을 들어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교감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세워 다짐을 하신다.“민 선생, 오늘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민 선생은 딸이 하나 있는 애 아빠라고 자기 소개를 하시고, 학생들이 딸 이름을 혹시 묻거든 ‘들레’라고 하세요.”라며...
민완기
삼겹살 2024.04.08 (월)
아들이 군대 간다고 둥지를 떠나고문 선생은 중첩된 설움을 곰 삭이며외롭다는 말 대신삼겹살 한 절음 불판에 그슬렸다사방에 튀는 기름 파편을 손등이 접수하며그렇게, 모르는 듯 타들어가고 있다 나무젓가락 사이 낑긴 고기가숨이 붙어 더 살아갈 날을 깨우고 있다참기름장에 발라 입에 넣고떠난 가족을 씹어 그렇게 삼켜 버렸다외로움은 콧날에 상큼하다는 말겨자 한입 넣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혼미한 푸념을 담배 연기처럼 뱉어버리고앉았던...
김경래
팔자를 생각하다 2024.04.08 (월)
 가져가야 할 짐들을 거실 가득히 늘어놓은 채, 남편은 가방에짐을 챙겨 넣고 있다. 그가 짐 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다시 떠난다는 게 실감 난다. 가방의 지퍼가 고장 났는지 닫히지 않는다고 남편이 말한다. 그를 붙잡고 싶은 내 마음이 염력을부린 듯하다.남편은 파도 치는 바다로 고생하러 가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본다. 뭘 사다 주면 좋겠느냐고 자꾸 묻는다.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드는데 눈물이 또 주책을 부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정성화
봄밤 2024.04.08 (월)
부활절 날 밤겸손히 무릎을 꿇고사람의 발보다개미의 발을 씻긴다연탄재가 버려진달빛 아래저 골목길개미가 걸어간 길이사람이 걸어간 길보다더 아름답다
정호승
가로등 2024.04.02 (화)
어둡고 긴긴 밤을그대 왜 서 있는가 길고 긴 세월 동안지칠 법도 하건만은 가신 님 오시려나행여 떨며 기다리나 어두워 못 오실까 눈 밝혀 길 비추나 이 밤도 아니 오면이제 그만 쉬소서
늘샘 임윤빈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